刺青
刺青
1966 · ドラマ · 日本
86分

外に雪が舞うある夜。質屋の娘お艶は、恋しい手代の新助と手と手をとり合って駈け落ちした。この二人を引きとったのは、店に出入りする遊び人の権次夫婦だった。はじめは、優しい言葉で二人を迎え入れた夫婦だったが、権次も所詮は悪党だ。お艶の親元へ現われ何かと小金を巻きあげ、あげくに、お艶を芸者として売りとばし、新助を殺そうとしていたのだ。が、そんなこととはつゆ知らぬお艶と新助は、互いに求め合うまま狂おしい愛欲の日々をおくっ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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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4.0
되돌릴 수 없는 현실,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그녀 #거미줄에서 한없이 허우적대는 먹잇감들 #배짱 #2021 움직이는 여성들×서울아트시네마
JE
4.5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한다는 수사는 자칫 진부할 수도 있으나, 창백하리만치 희디 흰 와카오 아야코의 피부가 양가적이면서 자기파괴적인 매혹을 완벽히 표현한다. 아름답고 탐닉적인 쾌락에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사랑과 욕망, 불안과 죄의식, 집착과 복수가 뒤엉킨 백색의 거미줄. 등에 새겨진 거미 문신 클로즈업이 이따금 (아야코의 몸을 쳐다 보는 관객을 향해) 화면 바깥마저 응시하는 듯하다. 가련한 여인을 요부로 만드는 이야기는 이제 얼마간 익숙할지 모르나,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마녀로 전시되기보다 권력 관계를 하나둘 집어 삼키며 말 그대로 꿈틀거리는 신체적인 형상을 부각하는 면이 인상적이다. 특히 아야코의 피부에서부터 너저분한 싸움과 별안간 끔찍한 고통의 순간들, 프레임 안팎의 눈발이나 빗줄기, 천둥번개처럼 신체적, 감각적으로 전해오는 풍경이 그야말로 <문신>을 어떤 육체적인 영화로 만드는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넓은 화면을 분절하며 효과적으로 좁게 활용하는 카메라를 보면 <문신>의 프레임은 자체로 인물들의 신체를 조각내고 그들의 공간/주도권을 앗으며 폐쇄적인 덫에 가두어 버리는 세계처럼 보인다.
차지훈
4.0
뭇남성들을 잡아먹을 극강의 팜므파탈의 86분간의 쇼. 탐미주의에 입각하여 영화라는 매체 속 문신이란 미술을 과감하게 입혀 관객들을 파멸로 유혹한다. 등에 그려진 거미가 복선으로 작용해 남성성을 파괴시키고 파멸로 몰아넣는 장면들은 압권. 야스조 감독은 '눈먼 짐승'이나 '거인과 완구'작품처럼 여러 방면에서 봐도 파멸로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설득력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폭력에 대한 해석. 그리고 빠지지 않는 미장센과 미술적 요소들까지.. 치명적이어서 더 끌리는 작품이지 싶다.
김도현
3.5
단평 | 역학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여성은 피해자의 탈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포식자로 거듭나야 한다. 미끼에 홀려 다가온 자들을 역으로 먹잇감으로 삼는 그 모습은 성(性)이라는 칼날의 끝이 양쪽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걸 일깨워준다. 요부의 정체성은 비록 타인이 새긴 것이나, 이를 넘어서려면 자의적 단행이 필수다. 그러니 등에 올라탄 거미와 공모를 벌이면서도 오츠야는 줄곧 그걸 죽일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 파나비전 | 131 | 서울아트시네마 | 9/13
시나문
4.0
팜므파탈에 대한 감각적인 영화. 부초와 게이샤에서 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와카오 아야코에게 박수. 그의 작품을 더 찾아봐야 겠다.
임이나
4.0
마스무라 야스조 <문신> 전당포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잣집 소녀로써 자라온 여자는 자신의 삶이 따분했다. 그러던 와중 그 집에서 보잘 것 없는 하인으로써 존재하는 남자와 속정을 나누다가 가출을 하게 된다. 여자는 매우 욕망에 솔직하고 뜨거웠다. 남자는 소심하고.. 겁이 많고 순수했다. 여자가 먼저 그 남자를 이끌고 어디든 가서 같이 살자고 한 것이다. 남자는 이런 부잣집 여자를 건드려도 될지 계속 주저했으나 결국 여자에 의해 이끌린다. 남자도 여자 못지 않게 사랑했으니까. 그런데 그 두 사람을 살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던 도쿠베란 인물이, 여자는 기생집에 팔아버리고, 남자는 부하를 시켜서 죽이려한다.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한편, 여자는 팔려간 기생집에서 일생일대의 타투를 몸에 새기게 된다. 그 타투는 아름답지 않았다. 곱게 자라온 그녀의 새하얀 등에 천박하고 욕정에만 길들여진 듯한 거미가 그려져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 거미가 본래 자신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냥, 거북함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짱있게 자신이 욕정에 미친 거미처럼 남자들을 팜므파탈로써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겠단 자신감을 보인다. 그녀가 그 일에 충실한 사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남자가 다시 그녀를 찾아온다. 그리고 어찌하다보니, 기생집 포주를 죽이게 된다. 남자는 자책한다. 당신 때문에 난 살인을 두 번이나 했어요. 나는 이제 죽어야해요. 그러나 여자는 말한다. 그 각오로 더 많이 죽이고 살아가라고. 겁 많은 그 남자는 배짱 좀 갖고 살라는 여자의 그 말만 믿고, 사랑하니까 계속 곁에 있으려 한다. 그러나 그 순수하고 겁 많은 남자 조차 참지 못 하는 것이 있으니... 소유욕이었다. 지고지순한 남자도 다른 놈들 처럼 팜므파탈인 여자를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생짓 하는 여자를 독점할 수 없다는 절망감, 여자에게 속았다는 분노에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가 예쁘다는걸 너무도 잘 아는 그 여자는 욕정으로 남자들을 굴복시키는 이 재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 남자마저 죽이고 만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신을 처음에 새겼던 남자가 와서, 더이상 이 욕정의 비극을 보는 것이 다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고통스럽다며 여자를 죽인다. 그리고 자살한다. 결말은 이렇게 남자, 여자, 타투이스트, 이 세 사람의 시체가 겹겹이 쌓인채로 끝이 난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 헤어질결심에 호평을 했던 사람은 이 영화를 좋게 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이 영화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로맨스의 범주에서 벗어나, 인간이 사랑할 때 느끼는 추악한 감정의 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인을 감행할 정도로 그 여자를 광적으로 사랑했기에, 여자를 죽이고 싶어진 것이다. 진실한 사랑이란 사실은 가장 위태롭고, 위험한 것이라고.
상맹
4.0
미쳤네 60년대 일본 영화 치고 너무 재밌는 거 아냐? 카디비 뺨치는 여주인공에 화양연화 뺨 또 치는 일본식 미장셴에 치이고 이카리 신지 뺨 치는 신스케에 울화통이 터진다. 필름이라 그런지 RGB 가득한게 지알로 같기도 하면서 지알로의 스크리머들과는 반대로 저 시대 일본임에도 저렇게 매력적이고 주체적인 여주인공을 그리다니. 구조도 간결해서 아쉬움이 없다. 결국 인간의 매력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태도로 환원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죽음도 시대와 권력도 마땅히 삶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그 태도.
Hoon
4.5
거미는 욕망을 위해 줄을 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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