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Oh3.5시간을 담는 시간을 담았다. 왕빙의 영화만 봐서는 몰랐을 왕빙의 모습들이 보였고, 간접적으로만 느껴졌던 왕빙의 태도가 보였다. 이걸로 충분했다. A filmed affirmation of Wang Bing's cinematic philosophy.いいね30コメント0
천수경3.5살면서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안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부국제에서 왕빙의 <청춘> 3부작을 2년에 걸쳐 완주함으로써 왕빙에 미친 사람이 되는 바람에. 부산에 있는 내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왕빙 얘기를 했다. 누가 나한테 부산에서 본 것 중에 뭐가 좋았는지 묻기만을 기다렸다가 쏟아냈다. 왕빙의 영화뿐 아니라 그런 영화를 찍는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어떤 생을 내가 살고 싶은지까지. 서울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어떻게 왕빙다움을 꾸준히 추구할지’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정성일을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왕빙을 너무 만나고 싶어서, 그 존재를 느끼고 싶어서 틀었다. 왕빙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희망처럼 느껴져서. 현시점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와닿는 희망이라서. 험지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을 향해 가졌던 편견이 여러모로 깨졌다. 왕빙은 수세식 변기도 없는 산골짜기에서 <세자매>를 찍을 때 후줄근한 옷을 입지 않았다. 두터운 패딩 속엔 체크 셔츠와 니트 풀오버가 숨어 있었다. 샌님 같은 차림으로 마을 사람들과 밥도 먹고 아이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훈수도 둔다. 거짓말을 하는 남자에겐 격앙된 어조로 진실을 따져 묻는다. “국가가 이들 모두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노인의 옆에선 온 얼굴을 구겨가며 할 말을 잃는다. 카메라를 끄고 세자매의 엄마와 함께 또라이 전남편의 뒷담도 까고. 법적인 조언도 해준다. 그 모습은 마치 친동생을 대하는 오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진심이다, 매 순간.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찍는 왕빙은 정신병동의 수감자들과 별로 구분이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의자에 앉아 잠든 왕빙의 얼굴에 드리운 쇠창살의 그림자와 햇살은 그의 옆 사람들에게로 쭉 이어진다. 카메라 렌즈 안으로 그의 혼이 빨려 들어간 걸 수감자들은 신기해한다. 자신들에겐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을 골똘히 찍는 감독을 한동안 구경하다가 이내 관심을 잃는다. 카메라에 머리를 박고 거의 고꾸라질 듯한 왕빙의 온몸은 그가 보고 있는 풍경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듯하다. 문득 저 쇠창살 바깥의 우리야말로 구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좁은 공간이 실은 창살의 바깥이고 내가 있는 이쪽이 안쪽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감독들과 회의할 땐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다른 이가 든 카메라의 방향을 가차 없이 틀어버리는 박력도 그냥 미쳤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니까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라는 말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영원히, 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나를 쉽게 허물어뜨리는 얼굴들이 있다. 편지 쓰는 사람의 얼굴, 달리는 사람의 얼굴, 우산 펴는 사람의 얼굴, 소주 따르는 사람의 얼굴. 카메라를 든 사람의 얼굴. 소중한 걸 생각하는 얼굴들인 것 같아서. 화면에서 왕빙이 사라지고 해맑게 노는 아이들이 멀리서 길게 잡힌다. 삶이란 저 정도의 즐거움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정도로는 삶을 축하해도 되지 않나 우리 모두. 음악도 귀엽고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린다. 왕빙이 장대한 것들을 찍지만, 결국 지키고자 하는 건 세상의 한 구석에서 작게 존재하는 웃음소리가 다인 것 같다. 그 아이들이 왕빙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좋다고 믿는 일에 의심 없이 몸을 내맡기는 모습이. *오프닝이랑 엔딩은 다소 난해한데... (영화 재생되고 2분 시점쯤 이 영화가 맞나 확인해야 했음). 왕빙이 인류의 희망이자 한 마리 천사고, 사람이기 전에 시네마라는 걸 표현하려는 시퀀스들인 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 마음만은 이해한다.いいね27コメント2
Indigo Jay3.5정성일 감독님의 3시간 55분 길이 다큐 <천당의 밤과 안개>는 왕빙 감독에 대한 대단한 흠모를 담았다. 영화 전반부는 <아버지와 아들> (2014), <세 자매> (2012)에 나왔던 장소 (예, 라오스 국경 정글)를 방문해서 출연했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왕빙 감독을, 후반부는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2013)를 정신병원 수용소 안에서 촬영하는 왕빙 감독을 보여준다. P.S. 1. 타이틀이 알랭 레네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다큐 <밤과 안개 Night and Fog>(1955)를 오마주한 듯 2. 2015.8.14 밤 11시부터 네 시간 동안 KU시네마에서 있었던 프라이빗 기술 시사회에 참석해서 냉방에 덜덜 떨며 보았던 기억이! 감독님께 팬카페 회원들이 타이틀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드렸으나 예상한대로 원래 제목을 고수하셨다. * 단평 https://m.blog.naver.com/cooljay7/220463767859 http://m.blog.naver.com/cooljay7/220463807574いいね10コメント1
MavericK4.0왕빙 감독은 영화 초반부 인터뷰에서 자신이 영화를 다루는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곳에서부터 ‘천당의 밤과 안개’가 정성일 감독이 배움을 얻으려는 자세와 왕빙 자신이 팡슈잉에서도 보여주었던, 어쩌면 고다르 감독님의 그 유명한 요구 ‘정치적인 영화를 찍지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찍어라.’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천당의 밤과 안개’속 두 편의 영화(‘세 자매’와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현실을 담아내려는 집요 한 끈기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오히려 벌어진 간극만큼 거리를 두고 안개처럼 비현실의 영역으로 자욱히 사라진다. 또한 중국이라는 공간에서 찍은 영화인 것을 환기했을 때 환상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논쟁점을 불러일으키며 어두운 곳, 인적이 드문 장소, 부부관계등 잊혀진 장소의 곳곳마다 혹은 보이지 않는 체제마저도 비판적 태도로 가득 물들인다. 환상에 가까워지려는 영화가 왕빙을 만나 확고한 태도와 기준점을 마련하여 집요하게 파고들 때,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는 감독의 모험의 가까운 태도가 ‘녹차의 중력’의 눈내리는 서울과 ‘천당의 밤과안개’의 눈내리는 시골마을 접점을 유지하며 우연을 동반한 선물처럼 다가온다.いいね6コメント0
twicejoy3.0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을 관음한다. 가난, 아이, 여성, 사회, 사람을 생각해 본다. -예술은 감정의 진실을 담아야 한다- 마지막은 영화의 전당에서. 2019.03.02. 시네마테크いいね4コメント0
Jay Oh
3.5
시간을 담는 시간을 담았다. 왕빙의 영화만 봐서는 몰랐을 왕빙의 모습들이 보였고, 간접적으로만 느껴졌던 왕빙의 태도가 보였다. 이걸로 충분했다. A filmed affirmation of Wang Bing's cinematic philosophy.
천수경
3.5
살면서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안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부국제에서 왕빙의 <청춘> 3부작을 2년에 걸쳐 완주함으로써 왕빙에 미친 사람이 되는 바람에. 부산에 있는 내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왕빙 얘기를 했다. 누가 나한테 부산에서 본 것 중에 뭐가 좋았는지 묻기만을 기다렸다가 쏟아냈다. 왕빙의 영화뿐 아니라 그런 영화를 찍는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어떤 생을 내가 살고 싶은지까지. 서울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어떻게 왕빙다움을 꾸준히 추구할지’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정성일을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왕빙을 너무 만나고 싶어서, 그 존재를 느끼고 싶어서 틀었다. 왕빙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희망처럼 느껴져서. 현시점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와닿는 희망이라서. 험지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을 향해 가졌던 편견이 여러모로 깨졌다. 왕빙은 수세식 변기도 없는 산골짜기에서 <세자매>를 찍을 때 후줄근한 옷을 입지 않았다. 두터운 패딩 속엔 체크 셔츠와 니트 풀오버가 숨어 있었다. 샌님 같은 차림으로 마을 사람들과 밥도 먹고 아이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훈수도 둔다. 거짓말을 하는 남자에겐 격앙된 어조로 진실을 따져 묻는다. “국가가 이들 모두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노인의 옆에선 온 얼굴을 구겨가며 할 말을 잃는다. 카메라를 끄고 세자매의 엄마와 함께 또라이 전남편의 뒷담도 까고. 법적인 조언도 해준다. 그 모습은 마치 친동생을 대하는 오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진심이다, 매 순간.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찍는 왕빙은 정신병동의 수감자들과 별로 구분이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의자에 앉아 잠든 왕빙의 얼굴에 드리운 쇠창살의 그림자와 햇살은 그의 옆 사람들에게로 쭉 이어진다. 카메라 렌즈 안으로 그의 혼이 빨려 들어간 걸 수감자들은 신기해한다. 자신들에겐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을 골똘히 찍는 감독을 한동안 구경하다가 이내 관심을 잃는다. 카메라에 머리를 박고 거의 고꾸라질 듯한 왕빙의 온몸은 그가 보고 있는 풍경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듯하다. 문득 저 쇠창살 바깥의 우리야말로 구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좁은 공간이 실은 창살의 바깥이고 내가 있는 이쪽이 안쪽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감독들과 회의할 땐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다른 이가 든 카메라의 방향을 가차 없이 틀어버리는 박력도 그냥 미쳤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니까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라는 말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영원히, 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나를 쉽게 허물어뜨리는 얼굴들이 있다. 편지 쓰는 사람의 얼굴, 달리는 사람의 얼굴, 우산 펴는 사람의 얼굴, 소주 따르는 사람의 얼굴. 카메라를 든 사람의 얼굴. 소중한 걸 생각하는 얼굴들인 것 같아서. 화면에서 왕빙이 사라지고 해맑게 노는 아이들이 멀리서 길게 잡힌다. 삶이란 저 정도의 즐거움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정도로는 삶을 축하해도 되지 않나 우리 모두. 음악도 귀엽고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린다. 왕빙이 장대한 것들을 찍지만, 결국 지키고자 하는 건 세상의 한 구석에서 작게 존재하는 웃음소리가 다인 것 같다. 그 아이들이 왕빙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좋다고 믿는 일에 의심 없이 몸을 내맡기는 모습이. *오프닝이랑 엔딩은 다소 난해한데... (영화 재생되고 2분 시점쯤 이 영화가 맞나 확인해야 했음). 왕빙이 인류의 희망이자 한 마리 천사고, 사람이기 전에 시네마라는 걸 표현하려는 시퀀스들인 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 마음만은 이해한다.
배 윤 서
3.5
평론가 정성일, 왕빙의 영화 시공간에서, 왕빙을 탐구하며, 왕빙이 전하는 질문을 받고, 혼자만의 왕빙 에세이를 차근차근 써내려 나가다.
Indigo Jay
3.5
정성일 감독님의 3시간 55분 길이 다큐 <천당의 밤과 안개>는 왕빙 감독에 대한 대단한 흠모를 담았다. 영화 전반부는 <아버지와 아들> (2014), <세 자매> (2012)에 나왔던 장소 (예, 라오스 국경 정글)를 방문해서 출연했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왕빙 감독을, 후반부는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2013)를 정신병원 수용소 안에서 촬영하는 왕빙 감독을 보여준다. P.S. 1. 타이틀이 알랭 레네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다큐 <밤과 안개 Night and Fog>(1955)를 오마주한 듯 2. 2015.8.14 밤 11시부터 네 시간 동안 KU시네마에서 있었던 프라이빗 기술 시사회에 참석해서 냉방에 덜덜 떨며 보았던 기억이! 감독님께 팬카페 회원들이 타이틀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드렸으나 예상한대로 원래 제목을 고수하셨다. * 단평 https://m.blog.naver.com/cooljay7/220463767859 http://m.blog.naver.com/cooljay7/220463807574
MavericK
4.0
왕빙 감독은 영화 초반부 인터뷰에서 자신이 영화를 다루는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곳에서부터 ‘천당의 밤과 안개’가 정성일 감독이 배움을 얻으려는 자세와 왕빙 자신이 팡슈잉에서도 보여주었던, 어쩌면 고다르 감독님의 그 유명한 요구 ‘정치적인 영화를 찍지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찍어라.’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천당의 밤과 안개’속 두 편의 영화(‘세 자매’와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현실을 담아내려는 집요 한 끈기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오히려 벌어진 간극만큼 거리를 두고 안개처럼 비현실의 영역으로 자욱히 사라진다. 또한 중국이라는 공간에서 찍은 영화인 것을 환기했을 때 환상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논쟁점을 불러일으키며 어두운 곳, 인적이 드문 장소, 부부관계등 잊혀진 장소의 곳곳마다 혹은 보이지 않는 체제마저도 비판적 태도로 가득 물들인다. 환상에 가까워지려는 영화가 왕빙을 만나 확고한 태도와 기준점을 마련하여 집요하게 파고들 때,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는 감독의 모험의 가까운 태도가 ‘녹차의 중력’의 눈내리는 서울과 ‘천당의 밤과안개’의 눈내리는 시골마을 접점을 유지하며 우연을 동반한 선물처럼 다가온다.
firebird
3.5
당신의 친구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우정 어린 헌사
twicejoy
3.0
바라보는 눈을 바라보는 눈, 을 관음한다. 가난, 아이, 여성, 사회, 사람을 생각해 본다. -예술은 감정의 진실을 담아야 한다- 마지막은 영화의 전당에서. 2019.03.02. 시네마테크
영화보는 정토끼
2.0
정성일 평론가의 덕질을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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