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ung_Wonly4.0“용서가 유일한 길이야. 그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나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책<용서의 나라> 중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며 김현숙 장관이 말했다. 여성이 (교제상대 혹은 스토커) 남성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면 아직도 이렇게 말한다. "여자만 피해자인가. 남자도 피해자다." "젠더 갈등 부각마라" 이렇듯 흔히 "남자도 피해자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가,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자기순환적 동문서답을 반복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얘기할 때 남자 피해자도 있다는 얘기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 피해자에 관심있는게 아니라 그냥 여자 피해 얘기 안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남자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다는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런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수용한 결과가 "여성에 대한 폭력(VAW)"을 "젠더기반폭력(GBV)"라고 명명하게 된 이유다. 피해자의 범위가 더 넓게 사고되어야 하고 피해의 특징에 대한 세분화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사람이 있다면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니 우리 성차별적 구조와 정상성 규범 자체가 젠더폭력을 용이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데 합의하고 성평등한 사회 좀 만들어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설명을 시작하면 저들은 급격하게 관심을 잃는다. 그리고 다시 "모든 남자가 그런건 아니다"라고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라며 분노의 땔감을 수집한다. 모든 남자가 그런건 아니라는거 당연히 안다. 누가 모르나?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성급한 일반화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될 수 조차 없고, 경향과 통계에 대한 사회과학적 지식 생산 체계 전반에 대한 무지만을 드러낼 뿐이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데에만 몰두하는 발화는 병리적인 수준으로까지 악화된 나르시시즘이기도 하다. ‘모두’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태도, 맥락적 지식을 무책임한 상대주의로 오인하며 어떤 지식도 인정할 수 없다고 선동하는 반지성주의다. 텔레그램 N번방 이후의 한국 사회에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도, 미투 이후의 성평등 학교를 위한 정책도, 강간최협의설 폐지도, 가정폭력 스토킹 대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대책도 없고, 오직 "성폭력 무고죄 강화"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한테 꼼짝도 하지 말고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니들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건가. 뚜렷한 성별 경향성이 드러나는 젠더기반폭력의 문제를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이 반응하는 수준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이런 시대는 나를 늘 피곤하게 한다. 마치 얼른 지쳐 나가 떨어지라는 듯이. 용서가 평화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가. 용서의 과정을 밟으며 가야할 평화로운 세상까지 너무 아득하다.いいね48コメント0
anjo4.0"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 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모든 문제와 고통과 몸부림을 겪어내야 하는 운명인 것 같아." 어머니의 담담한 말이, 궁지에 몰려 도망갈 틈조차 없는 이 나라 여성들의 기도문 같았다. '이렇게 될 운명'이란 건 없다. 겪어선 안 될 끔찍한 외상은 살인과도 같다. 카데라는 수도 없이 죽었다. '살인' 피해자의 호소는 닿을 곳 없이 흩어지다가 되레 그 자신의 심장을 겨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은 채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소녀들에게 전하는 영화.いいね6コメント0
박형준5.0딸에게는 반복되지 않기를, 같은 여성들에게는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선다. 숙연해진다. 누가 가해자인가? 아버지. 남성. 그를 누가 옹호하는가? 기성 사회. 종교, 언론, 정치, 제도, 친척, 이웃. 잡것들. 어느 국가, 어느 문화권을 보든 가부장제는 이 모양이다.いいね5コメント0
보경4.0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가 이토록 어려운 걸까. 원제인 A thousand girls like me, 처럼 아직도 고통 속에서 처절히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카테라를 기억하며.いいね4コメント0
Jang5.0프랑스 대사관에서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미소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내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 가여웠다. 프랑스에서는 고통없이 꽃길만 걸었으면いいね3コメント0
한나5.0아버지의 아들과 딸을 낳아도 강간이라 밝힐 수 없는 현실 피해자이지만 이사다니고 구박받는 슬픈현실 엔딩크레딧에서 프랑스서 약혼자를 만나 부르카를 벗고 사는 사진을 보니 이렇게 내가 기쁠수가!!いいね2コメント0
Hyoung_Wonly
4.0
“용서가 유일한 길이야. 그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나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책<용서의 나라> 중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며 김현숙 장관이 말했다. 여성이 (교제상대 혹은 스토커) 남성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면 아직도 이렇게 말한다. "여자만 피해자인가. 남자도 피해자다." "젠더 갈등 부각마라" 이렇듯 흔히 "남자도 피해자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가,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자기순환적 동문서답을 반복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얘기할 때 남자 피해자도 있다는 얘기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 피해자에 관심있는게 아니라 그냥 여자 피해 얘기 안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남자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다는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런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수용한 결과가 "여성에 대한 폭력(VAW)"을 "젠더기반폭력(GBV)"라고 명명하게 된 이유다. 피해자의 범위가 더 넓게 사고되어야 하고 피해의 특징에 대한 세분화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사람이 있다면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니 우리 성차별적 구조와 정상성 규범 자체가 젠더폭력을 용이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데 합의하고 성평등한 사회 좀 만들어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설명을 시작하면 저들은 급격하게 관심을 잃는다. 그리고 다시 "모든 남자가 그런건 아니다"라고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라며 분노의 땔감을 수집한다. 모든 남자가 그런건 아니라는거 당연히 안다. 누가 모르나?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성급한 일반화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될 수 조차 없고, 경향과 통계에 대한 사회과학적 지식 생산 체계 전반에 대한 무지만을 드러낼 뿐이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데에만 몰두하는 발화는 병리적인 수준으로까지 악화된 나르시시즘이기도 하다. ‘모두’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태도, 맥락적 지식을 무책임한 상대주의로 오인하며 어떤 지식도 인정할 수 없다고 선동하는 반지성주의다. 텔레그램 N번방 이후의 한국 사회에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도, 미투 이후의 성평등 학교를 위한 정책도, 강간최협의설 폐지도, 가정폭력 스토킹 대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대책도 없고, 오직 "성폭력 무고죄 강화"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한테 꼼짝도 하지 말고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니들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건가. 뚜렷한 성별 경향성이 드러나는 젠더기반폭력의 문제를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이 반응하는 수준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이런 시대는 나를 늘 피곤하게 한다. 마치 얼른 지쳐 나가 떨어지라는 듯이. 용서가 평화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가. 용서의 과정을 밟으며 가야할 평화로운 세상까지 너무 아득하다.
영황
3.5
각 인종들이 차별 받지 않는 나라들은 있지만, 어디에도 여성들이 차별 받지 않는 나라는 없더라.
다이루다
4.0
너무 처참한 내용이라 끝까지 볼 용기가 안났음 너무나 하... 뭐라 할 말이 잃음
anjo
4.0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 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모든 문제와 고통과 몸부림을 겪어내야 하는 운명인 것 같아." 어머니의 담담한 말이, 궁지에 몰려 도망갈 틈조차 없는 이 나라 여성들의 기도문 같았다. '이렇게 될 운명'이란 건 없다. 겪어선 안 될 끔찍한 외상은 살인과도 같다. 카데라는 수도 없이 죽었다. '살인' 피해자의 호소는 닿을 곳 없이 흩어지다가 되레 그 자신의 심장을 겨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은 채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소녀들에게 전하는 영화.
박형준
5.0
딸에게는 반복되지 않기를, 같은 여성들에게는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선다. 숙연해진다. 누가 가해자인가? 아버지. 남성. 그를 누가 옹호하는가? 기성 사회. 종교, 언론, 정치, 제도, 친척, 이웃. 잡것들. 어느 국가, 어느 문화권을 보든 가부장제는 이 모양이다.
보경
4.0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가 이토록 어려운 걸까. 원제인 A thousand girls like me, 처럼 아직도 고통 속에서 처절히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카테라를 기억하며.
Jang
5.0
프랑스 대사관에서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미소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내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 가여웠다. 프랑스에서는 고통없이 꽃길만 걸었으면
한나
5.0
아버지의 아들과 딸을 낳아도 강간이라 밝힐 수 없는 현실 피해자이지만 이사다니고 구박받는 슬픈현실 엔딩크레딧에서 프랑스서 약혼자를 만나 부르카를 벗고 사는 사진을 보니 이렇게 내가 기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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