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시의적절하게 이따금씩 나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매번 부족하다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만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게 나타나 조용히 사라진다 선택적으로 불타오르고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면 이런영화 존재조차 모른채 도돌이표처럼 시대정신 현실반영 외치는 아이러니가 지속될것이다 자극적이지만 얄팍한 극 보다 설익었으나 진정성있는 사실이 더 가치있다 서로의 팔을 감아안고 울며 외치는 이 영화속의 학생들에게서 진짜 연대를 보았다いいね210コメント8
뚱이에요3.5"이미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할머니들에게 제대로된 사죄를 하는게 그렇게나 질질 끌고 어려운 일인가. - 제목만 보고 '엄복동' 떠올려서 죄송합니다. 대가리 박겠읍니다. . . .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흙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때로는 외롭고 슬프겠지만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윤미래 [꽃](Prod. by 로코베리)-いいね117コメント3
싱요미4.0군복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중국 관동에 도착했을 때 소녀의 나이 열여섯. 그곳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죽어도 잊을 수 없을 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당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픔을 감추고 살던 소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고 한 평생을 진실 규명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고단한 삶을 마치고 눈을 감았을 때 소녀는 어느덧 94세 노인이 되어 있었다. 27년간의 치열했던 투쟁. 하지만 할머니가 된 그 소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이의 단 한번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긴 그 노인은, 암투병중에도 과거를 부정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품지 않는 조국을 대신해 과거의 진실을 알기 위해 젊은 이들도 견디기 힘든 긴 비행 시간을 견디며 미국과 유럽 각지를 다니며 알리고 또 알렸다. 그 노인이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노인의 국가 원수는 2015년, 피해 노인들의 그 어떤 의사를 묻거나 동의를 얻지 않고 10억엔이라는 돈을 받고는 "국제 사회에서 다시는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물론 가해국의 사과는 없었다. . 노인의 국가는 노인이 자신의 분신이자 지나온 상처이자 돌이키고 싶은 과거를 투영했던 소녀상까지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소녀상을 막아선 2015년의 젊은이들까지 도살장에 끌고가는 가축처럼 무작위로 끌어냈다. . 한 많은 세월, 그 긴 시간 떠올리기도 싫은 소녀 시절의 그 일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언하고 증명했던 노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오히려 더욱 강하고 굳건한 눈빛을 잃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강건하고 꼬장꼬장했던 그 노인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제는 몇 남아있지 않은 동료를 떠나보낼때, 일본에서 여전히 조선의 정신을 잇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났을때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모든 걸 견뎌야하는 나를 위해 울지 않았던 않았던 노인이 흘린 눈물은, 한많은 세월을 등지고 떠난 친구와 여전히 일본에 남겨진 어린 소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 사무실에 있기 싫으니까 대충 보러가자라는 가볍디 가벼운 생각으로 갔던 '김복동' 시사회.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눈물이 줄줄 났다. 누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중에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고등학교 때 집에서 우연히 봤던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라고 답했었다. 오늘 이후로는 그 질문의 대답이 달라질 것 같다. .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いいね71コメント0
주 영 화3.0하나의 육체에 어찌 이토록 많은 맥락이 관통할 수 있을까. 여성, 노인, 위안부 피해자, 외면받았던 소수자, 인권운동가, 제3세계 아이들의 위인, 한때 누군가의 아내, 동지, 상처입은 한국 역사의 상징, 전쟁범죄의 피해자, 산증인, 아니 이제는 죽어 없는 인류사의 영웅, 변방의 히어로.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을 기꺼이 한 몸에 떠안기를 각오한 작은 몸은 당신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이처럼 다층적인 영웅을 본 일이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라도. + 내가 김복동 할머니를 영웅이라고 호명한 이유가 있다. 실질적 근거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넬슨 만델라 등과 함께 김복동 할머니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 그와 별개로 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고 히어로에 대해 고찰하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 <김복동>을 볼 때 ‘위안부 피해자’라는 꺼풀을 벗겨낸 인간 김복동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언맨은 수트를 벗으면 “백만장자, 플레이보이, 천재 과학자”가 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생각해볼만한 것은, 히어로는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체성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인간적인 혼란과 고뇌, 시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우리가 영웅이라 칭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 내가 <김복동>에서 마주한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다층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자 취준생이자 누군가의 친구로 살아가는 것도 이렇게나 힘들고 벅찬데 김복동 할머니는 그 많은 맥락들을 약한 노인의 몸으로 전부 감당하고 계셨다. 영화가 끝나고 짧은 GV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함께 생활하고 투쟁하셨던 윤미향 대표님이 ‘할머니는 길에서 사신 분’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할머니의 고통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미 그분은 자의든 타의든 일제강점기에 고통받았던 조선의 상징이 되었고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골칫거리 혹은 소모품이었으며 반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었던 제3세계 아이들에게 생활의 터전과 학교를 후원해주는 희망,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재일교포이면서도 소외받는 아이들의 학업을 위한 후원자, 피해자 동생에게 농담을 건네는 친근한 언니이자 동지, 매주 수요일에는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고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셨던 분이었고 지구촌의 자연재해와 인재와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언하셨던 인권운동가셨다. 위안부 할머니라는 수동적인 피해자 위치가 아닌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신 그분을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좋은 영화를 감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감별하는 것이다. <김복동>은 기교를 부리거나 무리한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과도하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다큐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로만 알고 있었고 그 이상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한 사람, 김복동을 담아낼뿐이다. . 영화관에 가서 봐도 좋고,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으로 찾아봐도 좋다. 그러나 여리고 약하기에 매번 앉아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당당하게 두 발로 일어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이크를 쥐고 단호하게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편견을 깨고 싶다면, 꼭 극장에서 볼 것을 권한다.いいね50コメント0
JY
시의적절하게 이따금씩 나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매번 부족하다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만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게 나타나 조용히 사라진다 선택적으로 불타오르고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면 이런영화 존재조차 모른채 도돌이표처럼 시대정신 현실반영 외치는 아이러니가 지속될것이다 자극적이지만 얄팍한 극 보다 설익었으나 진정성있는 사실이 더 가치있다 서로의 팔을 감아안고 울며 외치는 이 영화속의 학생들에게서 진짜 연대를 보았다
뚱이에요
3.5
"이미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할머니들에게 제대로된 사죄를 하는게 그렇게나 질질 끌고 어려운 일인가. - 제목만 보고 '엄복동' 떠올려서 죄송합니다. 대가리 박겠읍니다. . . .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흙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때로는 외롭고 슬프겠지만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윤미래 [꽃](Prod. by 로코베리)-
권혜정
4.0
한 명의 삶이 피묻은 역사를 대변하는 좋은 영화. 피해자의 신분을 넘어 한 평생 위대한 인권운동가로서 활약한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cgv죽전
싱요미
4.0
군복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중국 관동에 도착했을 때 소녀의 나이 열여섯. 그곳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죽어도 잊을 수 없을 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당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픔을 감추고 살던 소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고 한 평생을 진실 규명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고단한 삶을 마치고 눈을 감았을 때 소녀는 어느덧 94세 노인이 되어 있었다. 27년간의 치열했던 투쟁. 하지만 할머니가 된 그 소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이의 단 한번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긴 그 노인은, 암투병중에도 과거를 부정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품지 않는 조국을 대신해 과거의 진실을 알기 위해 젊은 이들도 견디기 힘든 긴 비행 시간을 견디며 미국과 유럽 각지를 다니며 알리고 또 알렸다. 그 노인이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노인의 국가 원수는 2015년, 피해 노인들의 그 어떤 의사를 묻거나 동의를 얻지 않고 10억엔이라는 돈을 받고는 "국제 사회에서 다시는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물론 가해국의 사과는 없었다. . 노인의 국가는 노인이 자신의 분신이자 지나온 상처이자 돌이키고 싶은 과거를 투영했던 소녀상까지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소녀상을 막아선 2015년의 젊은이들까지 도살장에 끌고가는 가축처럼 무작위로 끌어냈다. . 한 많은 세월, 그 긴 시간 떠올리기도 싫은 소녀 시절의 그 일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언하고 증명했던 노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오히려 더욱 강하고 굳건한 눈빛을 잃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강건하고 꼬장꼬장했던 그 노인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제는 몇 남아있지 않은 동료를 떠나보낼때, 일본에서 여전히 조선의 정신을 잇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났을때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모든 걸 견뎌야하는 나를 위해 울지 않았던 않았던 노인이 흘린 눈물은, 한많은 세월을 등지고 떠난 친구와 여전히 일본에 남겨진 어린 소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 사무실에 있기 싫으니까 대충 보러가자라는 가볍디 가벼운 생각으로 갔던 '김복동' 시사회.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눈물이 줄줄 났다. 누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중에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고등학교 때 집에서 우연히 봤던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라고 답했었다. 오늘 이후로는 그 질문의 대답이 달라질 것 같다. .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황재윤
3.0
잊어서는 안될 역사와 잊지 말아야 할 그녀의 삶.
다솜땅
5.0
저도. 기억합니다. 김복동! 할머니. 평안하세요.. #19.10.15 (1405) #욕 안하던 내가 욕이 는다. #눈물도 는다.
주 영 화
3.0
하나의 육체에 어찌 이토록 많은 맥락이 관통할 수 있을까. 여성, 노인, 위안부 피해자, 외면받았던 소수자, 인권운동가, 제3세계 아이들의 위인, 한때 누군가의 아내, 동지, 상처입은 한국 역사의 상징, 전쟁범죄의 피해자, 산증인, 아니 이제는 죽어 없는 인류사의 영웅, 변방의 히어로.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을 기꺼이 한 몸에 떠안기를 각오한 작은 몸은 당신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이처럼 다층적인 영웅을 본 일이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라도. + 내가 김복동 할머니를 영웅이라고 호명한 이유가 있다. 실질적 근거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넬슨 만델라 등과 함께 김복동 할머니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 그와 별개로 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고 히어로에 대해 고찰하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 <김복동>을 볼 때 ‘위안부 피해자’라는 꺼풀을 벗겨낸 인간 김복동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언맨은 수트를 벗으면 “백만장자, 플레이보이, 천재 과학자”가 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생각해볼만한 것은, 히어로는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체성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인간적인 혼란과 고뇌, 시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우리가 영웅이라 칭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 내가 <김복동>에서 마주한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다층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자 취준생이자 누군가의 친구로 살아가는 것도 이렇게나 힘들고 벅찬데 김복동 할머니는 그 많은 맥락들을 약한 노인의 몸으로 전부 감당하고 계셨다. 영화가 끝나고 짧은 GV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함께 생활하고 투쟁하셨던 윤미향 대표님이 ‘할머니는 길에서 사신 분’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할머니의 고통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미 그분은 자의든 타의든 일제강점기에 고통받았던 조선의 상징이 되었고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골칫거리 혹은 소모품이었으며 반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었던 제3세계 아이들에게 생활의 터전과 학교를 후원해주는 희망,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재일교포이면서도 소외받는 아이들의 학업을 위한 후원자, 피해자 동생에게 농담을 건네는 친근한 언니이자 동지, 매주 수요일에는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고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셨던 분이었고 지구촌의 자연재해와 인재와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언하셨던 인권운동가셨다. 위안부 할머니라는 수동적인 피해자 위치가 아닌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신 그분을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좋은 영화를 감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감별하는 것이다. <김복동>은 기교를 부리거나 무리한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과도하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다큐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로만 알고 있었고 그 이상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한 사람, 김복동을 담아낼뿐이다. . 영화관에 가서 봐도 좋고,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으로 찾아봐도 좋다. 그러나 여리고 약하기에 매번 앉아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당당하게 두 발로 일어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이크를 쥐고 단호하게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편견을 깨고 싶다면, 꼭 극장에서 볼 것을 권한다.
겨울비
3.0
1965년, 2015년 한일협정 맺은 부녀는 이 나라 역사에 가장 큰 수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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