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다큐적이지만 영화적이기도 한 오묘한 작품 김군을 내세웠지만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고 그 과정과 광경에 주목하는 영화다 다큐에 이런 화법 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니, 좋다고본다いいね119コメント1
박서하4.0보는 내내 영영 아픔을 품고 갈 영웅들과 달리 사뭇 고통받지 않으며 살아 있을, 그러나 폭력을 마구 저지른 수많은 악마들에게 격분이 들끓는다. 망할 지휘자가 죽는다고 연주자도 죽는 건 아니니까.いいね83コメント0
윤제아빠4.0이 역사속 얼마나 많은 김군들이 있었을까? 같이 어우러져 사는삶은 왜 이토록 힘든가? . . #나는누군가의김군이될수있을까 #왜이리얼굴을마주하고공존하는 #이세상은만들어지기어려운걸까いいね67コメント0
Ziwoo4.5<김군>은 그간 우리 앞에 도착한 모든 광주-영화-텍스트 중에서도 비교우위를 넉넉하게 점해도되는 탁월한 영화이다. 현대사를 다룬 그간의 한국영화들이 역사 그 자체에 큰 빚을 진 수준으로 머물렀다면, 제주4.3은 오멸의 <지슬>로, 6월 민주항쟁은 장준환의 <1987>로 그 빚을 탕감한 바 있다. 5.18은 드디어 영화적 짝꿍을 찾았다. <김군>은 비로소 역사의 준엄함과 영화적 연출 사이의 균형을 평등하게 맞추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가장 먼저 관객들 앞에 내보이는 것은 ‘폭도’로서의 ‘광주사태’ 이미지다. 그 뒤로 깔리는 군사평론가 지만원의 얼굴과, 그의 필생을 바친 믿음. “북한사람 600명이 내려왔고, 광주시민들은 그에 부역했다. 따라서 민주화시위는 없었다. 누가 날 잡아가더라도, 이 분석엔 틀림이 없다." 다큐에서 분명하게 지적되는 지점은, 이것이 몇만원 씨 개인의 망언이 아니라, 결국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으고, 부대를 이루게 하고, 집단적 모욕을 자행하고, 관련 법 제정을 막아 국가마저 풀이 죽게 하는 그 악독함의 사이클이다. 여기에서 오월광주는 더 이상 ‘종결 사건’이 아님이 판명된다. 시민군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하여, 망월동 묘역이 ‘국립묘지’로 지정되었다 하여, 노태우가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전두환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이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가 완료된 문제, 피해자들의 복권이 이미 끝난 문제, 다 해결된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저들은 누구인가. 영화의 홍보가 미스터리 추적극처럼 된 것에 비해, 그 속은 그러한 예능적 요소보다 폭력에 대한 품위있는 답신으로 가득 차 있다. 외부자의 목소리가 무엇 하나 개입하지 않는다. 오로지 광주에 의해, 광주를 위해 쓰인 레퀴엠. 연출부 스텝으로 알려진, 인터뷰 진행자의 상냥하고 나지막한 말투는 윤리의 목소리인 동시에 관객에게 허락된 위치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앉은 자세는 낮다. <김군>이라는 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포스터 사진 속 그의 얼굴 때문이 아닐까? 어딘가 날카롭고 퉁명스러운, 총을 든 사내. 이에 대해 지만원은 “이건 도저히 광주 학생이 낼 수 있는 포즈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우리는 객기 부리지 않는 피해자, 살의 없는 피해자의 순수한 얼굴을 기대했으나 김군의 얼굴엔 객기도, 살의도, 모든 게 있다.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피해자의 이미지가 아님에, 그 새로움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는 광주에 대한 박제된 이미지에서 한 발자국씩 벗어나는 과정에 임하고있다. “우리가 그때 당시 민주화고 뭐고 그럴 나이도 아니고,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거기다 대들었던 거지. 그때 당시에 '전두환이 물러가라' 하는데, 우리가 전두환이 누군지 어떻게 알았겠어. 전혀 모르지”라는 살아남은 어느 시민군의 증언은, 우리가 광주를 국가주의적 맥락에서 독해하고 추모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진짜 기억과 얼마나 멀리있는 일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군이란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해빠진 성씨 중 하나로 기억되게됐다.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조차 두려웠던 시절로부터 40년이 흘러, 우리는 이제 ‘이름’들을 복원하는 과정 앞에 섰다. 이 영화에선 헤드숏 혹은 45도 위로 기울어진 약간의 하이앵글로 인터뷰 대상자의 얼굴을 잡은 후, 항상 반 박자 늦게 그들의 이름을 화면에 띄운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인터뷰이의 얼굴만큼이나 이름에 시선이 오래 가게 한다. 실제로 영화관 밖을 나서며 기억에 남는 시민군들의 이름이 많았다. 주옥, 오기철, 양동남, 이강갑, 최진수. 시체창고에서 희생자들을 지켰던 열여덟 소년, 몇날며칠 구역질을 하다가 나중엔 ‘커피정도는 마실 수 있었던’ 그 아이, 시민군의 총알만큼이나 강했던 여성 시민들의 주먹밥, 살기위해 무기고를 털었던 스무 살 언저리들,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트럭에서 내려 땅을 밟았던 김군까지. 진실과 민주주의의 사고체계를 온통 마비시키는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모든 증거는, 이들의 딱 한 마디 말이면 부지불식간에 힘을 잃고 고부라져 쓰러질 것이다. “저는 광주광역시 토박입니다.” 살아남는 자들의 기억을 이길 수 있는 건, 애초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월광주いいね66コメント0
겨울비4.0그 자리, 그 곳에 있던 수많은 김군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 왜곡하려 할수록 ‘진실’은 늪에 묻힌 진주처럼 더 빛날것이다. 저지른 만행을 덮으려 할수록 진실은 더욱 수면위로 떠올것이다. 그러니 왜곡하려 하지마라.いいね56コメント0
이동진 평론가
4.0
'김군'의 발원지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마주하게 된 '김군들'의 바다.
JY
다큐적이지만 영화적이기도 한 오묘한 작품 김군을 내세웠지만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고 그 과정과 광경에 주목하는 영화다 다큐에 이런 화법 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니, 좋다고본다
박서하
4.0
보는 내내 영영 아픔을 품고 갈 영웅들과 달리 사뭇 고통받지 않으며 살아 있을, 그러나 폭력을 마구 저지른 수많은 악마들에게 격분이 들끓는다. 망할 지휘자가 죽는다고 연주자도 죽는 건 아니니까.
김지영
5.0
지만원이 나와 뭘 말하려는지 전반적으로 왜곡될 수 있지만 지금 이 시대 반영을 통한 87년 5월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황재윤
4.0
그들 모두가 김군이었음을.
윤제아빠
4.0
이 역사속 얼마나 많은 김군들이 있었을까? 같이 어우러져 사는삶은 왜 이토록 힘든가? . . #나는누군가의김군이될수있을까 #왜이리얼굴을마주하고공존하는 #이세상은만들어지기어려운걸까
Ziwoo
4.5
<김군>은 그간 우리 앞에 도착한 모든 광주-영화-텍스트 중에서도 비교우위를 넉넉하게 점해도되는 탁월한 영화이다. 현대사를 다룬 그간의 한국영화들이 역사 그 자체에 큰 빚을 진 수준으로 머물렀다면, 제주4.3은 오멸의 <지슬>로, 6월 민주항쟁은 장준환의 <1987>로 그 빚을 탕감한 바 있다. 5.18은 드디어 영화적 짝꿍을 찾았다. <김군>은 비로소 역사의 준엄함과 영화적 연출 사이의 균형을 평등하게 맞추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가장 먼저 관객들 앞에 내보이는 것은 ‘폭도’로서의 ‘광주사태’ 이미지다. 그 뒤로 깔리는 군사평론가 지만원의 얼굴과, 그의 필생을 바친 믿음. “북한사람 600명이 내려왔고, 광주시민들은 그에 부역했다. 따라서 민주화시위는 없었다. 누가 날 잡아가더라도, 이 분석엔 틀림이 없다." 다큐에서 분명하게 지적되는 지점은, 이것이 몇만원 씨 개인의 망언이 아니라, 결국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으고, 부대를 이루게 하고, 집단적 모욕을 자행하고, 관련 법 제정을 막아 국가마저 풀이 죽게 하는 그 악독함의 사이클이다. 여기에서 오월광주는 더 이상 ‘종결 사건’이 아님이 판명된다. 시민군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하여, 망월동 묘역이 ‘국립묘지’로 지정되었다 하여, 노태우가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전두환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이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가 완료된 문제, 피해자들의 복권이 이미 끝난 문제, 다 해결된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저들은 누구인가. 영화의 홍보가 미스터리 추적극처럼 된 것에 비해, 그 속은 그러한 예능적 요소보다 폭력에 대한 품위있는 답신으로 가득 차 있다. 외부자의 목소리가 무엇 하나 개입하지 않는다. 오로지 광주에 의해, 광주를 위해 쓰인 레퀴엠. 연출부 스텝으로 알려진, 인터뷰 진행자의 상냥하고 나지막한 말투는 윤리의 목소리인 동시에 관객에게 허락된 위치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앉은 자세는 낮다. <김군>이라는 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포스터 사진 속 그의 얼굴 때문이 아닐까? 어딘가 날카롭고 퉁명스러운, 총을 든 사내. 이에 대해 지만원은 “이건 도저히 광주 학생이 낼 수 있는 포즈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우리는 객기 부리지 않는 피해자, 살의 없는 피해자의 순수한 얼굴을 기대했으나 김군의 얼굴엔 객기도, 살의도, 모든 게 있다.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피해자의 이미지가 아님에, 그 새로움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는 광주에 대한 박제된 이미지에서 한 발자국씩 벗어나는 과정에 임하고있다. “우리가 그때 당시 민주화고 뭐고 그럴 나이도 아니고,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거기다 대들었던 거지. 그때 당시에 '전두환이 물러가라' 하는데, 우리가 전두환이 누군지 어떻게 알았겠어. 전혀 모르지”라는 살아남은 어느 시민군의 증언은, 우리가 광주를 국가주의적 맥락에서 독해하고 추모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진짜 기억과 얼마나 멀리있는 일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군이란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해빠진 성씨 중 하나로 기억되게됐다.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조차 두려웠던 시절로부터 40년이 흘러, 우리는 이제 ‘이름’들을 복원하는 과정 앞에 섰다. 이 영화에선 헤드숏 혹은 45도 위로 기울어진 약간의 하이앵글로 인터뷰 대상자의 얼굴을 잡은 후, 항상 반 박자 늦게 그들의 이름을 화면에 띄운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인터뷰이의 얼굴만큼이나 이름에 시선이 오래 가게 한다. 실제로 영화관 밖을 나서며 기억에 남는 시민군들의 이름이 많았다. 주옥, 오기철, 양동남, 이강갑, 최진수. 시체창고에서 희생자들을 지켰던 열여덟 소년, 몇날며칠 구역질을 하다가 나중엔 ‘커피정도는 마실 수 있었던’ 그 아이, 시민군의 총알만큼이나 강했던 여성 시민들의 주먹밥, 살기위해 무기고를 털었던 스무 살 언저리들,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트럭에서 내려 땅을 밟았던 김군까지. 진실과 민주주의의 사고체계를 온통 마비시키는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모든 증거는, 이들의 딱 한 마디 말이면 부지불식간에 힘을 잃고 고부라져 쓰러질 것이다. “저는 광주광역시 토박입니다.” 살아남는 자들의 기억을 이길 수 있는 건, 애초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월광주
겨울비
4.0
그 자리, 그 곳에 있던 수많은 김군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 왜곡하려 할수록 ‘진실’은 늪에 묻힌 진주처럼 더 빛날것이다. 저지른 만행을 덮으려 할수록 진실은 더욱 수면위로 떠올것이다. 그러니 왜곡하려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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