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4.0(스포일러) <뷰티풀 비잉즈>는 늘 폭력의 희생자로 살았던 발리라는 소년이 아디의 권유로 그의 무리에 들어가 그곳에서 구원과 희망을 발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단에서는 본인이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기본 골조를 가진 영화다. <뷰티풀 비잉즈>의 비범한 지점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을 발리가 아닌 아디로 설정한 부분이다. 지옥같던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단에서 희망을 얻고, 그러다 결국 그 집단의 모순에 의해 갈등을 하는 발리의 이야기를 발리의 시점 그대로 전개해나갔다면 그건 우리가 수 없이 봐온 여타 소년성장물과 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영화는 발리의 시점으로 출발해서 발리가 아디의 집단에 소속되는 대목을 기점으로 아디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말하자면 아디는 발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먼저 경험한 인물로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사실상 발리를 아디의 과거로 묘사한다. 가정 내외부에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발리는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을 띤 아디의 집단에서 스스로 그 폭력성을 체득하며 피해자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폭력적 성향을 통해 또 다른 폭력으로부터 본인을 비호하는 아디의 집단은 발리에게 하나의 환상에 다름 없다. .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환상에 흠뻑 취해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는 발리의 흥분이 아닌, 그러한 환상이 단지 환상일 뿐임을 자각한 인물인 아디의 회의감에 주목한다. 발리와 달리 폭력 자체에 신물이 난 아디는 본인의 집단에서 더이상 그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한다. 현실세계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아디는 실제 환상의 영역으로 도피하기에 이른다. 폭력의 세계에서 탈피해 평온함에 이르고픈 아디의 심리가 투영된 일련의 환각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발리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돌아오자 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동시에 아디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오는 후반부의 에피소드 마저도 마치 아디의 환상인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점차적으로 그의 환상에 균열을 일며 그를 환상의 영역에서도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 아디를 제외한 발리, 코니, 시기는 여전히 자신들의 집단이 유의미한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그들의 힘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더 큰 폭력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아버지가 돌아온 발리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폭력에 대해 언제나 더 강도 높은 폭력으로 대항해온 코니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통해 더이상 이전과 같은 저항적 태도를 견지하고 삶을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며 이에 괴로워한다.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시기 역시 그들의 좌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기라는 인물은 코니를 주축으로한 집단 내에 속할 때에만 온전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온전해지기 위해선 그들의 집단이 그 어떠한 폭력으로부터도 꺾이지 않아야만 한다. 평소 아버지를 두려해온 코니는 발리의 아버지를 제압하며 다시금 이 폭력의 구조에서 최상위의 위치를 점하려 하며 이를 통해 집단의 존재의의를 재설정하려 한다. 그들의 집단은 기본적으로 코니의 폭력적 성향에 기반을 둔 것이고, 그들 모두는 집단의 재건을 원하기에 나머지 인물들 역시 코니가 계획한 범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 폭력의 잔혹함부터 시작해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치에 섰을때 느끼는 쾌감과 오랜 기간 가해자의 위치에서 살아온 이의 회의, 나아가 더 큰 폭력 앞에서 이뤄지는 작은 폭력들 간의 역설적 연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던 영화는 더 큰 폭력에 대한 이들의 대항 앞에서 유보적 스탠스를 취한다. 폭력적 묘사가 즐비한 영화 내용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이전까지 공권력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했다. 마침내 영화의 종국에 경찰이 개입해 그들을 조사하자 이전과 달리 사회제도 내에 포박된 그들은 그저 당황한 채 온전히 이기적이지도 못한 동시에 온전히 의리적이지도 못한다. 영화 역시 그들을 옹호하지도 않으며 단호히 단죄하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는 미성숙한 이들의 그러한 혼란 자체를 긍정적인 투로 바라보는 듯하다. . 영화는 발리와 아디가 포옹하는 숏과 물의 이미지를 띤 숏을 겹치며 끝이난다. 영화는 시종 물이라는 이미지를 구원의 의미로서 활용했다. 도입부 내레이션에서 아디가 환상 속에서 안식을 찾는 장소부터가 바다로 제시되며 코니가 발리를 씻겨주는 장면역시 명확히 인물의 정화, 구원의 테마와 결부돼 있다. 나아가 발리가 집단 내에서 보다 더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장소가 수영장인 것, 혹은 아디가 범죄를 저지르고 집에와서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샤워라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의 이미지는 온전한 구원을 표상한다기보단 구원을 부르짖는 인물들의 몸짓 그 자체에 더 가깝다. 영화는 명확한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찾으며 연대하는 소년들의 이미지와 물의 이미지를 포개며 끝난다. 그렇게 <뷰티풀 비잉즈>는 사회제도의 보호 밖에 있는 미성숙한 소년들에게 소박한 응원을 보낸다.いいね9コメント0
최현진2.5(SIPFF) 아이슬란드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인지 이 영화 속 묘사가 유난히 자극적인 것인진 몰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가 커다란 장벽 역할을 한다.いいね3コメント0
boinda3.0보노보의 서식지에는 평화가 있고 인간의 서식지에는 갈등이 있다 보노보의 서식지에 동족 살해가 없지만 인간의 서식지에는 폭력은 기본이고 살인은 필수다 ................... 인간과 이지메 분간이 어려울 때는 그것을 사회성이라고 할 때도 있다 제일 먼저 형제간에 발견되지만 그것을 이지메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는 피터지게 싸운다 그리고 이익 쟁탈전에서는 피바람을 부른다 다음으로 세상에 나서는 유치원 부터 체계적으로 악행이 시작되는 초등학교에서는 집에서 훈련되고 유전자를 타고난 공격적인 이지메는 약자들에게 삶의 좌절을 맛보게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3년 1,000일 동안 죽거나 살아 남아야 한다 .................... 나는 아이슬란드 영화를 좋아한다 유튜브가 생겨서 환상과 동경에서 벗어나 꽁짜로 살라고 해도 쉽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라 초청에 응할 수 없지만 그들만의 정서로 만들어 내는 영화는 고급 포도주 같다 세계적 감독 발타자르 코루마쿠르의 ▶백야의 결혼식 (White Night Wedding, Brudguminn,2008)은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영화다 Samferða - Lay Low & KK 노래도 꼭 챙기시길.......... 아이슬란드 영화를 소개할 때 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크기에 동두천 인구만큼의 40여만명이 사는 나라다 어느 소설가의 책 제목 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곳에는 거기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 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유전자로 성장하는 그저그런 아이들이 있었네 천국 같고 낙원 같아 다를 줄 알았는데 자연 환경과 인간은 별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들의 서식지가 쓰레기를 버리기 좋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없다는 비행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보나보 처럼 살것 같았던 아이슬란드 청소년들의 환상을 깨버리는 영화다一番最初に「いいね」してみましょう。コメント0
chan
4.0
(스포일러) <뷰티풀 비잉즈>는 늘 폭력의 희생자로 살았던 발리라는 소년이 아디의 권유로 그의 무리에 들어가 그곳에서 구원과 희망을 발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단에서는 본인이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기본 골조를 가진 영화다. <뷰티풀 비잉즈>의 비범한 지점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을 발리가 아닌 아디로 설정한 부분이다. 지옥같던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단에서 희망을 얻고, 그러다 결국 그 집단의 모순에 의해 갈등을 하는 발리의 이야기를 발리의 시점 그대로 전개해나갔다면 그건 우리가 수 없이 봐온 여타 소년성장물과 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영화는 발리의 시점으로 출발해서 발리가 아디의 집단에 소속되는 대목을 기점으로 아디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말하자면 아디는 발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먼저 경험한 인물로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사실상 발리를 아디의 과거로 묘사한다. 가정 내외부에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발리는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을 띤 아디의 집단에서 스스로 그 폭력성을 체득하며 피해자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폭력적 성향을 통해 또 다른 폭력으로부터 본인을 비호하는 아디의 집단은 발리에게 하나의 환상에 다름 없다. .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환상에 흠뻑 취해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는 발리의 흥분이 아닌, 그러한 환상이 단지 환상일 뿐임을 자각한 인물인 아디의 회의감에 주목한다. 발리와 달리 폭력 자체에 신물이 난 아디는 본인의 집단에서 더이상 그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한다. 현실세계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아디는 실제 환상의 영역으로 도피하기에 이른다. 폭력의 세계에서 탈피해 평온함에 이르고픈 아디의 심리가 투영된 일련의 환각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발리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돌아오자 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동시에 아디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오는 후반부의 에피소드 마저도 마치 아디의 환상인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점차적으로 그의 환상에 균열을 일며 그를 환상의 영역에서도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 아디를 제외한 발리, 코니, 시기는 여전히 자신들의 집단이 유의미한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그들의 힘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더 큰 폭력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아버지가 돌아온 발리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폭력에 대해 언제나 더 강도 높은 폭력으로 대항해온 코니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통해 더이상 이전과 같은 저항적 태도를 견지하고 삶을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며 이에 괴로워한다.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시기 역시 그들의 좌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기라는 인물은 코니를 주축으로한 집단 내에 속할 때에만 온전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온전해지기 위해선 그들의 집단이 그 어떠한 폭력으로부터도 꺾이지 않아야만 한다. 평소 아버지를 두려해온 코니는 발리의 아버지를 제압하며 다시금 이 폭력의 구조에서 최상위의 위치를 점하려 하며 이를 통해 집단의 존재의의를 재설정하려 한다. 그들의 집단은 기본적으로 코니의 폭력적 성향에 기반을 둔 것이고, 그들 모두는 집단의 재건을 원하기에 나머지 인물들 역시 코니가 계획한 범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 폭력의 잔혹함부터 시작해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치에 섰을때 느끼는 쾌감과 오랜 기간 가해자의 위치에서 살아온 이의 회의, 나아가 더 큰 폭력 앞에서 이뤄지는 작은 폭력들 간의 역설적 연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던 영화는 더 큰 폭력에 대한 이들의 대항 앞에서 유보적 스탠스를 취한다. 폭력적 묘사가 즐비한 영화 내용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이전까지 공권력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했다. 마침내 영화의 종국에 경찰이 개입해 그들을 조사하자 이전과 달리 사회제도 내에 포박된 그들은 그저 당황한 채 온전히 이기적이지도 못한 동시에 온전히 의리적이지도 못한다. 영화 역시 그들을 옹호하지도 않으며 단호히 단죄하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는 미성숙한 이들의 그러한 혼란 자체를 긍정적인 투로 바라보는 듯하다. . 영화는 발리와 아디가 포옹하는 숏과 물의 이미지를 띤 숏을 겹치며 끝이난다. 영화는 시종 물이라는 이미지를 구원의 의미로서 활용했다. 도입부 내레이션에서 아디가 환상 속에서 안식을 찾는 장소부터가 바다로 제시되며 코니가 발리를 씻겨주는 장면역시 명확히 인물의 정화, 구원의 테마와 결부돼 있다. 나아가 발리가 집단 내에서 보다 더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장소가 수영장인 것, 혹은 아디가 범죄를 저지르고 집에와서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샤워라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의 이미지는 온전한 구원을 표상한다기보단 구원을 부르짖는 인물들의 몸짓 그 자체에 더 가깝다. 영화는 명확한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찾으며 연대하는 소년들의 이미지와 물의 이미지를 포개며 끝난다. 그렇게 <뷰티풀 비잉즈>는 사회제도의 보호 밖에 있는 미성숙한 소년들에게 소박한 응원을 보낸다.
최현진
2.5
(SIPFF) 아이슬란드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인지 이 영화 속 묘사가 유난히 자극적인 것인진 몰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가 커다란 장벽 역할을 한다.
Nabody
3.0
악행의 천성보다는 영향의 전염성
boinda
3.0
보노보의 서식지에는 평화가 있고 인간의 서식지에는 갈등이 있다 보노보의 서식지에 동족 살해가 없지만 인간의 서식지에는 폭력은 기본이고 살인은 필수다 ................... 인간과 이지메 분간이 어려울 때는 그것을 사회성이라고 할 때도 있다 제일 먼저 형제간에 발견되지만 그것을 이지메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는 피터지게 싸운다 그리고 이익 쟁탈전에서는 피바람을 부른다 다음으로 세상에 나서는 유치원 부터 체계적으로 악행이 시작되는 초등학교에서는 집에서 훈련되고 유전자를 타고난 공격적인 이지메는 약자들에게 삶의 좌절을 맛보게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3년 1,000일 동안 죽거나 살아 남아야 한다 .................... 나는 아이슬란드 영화를 좋아한다 유튜브가 생겨서 환상과 동경에서 벗어나 꽁짜로 살라고 해도 쉽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라 초청에 응할 수 없지만 그들만의 정서로 만들어 내는 영화는 고급 포도주 같다 세계적 감독 발타자르 코루마쿠르의 ▶백야의 결혼식 (White Night Wedding, Brudguminn,2008)은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영화다 Samferða - Lay Low & KK 노래도 꼭 챙기시길.......... 아이슬란드 영화를 소개할 때 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크기에 동두천 인구만큼의 40여만명이 사는 나라다 어느 소설가의 책 제목 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곳에는 거기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 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유전자로 성장하는 그저그런 아이들이 있었네 천국 같고 낙원 같아 다를 줄 알았는데 자연 환경과 인간은 별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들의 서식지가 쓰레기를 버리기 좋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없다는 비행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보나보 처럼 살것 같았던 아이슬란드 청소년들의 환상을 깨버리는 영화다
고동소리
3.0
블라에힌릭손나온다
HY
3.5
서로가 서로에게 일시적인 구원이었던 그 시절
Metacritic
3.0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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