恐怖分子
恐怖份子
1986 · ドラマ · 台湾
109分 · R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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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北。夜明けの街で、銃声に続きパトカーのサイレンの音が響く。アマチュア・カメラマンのシャオチャン(リウ・ミン)は、恋人のシャオウェン(ホアン・チアチン)を置いて外に飛び出す。不良たちのアジトの古アパートが、警察の手入れを受けたのだ。クー警部(クー・パオミン)率いる警察隊に包囲されたビルの裏から、混血の不良少女、シューアン(ワン・アン)が飛び降りる。足を痛めながらも現場から逃げる彼女の姿を、シャオチャンはカメラに収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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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땅
3.5
일상이 단조로워진다고 생각되고, 더이상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될때..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되고, 더이상 아무 낙이 없다고 생각될때... 되뇌어 보면, 아무것도 변한건 없는데 나만 변했다. 다 그대로인데.. 나만, 그자리에 서 있다. 세상이 낮설다. #20.1.9 (62)
르쟌공
4.5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공포버전. 현실과 창작물, 창작물과 현실을 분리하려는 태도와 일치시키려는 태도 양측 모두를 경계하며, 창작자의 윤리에 대해서 환기시킨다. . <스포일러 포함> . 마지막 그녀의 헛구역질은 무엇에 대한 반응이었을까? .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왜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소름이 돋을까.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이전에 에드워드 양이 만든 이 작품은 서사적으로 친절하지 않고, 3커플을 다루는 이야기도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면 이것이 주제적으로 그리고 영화적으로 긴밀하게 짜여진 흥미로운 텍스트이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과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여자친구이다. 소년은 자신의 숙소 주변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듣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다리를 다친 소녀를 만난다.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다. 한편, 근처의 한 집에는 평범해 보이는 부부가 살고 있다. 남편은 연구소에 다니는 듯하고, 아내는 서재에서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아서 고민인 상태이다. 남편은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무심히 말한다. 소설 쓰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창작자와 그 창작물의 주인공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 찍는 소년과 그의 여자친구는 각각 창작자와 그 창작물의 피사체로써 역할이 구분된다. 이는 소년과 소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녀가 장난 전화를 걸 때, 창작자인 소녀의 상상 속에서 권태로운 부부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쓴 소설 속의 주인공은 당연히 그 자신과 남편이다. . 가느다란 선은 무시무시한 폭탄의 도화선이 되며, 작은 균열은 거대한 건물도 무너트린다. 소년이 소녀를 찍은 사진 한 장은 소년 커플을 헤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고, 소녀가 건 한 통의 장난 전화는 권태로운 부부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관계를 만들었고, 소년이 확신에 차서 남편에게 건넨 사진은 파국의 신호탄이 되었다. . 아내가 어느 날 걸려온 낯선 여자로부터의 전화에서 남편의 바람을 확신했던 것은 자신의 불륜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였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서 들은 소재로는 전혀 소설을 쓰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소설을 완성하고 작가상까지 타게 된다. 반대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남편은 아마 자신이 동기를 모함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아내의 소설과 자신의 현실을 동일시하게 된다. 말하자면, 아내는 자신과 남편의 도덕적 타락을 배경으로 한 현실을 소설로 쓰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고, 남편은 소설은 허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과 공통점이 발견되자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이다. . 이런 점은 소년 커플에게서도 보인다. 소년은 자신의 창작물인 사진에 매혹되어 있으며, 그것과 현실이 일치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의 여자친구는 밤을 새워 소설을 읽을 정도로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년이 우연히 찍게 된 사진 속 소녀에게 반하여 그녀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사는 것, 그리고 그녀가 그의 앞에 실제로 등장하자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과 그가 여자친구로부터 소설 내용에 대해 전해 듣고 확신에 가득 차 남편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감독은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겪는 혼란을 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인상적인 연출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전반부의 어떤 사건을 보여준 후, 그것을 아내가 소설을 쓰면서 읊는 내레이션과 연결하여 그 사건이 그녀의 소설 속 이야기인지, 현실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만든다거나, 장난 전화를 거는 소녀의 목소리를 보이스오버로 깔고 실제로 그런 일을 벌였던 소년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후반부에서 남편이 아내의 소설대로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과 그의 최후를 연결시키는 것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복수를 끝낸 후, 허무한 표정으로 길을 걸어가는 남편의 뒤로 펼쳐지는 대형 영화 포스터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디인지 묻는 듯하다. . 다시 마지막 장면. 남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것 때문에 변해버린 아내와 스트레스를 받아 아내를 총으로 쏘고 자살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아내의 소설은 한 평론가에 의해 너무 사실적이라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내는 남편의 자살을 몰랐겠지만, 자신의 불륜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을 소설로 면죄부를 부여한 그녀가 자신의 꿈속에서 소설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어느 누가 구역질이 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샤오쓰(장첸)는 밍의 연기가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영화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하면서 무슨 영화를 찍느냐고 쏘아붙인다. 영화와 현실과의 관계는 에드워드 양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그는 실제 대만의 시대상이나 사회상을 자신의 영화의 핵심 배경이나 소재로 활용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당시 대만인들에게 자신의 영화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작품은 <고령가...> 이전 그가 좀 더 근원적으로 창작물과 현실 간의 간극을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작품 안에서 탐구했던 흔적처럼 보인다.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창작물은 창작물일 뿐이라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이나, 창작물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것이나 모두 지양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어떤 창작물이든 간에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될 수밖에 없기에.
권혜정
3.0
내가 쓴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STONE
3.5
현실에서 예술을 위안 삼을 순 있어도 예술이 현실의 피난처가 되진 못한다.
Cinephile
4.5
허구는 생각보다 더 가까이 당신의 현실 옆에 도사리고 있으니, 소설이든 영화든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변명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술은 현실에 기반한 속임수라는 그 성격을 이용하여 영화는 비겁한 현실의 비겁한 예술을 저격한다.
석미인
3.0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늘 마지막이 되서야 찾아온다.
이건영(everyhuman)
3.5
현실과 소설의 역전 구조가 기어이 맞닿은 순간, 가만히 있으면 갇힌다.
별,
4.0
마치 유령처럼 배회하는 누군가들은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며, 또 누군가는 그저 방황하며 과거의 존재했음을 토대로 현재의 허구적인 존재를 만들어내며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발 붙이고 있는 현실만을 보며 버틴다. .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누군가들의 방황이 우연을 빌어 느슨하게 이어질 때 허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재를 압도하여 지배한다. 누군가의 소설은 허구가 사실이 되어버린 듯 현실에서 힘을 얻고, 누군가의 사진은 형태만 남아버린 과거의 기억으로 아예 무화되어 현실로 이끈다. 그러나 존재를 지탱하던 끈이 허구로 인해 좌절되어버린(듯한) 누군가의 현실은 허구를 이겨낼만한 힘이 없다. . 허구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허구는 또한 현실로서 현혹될 수 있다. 일종의 자기 기만을 통한 허구로의 도피. 어쩌면 현실을 감내하여 버텨내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층위로서의 현혹된 허구를 받아들이기엔 누군가는 너무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너무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는 실존이라는 험난한 버팀의 안간힘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끝까지 용기내지 못하고 허구로서의 종결을 환상으로 미뤄둔채 실존으로부터 도피한다. 그것은 현실을 맞닥뜨리는 순수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을 정리하는 아름다움이나, 생존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을 외면하는 비겁함이다. 그러나 허구로의 도피로 생존한 누군가를 마냥 긍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토악질은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살아남았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존의 메스꺼움이다. 누군가들은 결국 모든 것을 함께하는 하나의 누군가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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