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3.520세기 초반을 대표하던 영화감독/영화이론가 장 엡슈타인은 언젠가 “감속으로 보여주는 얼굴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을 이끌어내는 영화 이미지”라고 말한 바 있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일렁이는 얼굴. 그 옆에 해변을 걸어가는 아이. 감속적인 이미지로부터 시작하는 <단지 꿈 같은 것들>은 어떤 감동을 품고 있는가? 영화는 오히려 감동보다 혼란을 품고 있어 보인다. 꿈꾸는 동시에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 얼굴. 두 이미지의 접합. 혹은 두 시간의 접합. 현재와 과거는 뒤섞이고 영화의 시제는 예측할 수 없이 동요한다. 영화에서 감속으로 보여지는 것은 오프닝 얼굴만이 아니다. <단지 꿈 같은 것들>의 이미지 대부분은 정속으로부터 탈각한다. 가변적인 속도를 발산하는 이미지는 기존의 시간 축을 조정한다. 흐물거리고 일렁이며 해변과 풀밭을 뛰어가는 움직임은 시간의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슬로우 모션과 프레임 설정을 통해 변형되는 유동적인 시간은 오히려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주관적 시간에 가깝다. 시간은 감정으로부터 발생한다. 아련한 추억이 유독 주마등처럼 지나가듯이, 시간은 통념과 달리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주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각자의 주관적인 시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단지 꿈 같은 것들>의 시간적 중심에는 가이 매딘이 자리한다. 영화는 1963년 세상을 떠난 가이 매딘의 형을 담아낸다. 형과의 추억을 경유하며, 시간은 가이 매딘의 내밀한 감정과 공명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특정한 시간대로 회귀한다. 침대에 누웠을 때, 바다를 걸었을 때, 그와 함께 있었을 때. 반복되는 이미지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닌, 그 시간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매딘의 심리적 중력을 표상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린 <죽은 아버지>(1986)를 통해 데뷔한 매딘의 시간은 종종 되찾을 수 없는 존재에 붙들린다. 불현듯 붙잡혀 평생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 시간. 시간의 절대성을 동요하게 만드는 영화의 파동은 한 창작자의 그리움에서부터 시작한다.いいね8コメント0
김재범
3.5
20세기 초반을 대표하던 영화감독/영화이론가 장 엡슈타인은 언젠가 “감속으로 보여주는 얼굴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을 이끌어내는 영화 이미지”라고 말한 바 있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일렁이는 얼굴. 그 옆에 해변을 걸어가는 아이. 감속적인 이미지로부터 시작하는 <단지 꿈 같은 것들>은 어떤 감동을 품고 있는가? 영화는 오히려 감동보다 혼란을 품고 있어 보인다. 꿈꾸는 동시에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 얼굴. 두 이미지의 접합. 혹은 두 시간의 접합. 현재와 과거는 뒤섞이고 영화의 시제는 예측할 수 없이 동요한다. 영화에서 감속으로 보여지는 것은 오프닝 얼굴만이 아니다. <단지 꿈 같은 것들>의 이미지 대부분은 정속으로부터 탈각한다. 가변적인 속도를 발산하는 이미지는 기존의 시간 축을 조정한다. 흐물거리고 일렁이며 해변과 풀밭을 뛰어가는 움직임은 시간의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슬로우 모션과 프레임 설정을 통해 변형되는 유동적인 시간은 오히려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주관적 시간에 가깝다. 시간은 감정으로부터 발생한다. 아련한 추억이 유독 주마등처럼 지나가듯이, 시간은 통념과 달리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주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각자의 주관적인 시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단지 꿈 같은 것들>의 시간적 중심에는 가이 매딘이 자리한다. 영화는 1963년 세상을 떠난 가이 매딘의 형을 담아낸다. 형과의 추억을 경유하며, 시간은 가이 매딘의 내밀한 감정과 공명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특정한 시간대로 회귀한다. 침대에 누웠을 때, 바다를 걸었을 때, 그와 함께 있었을 때. 반복되는 이미지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닌, 그 시간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매딘의 심리적 중력을 표상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린 <죽은 아버지>(1986)를 통해 데뷔한 매딘의 시간은 종종 되찾을 수 없는 존재에 붙들린다. 불현듯 붙잡혀 평생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 시간. 시간의 절대성을 동요하게 만드는 영화의 파동은 한 창작자의 그리움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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