許されざる者
Unforgiven
1992 · ドラマ/西部劇 · アメリカ
130分 · R15



1880年、ワイオミング。列車強盗や殺人で悪名を轟かせていたウィリアム・マニー(クリント・イーストウッド)は、今では銃を捨て2人の子供と農場を営みながら密かに暮らしていた。しかし家畜や作物は順調に育たす、3年前に妻にも先立たれ苦しい生活だった。そんなマニーのもとにスコフィールド・キッド(ジェームス・ウールヴェット)という若いガンマンが訪ねてくる。彼は娼婦フィッツジェラルド(アンナ・トムソン)に重傷を負わせた2人のカウボーイを倒して、一千ドルの賞金を得ようとして考えていた。一緒に組もうと誘われたマニーは11年ぶりに銃を手にする。マニーのかつての相棒ネッド・ローガン(モーガン・フリーマン)が同行することになり、3人は町へ向かった。
JE
5.0
오직 클린트 이스트우드만이 가능한 해체와 결단, 이토록 애달픈 서부극. (※ 스포 및 긴글 주의) 1. 해체 서부극 윌리엄 머니는 말에 오르다 떨어질 정도로 늙고 병든 총잡이다. 그는 이제 절박한 생계를 위해 총을 쏘고, 그의 삶은 벗어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서부극은 물론, 60년대 이후 이어진 수정적 노선의 서부극과 비교하더라도 제법 이질적인 풍경이다. 물론 영화의 (해체적인) 다채로운 텍스트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선 영화는 서부극의 클리셰라 할 수 있을 창녀로서의 여성을 여전히 끌어들인다. 그러나 오프닝과 엔딩에서, 머니의 아내를 향한, 일종의 경외와 더불어 창녀들에게 서사의 도화선을 맡김으로써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그녀들을 내세운다. 여성에 의해 출발하고 교정되는 서부극을 자처한다. 또한 영화의 폭력엔 ‘멋’이 거세되어 있다. “살인할 때 언제나 운이 좋았다”는 윌리엄의 대사처럼 인물들의 총격에 낭만이라곤 없다. 그저 생존이 우선 가치가 되는 우연의 결투일 뿐이다. 마치 페킨파의 폭력처럼, 시각적 스펙터클로서 피상적인 쾌감은 있을지언정 그 본질은 혐오적으로 다가온다. 고통의 비명만 공간에 남고, 무감한 난장판이 형성될 뿐이다. 특히 화장실의 적에게 연사하는 키드의 모습은 전혀 ‘서부적’이지 않은 형태일 것이다. 흑인 총잡이를 향한 과도한 폭력이나 허구적으로 작성되는 무용담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코멘트다. 즉 <용서받지 못한 자>는 기존 서부극의 클리셰를 분명히 따르면서도, 수정ㅡ이라는 현대 서부극적 클리셰ㅡ도 함께 끌어 들인다 관습적-젠더적-신화적으로 해체를 시도하는, 서부극에 대한 서부극인 것이다. 이제 서부라는 무대는 낭만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폭력은 신성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낭만이 지워진 살육과 죄의식 속에서 행해지는 복수. 회한과 비애만이 맴도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더 이상 강인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무대를 말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노쇠한 총잡이 한 명이 가쁜 숨을 겨우 고르는 백스테이지로 시선을 돌릴 뿐인, 애달픈 서부극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사실 관습과 비관습의 영리한 조화나 잘 축조된 해체 텍스트라는 설정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특히 많은 서부극들의 관심이 “해체”로 향하면서 (크리스티앙 메츠의 지적처럼) “완성도 높은 웨스턴 영화는 그 자체가 웨스턴의 규범에 관한 설명”, 즉 “패러디를 넘어 비평”이 되었다. “그러나 그건 여전히 하나의 웨스턴”일뿐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해체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부적인 정서가 흐르고 서부적인 해결이 합리화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해체며, 서부극은 여전히 서부극이다. 그럼에도, 이 필연적인 한계를 감내하며, 영화를 감싼 초라한 비애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존재 덕택이다. 2.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언어 우리는 시작부터 말에서 떨어지는 그의 모습을 본다. 사실 이는 <마지막 총잡이>(1976)에 이미 나타났던 (장르) 해체적인 장면이다. 존 웨인의 낙마가 충격을 안겨 주듯, 윌리엄의 낙마 역시 그에 못지 않은 깊은 충격을 던져준다. 그가 이스트우드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No Name”을 거쳐, 돈 시겔과의 서부극, 본인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미국 서부극 3부작(<평원의 무법자>, <무법자 조시 웨일스>, <페일 라이더>) 등에서 고독한 총잡이를 연기했다. 심지어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캘러한”조차 일종의 현대적인 서부 총잡이였다. 마치 실존적인 단독자의 인상을 풍기는 이스트우드의 캐릭터들은 비단 서부극이란 장르에서뿐만 아니라 비(非)서부극에서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그(들)는 모두 ‘이스트우드적’이다. 말하자면 이스트우드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서부적인 신념이자 행위이며, 존 포드의 영화 속 존 웨인과 비교하더라도 그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 상징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 자>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영웅이 없다. 여전히 고독하고 실존적인 어떤 공기가 흐르지만, 윌리엄은 지치고 병든 몸을 그야말로 힘겹게 이끌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을 고통으로 신음한다. 특히 영화는 윌리엄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지도, 과거의 잘못을 씻어주려 하지 않는다. 회한의 과거는 (미화되기는커녕) 더욱 악랄히 굳어져 발목을 부여잡는다. 끝내 총과 술을 다시 집어 들고 만 것처럼, 제 아무리 후회 속에 살아간들 씻을 수 없는 과거는 현재를 집어삼키고 구원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윌리엄은 감히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걸 짊어진 채 스스로 지워지고자 한다. 이에 빌(진 핵크만 분)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그가 과거의 자신이기 때문일 테다. 윌리엄의 말마따나, 단 한 번의 방아쇠가 “그 사람의 모든 것과 미래까지 없애는” 행위라면, 빌을 향한 방아쇠는 윌리엄, 그리고 아마 이스트우드 자신과 서부극을 향한 결단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모두를, 특히 자기 자신과 그 과거를, 데리고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사라진다. 사실 90년대에 나온 <용서받지 못한 자>는 때늦은 선언ㅡ서부극의 해체ㅡ 인지도 모른다. 허나, 이스트우드는 스스로 뛰어듦으로써 무엇보다 제 자신을 해체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다. 남은 게 있다면 그저 애달픈 정서가 아닐까. 이는 해체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서부극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 걸맞은 길이자 오직 이스트우드라 가능한 설득처럼 보인다. 폐쇄적인 굴레가 되어버린 세계에서의 자기 해체. 새로운 시대를 기약하지도 않은 채, 오히려 과거에 갇힌 채 미래라는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서부적 결단. 이로써 영화는 (모순적인 한계의 영리한 활용을 넘어) 어떤 면에선 <서부의 사나이>의 살부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의 완결적 결단조차 미처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까지 나아가는 듯도 보인다. 요컨대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윌리엄을 처절한 생의 굴레에 가두어 버리는 (제 자신에 대한) 복수다. 이를 반성이나 성찰이라고 일컫는 걸론 부족해 보이고, 어쩌면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무거운 카르마는 그런 단어들조차 위선 혹은 섣부른 바람에 머무르게 할 뿐이다. 만약 <용서받지 못한 자>를 서부적 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결코 서부적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미상관적인 오프닝 숏과 엔딩 숏. 어느 시대가 저무는 듯 애상한 정조를 자아내는 빛과 어둠, 그리고 작은 움직임만이 담긴 풍경이지만, 숏의 반복은 마치 그런 세계의 덫에 갇혀버린 윌리엄, 그러니까 서부극을 말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오롯한 이스트우드의 느린 걸음걸이와 주름이 드리운 굴곡진 표정은 그 자체로 웨스턴의 질곡이다. 이스트우드라는 존재, 이는 분명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대체 불가능의 존재다. 어쩌면 그 자체로 서부극의 일부라 할 수 있을, 그의 표정과 움직임은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질곡의 세계와 그 결단을 완성하는 유일무이한 언어다.
Jay Oh
4.5
영웅담으로 추앙하던 서부극의 실체. 폭력의 미화에 대한 자전적인 비판. Western disillusionment.
제시
4.0
면죄부 대신 살생부를 움켜쥔 노인의 뒷모습
서영욱
3.0
'스타'에서 '거장'으로
sean park
3.5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는 1%의 서사와 99%의 서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P1
4.5
클린트 이스트우드 옹의 찡그린 강렬한 눈빛, 낮게 깔리는 포스작렬 보이스..그리고 깨끗한 동쪽나무 할아버지에게 거침없이 달려가서 가슴과 머리에 한 발 한 발 수지침 놓이듯이 총알을 맞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임장호
4.5
몸이 노쇠해도 과거에 저지른 실력은 사라지지않는 죗값. 죄를 끝내 용서받지 않고 자신은 악으로 남아 또 다른 악을 처리해 선을 구하는 삶.
OverMind
4.5
서부극의 신화를 써내려간 본인이 서부영화의 실체를 까발린다. 서부영화의 종착역이라 할수있는 작품, 그는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이 작품으로 그의 능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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