オフィサー・アンド・スパイ
J’accuse
2019 · ドラマ/歴史/サスペンス · フランス, イタリア
132分 · PG12
1894年のフランス。ユダヤ系の陸軍大尉ドレフュス(ルイ・ガレル)は、ドイツに軍事機密を流したスパイ容疑で終身刑を宣告される。ところが、対敵情報活動を率いるピカール中佐(ジャン・デュジャルダン)が、ドレフュスの無実を示す衝撃的な証拠を見つける。上官に対処を求めるが、国家的なスキャンダルを恐れる上層部は隠蔽をもくろみ、ピカールに左遷を命じる。ピカールはすべてを失っても尚ドレフュスの再審を願い、己の信念に従って作家ゾラ(アンドレ・マルコン)らに支援を乞う。しかし、腐敗した権力や反ユダヤ勢力との過酷な闘いが彼らの行く手を阻むの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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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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挿入曲情報

Contre-enquête

Quatuor avec piano No. 2, Op. 45: I. Allegro molto moderato (feat. Alain Planès, Aurélien Sabouret, Estelle Villotte & Hugues Borsarello)

Le petit bleu

L'île du diable

L'Attentat

J'accuse




Cinefeel
영화가, 예술이 한 여성의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에겐 더 와닿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델을 응원한다.
Jay Oh
3.5
휘황찬란한 국기 뒤 문드러진 진실. 탁월한 역사영화이나 논란이 될만도 하다. 하필 당신이 진실과 정의를 얘기하니 찜찜하다. Expertly rendered historical injustice that somewhat invites controversy.
Dh
3.5
깊숙이 가려진 진실 속 길고 긴 투쟁 #양심과 정직
Eun Hye Choo
3.5
작품과 작가는 분리될 수 없다. 작가의 세계관이, 표현의 능력이 작품 속에 녹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할 수도 없다.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작품은 그 자체의 생명성을 지니고 관객에게 해석자로서의 새로운 창작권을 부여하는 독립된 개체로 보아져야 한다. 프랑스 인권 역사의 한 분기점이었던 드레퓌스가 영화로 만들어졌을때, 왜 하필 폴란스키일까 했지만, 개인으로서의 폴란스키는 범죄자이고 인격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며 J'accuse 마저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보여져야 하고, 영화적 만듦새에 대한 비난이든 칭찬이든 평가는 관객에게 주어져야 한다.
양기연
4.5
그 작가는, 그리고 그의 카메라는 그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 (스포일러) . 드레퓌스의 강등식. 카메라는 드레퓌스의 계급장, 훈장, 단추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이때 일부 숏들에서 카메라의 렌즈와 바통을 터치하듯 이를 대체하는 또 다른 렌즈가 등장한다. 바로 멀리서 강등식을 지켜보는 피카르의 망원경 렌즈이다. 피카르의 망원경 렌즈는 카메라 렌즈와 똑같은 시선으로, 바로 그 클로즈업으로 드레퓌스의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카메라는 망원경을 통한 피카르의 시선을,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다시 망원경의 프레임을 끼워넣음으로써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이렇게 카메라와 피카르의 시선은 동일시된다. . 피카르의 망원경 렌즈가 카메라의 렌즈와 동일시되는 장면은 이후 또 한 번 등장한다. 피카르는 에스테르하지를 감시하며 그의 동향을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이때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망원경의 프레임을 덧붙인 개별 숏으로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 감시를 이어받은 경찰로부터, 에스테르하지를 카메라로 촬영한 스냅샷 두 장이 전달된다. 영화의 첫 씬인 드레퓌스의 강등식에서 이 영화를 찍은 카메라의 시선을 피카르의 망원경이 고스란히 이어받고, 이러한 연결은 카메라 프레임 내부의 망원경 프레임이라는 이중의 프레임 하의 숏 연결로써 시각화된 바 있다. 이제 피카르의 망원경의 역할을 다시 경찰의 카메라가 고스란히 이어받고, 이러한 연결은 카메라 프레임 내부의 망원경 프레임이라는 이중의 프레임에서 카메라 프레임 내부의 또 다른 카메라 프레임(스냅샷 상의 프레임)이라는 또 다른 이중의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서사 외의 카메라와 연결되었던 피카르의 시선(망원경)이 서사 내의 카메라와 다시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피카르의 시선과 카메라 간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 피카르가 중령으로 진급하고 새 정보부장 자리에 서게 된 뒤 그는 빈집인 줄 알았던 정보부의 아지트로 일터를 옮긴다. 이 공간은 사실상 스튜디오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분업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흡사 영화 스탭들을 연상시킨다. 누군가는 촬영 감독처럼 감시 대상의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음향 감독처럼 감시 대상의 공간을 도청한다. 누군가는 각본가처럼 감시 대상 관련 자료들을 모아온다. 누군가는 편집 감독처럼 찢겨진 서한들을 재조립한다. 그가 찢겨진 종이조각들을 테이프로 이어붙이는 행위는 말 그대로 '콜라주(이 단어의 어원은 '풀로 붙이다'라는 프랑스어 coller이다.)'로, 이는 영화 편집 즉, '몽타주'의 가장 원형적 형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편집의 초기 형태는 직접 필름을 자르고 그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카메라의 시선과 동일시되던 시선의 주체, 피카르는 바로 이 모두를 총괄하는 감독이라 할 것이다. . 전임 감독(전임 정보부장인 상데르 대령)이 병으로 사임하면서 갑작스레 그 감독직을 맡게 된 피카르는 곧 전임 감독이 남긴 작품에 큰 하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군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작품 즉, 자신이 맡은 군의 업무는 진실과 정의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작품을 그에 맞추어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군은 진실과 정의를 따른다는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역으로 진실을 작품에 맞추어 조작하기 시작한다. . 한 편의 영화는 실화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실과 온전히 같을 수 없다.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고, 음향을 녹음하고, 이를 편집하는 모든 과정들이 '재현'이기에, 그 재현을 거칠 때마다 영화는 그 재현의 대상으로부터 괴리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지닌다. 각본가 앙리가 자료를 그대로 수집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자료를 조작하고, 편집감독 로트가 그 조작된 자료를 손쉽게 짜깁기(몽타주)한 것처럼, 영화는 여차하면 진실을 스스로 덮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취약하다. 다만 그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발버둥치는 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특정 사건의 수사도 이미 지나간 과거의 특정 사건에 관한 모든 사실 관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그 수사를 맡고 판결을 맡은 이들의 의무일 것이다. 피카르와 다른 군인들은 모두 진실과 작품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피카르가 작품을 진실 쪽에 더 가까이 붙이려 하는 입장이라면 다른 군인들은 진실을 작품 쪽에 가까이 붙이려 한다는 방향성의 차이가 있을 뿐. . 카메라에는, 영화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피카르가 명세서와 에스카르하지의 서한 간의 필적의 유사성을 발견한 순간, 카메라는 페이드아웃과 플래시백이라는 아주 간단한 무기를 들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진실의 한 면을 관객들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들춰보여준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글 '나는 고발한다'가 발표된 날, 카메라는 그 피고발자들 각각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부분을 서사 내에서 직접 발화하여 읽게 하거나 아니면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읽게 하는 개별 숏들을 몽타주로 이어붙임으로써, 법이 그들을 심판하지 못하였더라도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가상의 법정을 마련한다. . 그러나 동시에 카메라는, 영화는 나약하고 무력하다. 카메라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진실을 미리 들춰본들, 영화가 가상의 법정을 마련하여 진짜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한들, 드레퓌스가 무죄를 선고받기까지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그 오랜 시간을 자막 몇 줄로 처리하고 컷으로 연결함으로써 어물쩡 넘어가는 식으로 눈속임은 할 수 있지만 그 개인에게 남겨진 시간의 무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 피카르가 밝히려던 진실의 대상이었던, 카메라의 객체였던 드레퓌스는 복권 이후 그 진실을 밝히려던 자이자 카메라 뒤의 감독 및 작가였던 피카르를 찾아온다. 드레퓌스는 장관이 된 피카르에게 자신이 억울하게 복역한 기간만큼의 진급을 부탁하나 단칼에 거절당한다. 카메라가 아무리 그 객체에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재현을 거치는 이상 그 객체에 온전히 동화될 수는 없다. 피카르가 아무리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히려 했을지언정 그와 드레퓌스 사이에는 영화의 첫 씬에서 피카르가 드레퓌스를 망원경으로 멀찍이서 바라볼 때 그 물리적 거리만큼의 심리적 거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피카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새 사무실의 창문을 열 수 없었던 것처럼, 피카르는 그 창문이 상징하는 렌즈 너머의 대상과 직접 면대면으로 맞닿지 못한 채 카메라 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피카르는 카메라 렌즈 뒤 작가로서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피카르는 자신의 반유대주의를 내버리지 않아도 되는 카메라 뒤 안전지대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피카르는 모니에 부인을 사랑했지만 모니에 부인은 그와 자신이 결혼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의 프로포즈를 거절한다. 모니에 부인이 보기에 피카르는 피카르 자신도, 피카르 자신이 사랑한 대상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다. 피카르는 자신의 눈, 자신이 직접 품고 태어난 생체적 렌즈에 비친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온전히 다가설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더라도 그럴진대 반유대주의를 사이에 둔 채 피카르와 드레퓌스가 과연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그 둘은 그렇게 단 한 번 사적인 대화를 나눈 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 작가는, 그리고 그의 카메라는 자신의 렌즈에 비친 대상에게 그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134340
4.0
늘 양심은 약자가 가지고 있고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 *에밀 졸라가 졸라 멋있다. 작가에게 직업정신이란 진정성이 아닐까
자드낌
3.5
이게 바로 ‘웰메이드’ 착실하고 집중력있게 전개되는 사건.
(Ro6)
4.5
유대인을 싫어하지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 로 판단하는 이성적인 마인드 덕에 묻힐 사건이 빛이 되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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