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까기의 종이씹기2.0이스트우드의 작품임을 생각하면 단조롭기 짝이 없는 처참한 퀄리티.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장 큰 장점은 드라마틱한 실화를 담백하게 그려내는 재주에 있다. 불과 전작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만 봐도 극적인 소재를 무척이나 덤덤하고 묵묵하게 다뤄냈다. 그렇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걸작을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혹평할 수준은 절대 아닌, 정말 준수한 수작들을 만들어내는 모범생 같은 감독이었다. 그런데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달랐다. 담백한 걸 넘어서 밋밋하다. 실존 인물 소개만 러닝타임 2시간 중 1시간 50분을 소모하고, 막상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열차 테러 사건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볍게 해결된다. 그렇다면 실존 인물 소개라도 재미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평범한 영웅 서사에 불과했다. 이렇게 특출한 장점 없이 전반적으로 밋밋하기만 하니 작품은 자연스레 지루해진다. 애초에 영화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실화였다.いいね54コメント0
윤제아빠3.0크린트옹 에게...내가..기대가 너무 컸다. 단순한 사건으로 전기성 영화를 만들다보니 살짝 지루함이있다. 주인공들의 삶이 뭐 그다지 특이하지 않으니.. . . #클린트이스트우드감독님 #2년전실제사건 #실제사건당사자를 #영화주인공으로캐스팅 #파격적인데연기가별로라 #오히려단점으로 #그래도평타는하시네요 #이정도스토리로 #이정도영화를만드시는 #클린트옹いいね40コメント0
별,4.0"인생은 무언가를 향해 나를 내던지는 것 같다. 더 큰 목적을 향해서가 아닐까?"라는 메세지가 서사의 개연성과 강조점 없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중간에 마치 강조하듯이 두 번이나 나올때 설마 싶었다. 그리고는 아차 싶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진심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 인생의 소명 의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그렇기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열차 테러라는 긴박한 사건은 무려 영화의 3/4 지점까지 주인공 셋의 플래시백을 통한 과거 이야기에 밀려난다. 사건이 어떻게 극적으로 진행되는지가 아닌 사건이 결국 그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가 중요하기에 그들의 과거는 필연적으로 설명되어진다. 단, 이 과거에 대한 설명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형성하며 보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은 영화처럼 확실한 인과 관계를 가지는 목표성이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추가되는 점은 극 영화의 주인공 역을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맡는다는 점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재연으로도 여겨지는 밋밋한 서사와 연기는 마치 영화적 삶이 아닌 현실적 삶, 그 자체의 재연이다. 다시 처음으로. 거대한 운명적 인생의 소명 의식은 언제 어디서 그 의무가 보여질 지 알 수 없다. 특히 인생은 영화와 달리 극적이지 않으며 그 속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소명을 행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애초에 이 소명 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신념은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도 전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 그것을 기어코 있는 그대로의 형식 - 배우의 재연, 사건의 재연, 삶의 재연 - 의 영화로 만들었을때 이 낯설고 어색한 형식은 영화적으로 전혀 재밌지도 않고 스릴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그 모든 일들이 마치 그들의 그 순간의 소명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 이뤄지는 사건의 재연에서 그 무엇보다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는 신의 의지를 느닷없이 접하게 될 때 그것은 시공간을 넘어 감독의 의지를 영화라는 삶과 세상의 은유에 심는 것을 포기하고, 말 그대로 신의 뜻대로 이뤄지는 모든 것이라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난 이 고지식하고 고집스럽지만, 또한 뚜렷하고 확고한 감독의 의도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영화적인 순간에 봉사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지워진 영화적 재미는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순전히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주어진 인생의 존재의 꼭 찾아야만 되는 이유. 허나 그것은 인생의 끝자락에 접어든 노장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대한 무기력한 체념 또는 탄식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옳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때 반드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인류 공동체적인 희망과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굳건하면서도 극히 보수적인 믿음. 점점 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구성을 제거하며 단순해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의지는 그렇게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여전히 난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いいね29コメント3
siwon.hage3.5영웅은 용기가 만들어낸다. 히어로는 무비 속 화려하게 선택된 자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의의 신념을 가지고 살다 위기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역시 여행은 이태리가 진리.いいね23コメント2
Niknik
2.5
거장의 불균질한 페이스. 다만 빼어난 실화덕에.
이건영(everyhuman)
2.5
뭔가는 있겠지란 마음으로 보다 영화는 끝났다.
콩까기의 종이씹기
2.0
이스트우드의 작품임을 생각하면 단조롭기 짝이 없는 처참한 퀄리티.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장 큰 장점은 드라마틱한 실화를 담백하게 그려내는 재주에 있다. 불과 전작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만 봐도 극적인 소재를 무척이나 덤덤하고 묵묵하게 다뤄냈다. 그렇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걸작을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혹평할 수준은 절대 아닌, 정말 준수한 수작들을 만들어내는 모범생 같은 감독이었다. 그런데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달랐다. 담백한 걸 넘어서 밋밋하다. 실존 인물 소개만 러닝타임 2시간 중 1시간 50분을 소모하고, 막상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열차 테러 사건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볍게 해결된다. 그렇다면 실존 인물 소개라도 재미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평범한 영웅 서사에 불과했다. 이렇게 특출한 장점 없이 전반적으로 밋밋하기만 하니 작품은 자연스레 지루해진다. 애초에 영화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실화였다.
다솜땅
3.5
조금 더 인간적으로 접근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더 부각시켜 사건의 전말, 그리고 그들의 영웅됨이 어디서 왔는지를 조금 더 신경써서 만들었다.
윤제아빠
3.0
크린트옹 에게...내가..기대가 너무 컸다. 단순한 사건으로 전기성 영화를 만들다보니 살짝 지루함이있다. 주인공들의 삶이 뭐 그다지 특이하지 않으니.. . . #클린트이스트우드감독님 #2년전실제사건 #실제사건당사자를 #영화주인공으로캐스팅 #파격적인데연기가별로라 #오히려단점으로 #그래도평타는하시네요 #이정도스토리로 #이정도영화를만드시는 #클린트옹
별,
4.0
"인생은 무언가를 향해 나를 내던지는 것 같다. 더 큰 목적을 향해서가 아닐까?"라는 메세지가 서사의 개연성과 강조점 없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중간에 마치 강조하듯이 두 번이나 나올때 설마 싶었다. 그리고는 아차 싶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진심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 인생의 소명 의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그렇기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열차 테러라는 긴박한 사건은 무려 영화의 3/4 지점까지 주인공 셋의 플래시백을 통한 과거 이야기에 밀려난다. 사건이 어떻게 극적으로 진행되는지가 아닌 사건이 결국 그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가 중요하기에 그들의 과거는 필연적으로 설명되어진다. 단, 이 과거에 대한 설명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형성하며 보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은 영화처럼 확실한 인과 관계를 가지는 목표성이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추가되는 점은 극 영화의 주인공 역을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맡는다는 점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재연으로도 여겨지는 밋밋한 서사와 연기는 마치 영화적 삶이 아닌 현실적 삶, 그 자체의 재연이다. 다시 처음으로. 거대한 운명적 인생의 소명 의식은 언제 어디서 그 의무가 보여질 지 알 수 없다. 특히 인생은 영화와 달리 극적이지 않으며 그 속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소명을 행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애초에 이 소명 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신념은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도 전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 그것을 기어코 있는 그대로의 형식 - 배우의 재연, 사건의 재연, 삶의 재연 - 의 영화로 만들었을때 이 낯설고 어색한 형식은 영화적으로 전혀 재밌지도 않고 스릴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그 모든 일들이 마치 그들의 그 순간의 소명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 이뤄지는 사건의 재연에서 그 무엇보다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는 신의 의지를 느닷없이 접하게 될 때 그것은 시공간을 넘어 감독의 의지를 영화라는 삶과 세상의 은유에 심는 것을 포기하고, 말 그대로 신의 뜻대로 이뤄지는 모든 것이라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난 이 고지식하고 고집스럽지만, 또한 뚜렷하고 확고한 감독의 의도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영화적인 순간에 봉사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지워진 영화적 재미는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순전히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주어진 인생의 존재의 꼭 찾아야만 되는 이유. 허나 그것은 인생의 끝자락에 접어든 노장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대한 무기력한 체념 또는 탄식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옳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때 반드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인류 공동체적인 희망과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굳건하면서도 극히 보수적인 믿음. 점점 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구성을 제거하며 단순해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의지는 그렇게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여전히 난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siwon.hage
3.5
영웅은 용기가 만들어낸다. 히어로는 무비 속 화려하게 선택된 자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의의 신념을 가지고 살다 위기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역시 여행은 이태리가 진리.
김솔한
3.5
살다 보면 자신을 내던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눈에 불을 키고 달려가라고 말한다. 몇십년을 살아온 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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