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ung_Wonly3.0모든 여성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섹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제일 젠더 극우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자가 원하는 범주에서 벗어난 자기 경험을 되도록 숨긴다. 그 궤도를 이탈한 여자에게 어떠한 추방과 사회적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안다. 대부분의 여성은 몸만 여자일 뿐이다. 늙을수록 볼품없고 추해지는 몸으로 변한다는 남자의 사고방식을 머리에 이고, 비위 맞추기를 일상 노동으로 삼으며 산다. 여자들은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남자의 벗은 몸은 공포이고, 폭력이다. 그런데도 사랑은 여자의 일이다. (남자에게 여자와의 사랑은 남성 우정(연대)만큼 중요하지 않다)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 노동, 육체노동, 그 모든 비용은 여자의 몫이다. 여성이 그 일을 그만두는 순간, 이기적인 년, 창녀라는 비난과 함께 대부분의 관계는 끝난다. 성별 사회에서 여자에게 사랑은 사회적 관계, 생존, 돈, 자아실현, 성취 등 인생의 모든 것이기 쉽다. 영화도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사랑은 여자의 일이되, 사랑의 주체는 남자'라는 강력한 체제에 시달리던 낸시(에마 톰슨)는 '마지막 모험'을 강행한다. 언제나 상처는, 이야기는 자신의 풍경에서 삶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처럼 마무리됐지만,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섹스란 어떤 여자들에게는 극심한 통증이다. 젊은 남자 리오와 함께 할 섹스는 대단히 준비되고, 기획된, 서로가 동의한 '안전'한 섹스다. 자율적 선택으로서의 섹스는 나쁜 것일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섹슈얼리티가 성폭력/성매매, 성관계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건, 남성의 쾌락은 가학적인 것으로 사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 반대, 피학적인 섹슈얼리티가 익숙하여지도록 만들어져 왔다. 낸시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섹스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상대에게 오르가슴을 주문(애원)하는 듯 보였다. 낸시가 지독히 외로운 여자였다는 이유로 평소답지 않은 도발적인 섹스를 선택했다고 봤다면, 여성의 주체성과 삶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낸시의 일탈 욕망은 심한 불편함을 남긴다. 늙고 외로운 여자는 욕망도 선택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모험이란 꼬리표가 따른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섹스를 원하는 욕망이 있다고 강요하지만, 여성이 섹스를 선택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いいね45コメント1
주+혜4.0욕망은 죄가 없어.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저기 저 무시무시한 쾌락주의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작은 정원 같은 거나 조용히 가꾸는 거라잖아요. 오르가즘은 잘 모르겠고 광대는 확실히 낯짝을 가리네요. 그러니 오늘 당신의 시간에 살아있음이 가득하게 풍성하기를.いいね33コメント0
이동진 평론가
3.0
도발적일 정도로 솔직한 쾌락의 찬가.
망고무비
2.5
이해는 되지만 설득은 안되는 성적해방 속 성장.
권혜정
3.5
욕망에 대한 진솔한 담론. 엠마 톰슨의 연기는 놀랍고, 영화는 의외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2022 CAV
뭅먼트
3.0
특별한 대화, 특별한 이해, 특별한 컨큐피슨스.
리얼리스트
3.5
욕망과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담론
Hyoung_Wonly
3.0
모든 여성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섹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제일 젠더 극우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자가 원하는 범주에서 벗어난 자기 경험을 되도록 숨긴다. 그 궤도를 이탈한 여자에게 어떠한 추방과 사회적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안다. 대부분의 여성은 몸만 여자일 뿐이다. 늙을수록 볼품없고 추해지는 몸으로 변한다는 남자의 사고방식을 머리에 이고, 비위 맞추기를 일상 노동으로 삼으며 산다. 여자들은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남자의 벗은 몸은 공포이고, 폭력이다. 그런데도 사랑은 여자의 일이다. (남자에게 여자와의 사랑은 남성 우정(연대)만큼 중요하지 않다)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 노동, 육체노동, 그 모든 비용은 여자의 몫이다. 여성이 그 일을 그만두는 순간, 이기적인 년, 창녀라는 비난과 함께 대부분의 관계는 끝난다. 성별 사회에서 여자에게 사랑은 사회적 관계, 생존, 돈, 자아실현, 성취 등 인생의 모든 것이기 쉽다. 영화도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사랑은 여자의 일이되, 사랑의 주체는 남자'라는 강력한 체제에 시달리던 낸시(에마 톰슨)는 '마지막 모험'을 강행한다. 언제나 상처는, 이야기는 자신의 풍경에서 삶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처럼 마무리됐지만,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섹스란 어떤 여자들에게는 극심한 통증이다. 젊은 남자 리오와 함께 할 섹스는 대단히 준비되고, 기획된, 서로가 동의한 '안전'한 섹스다. 자율적 선택으로서의 섹스는 나쁜 것일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섹슈얼리티가 성폭력/성매매, 성관계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건, 남성의 쾌락은 가학적인 것으로 사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 반대, 피학적인 섹슈얼리티가 익숙하여지도록 만들어져 왔다. 낸시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섹스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상대에게 오르가슴을 주문(애원)하는 듯 보였다. 낸시가 지독히 외로운 여자였다는 이유로 평소답지 않은 도발적인 섹스를 선택했다고 봤다면, 여성의 주체성과 삶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낸시의 일탈 욕망은 심한 불편함을 남긴다. 늙고 외로운 여자는 욕망도 선택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모험이란 꼬리표가 따른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섹스를 원하는 욕망이 있다고 강요하지만, 여성이 섹스를 선택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주+혜
4.0
욕망은 죄가 없어.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저기 저 무시무시한 쾌락주의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작은 정원 같은 거나 조용히 가꾸는 거라잖아요. 오르가즘은 잘 모르겠고 광대는 확실히 낯짝을 가리네요. 그러니 오늘 당신의 시간에 살아있음이 가득하게 풍성하기를.
겨울비
3.5
그녀는 지난 삶을 고백하며 후회하며 사과했고 그는 지난 날의 상처를 치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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