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4.0한예종 전단사건을 아시는지. '2m 길이의 성기를 가진 남성이 성관계 중 여성의 입을 성기로 뚫어서 죽이는 영화를 찍겠으니 연락달라' 한예종 교내에 배우 구인 전단지가 붙었다. 이를 본 최하나 감독님은 전단을 패러디해, '<남성이 2m 성기로 여성을 살해하는 영화>를 찍고싶어하는 한 창피한 남자에 대한 영화를 찍겠으니 연락달라' 전단을 붙였다. 이후에 수차례 공방이 오갔고, 감독님은 전단을 붙인 남학우를 만나 이 내용이 왜 여성혐오적인지 설명했으나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고. 벌써부터 영화 너무 기대되고..마구 높아진 기대의 충족여부와 상관없이 이 영화를 응원해요.いいね827コメント18
rizu見たい애비규환의 최하나 감독님은 한예종 출신으로 교내 여성혐오 컨텐츠에 거세게 항의하며 목소리를 냈고 그에 따른 변화를 일구어낸 사람이다. 결론은 이 영화를 무조건 볼 거라는 거.いいね284コメント1
김미미4.0알코올 중독자인 나의 친부와 이혼한 우리엄마는 자유방임주의로 늘 자식인 나보다 자기 인생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으나 미디어에 나오는 그런 헌신적인 어머니는 아니었다. 엄마는 늘 여행을 다니느라 외동인 나를 집에 혼자 두었다. 나는 늘 가정적인 부모님을 둔 친구들을 동경했다. 티브이 앞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그런 평범한 가정집. 나는 친구네 집에 가면 그 집 가족이 된 양 굴며 자주 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했다. 엄마는 어느날 친구네 집에서 실컷 놀다가 들어온 내 발을 씻겨주며 물었다. “친구네 집이 그렇게 좋아?” 응 엄마. 민지네 엄마가 쿠키도 구워주고 민지네 아빠가 목마도 태워줬어. 엄마는 말없이 내발을 뽀득뽀득 닦았다. 얼마지나지않아 엄마는 내게 아빠를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했는지 나를 데리고 아빠가 있는 전주로 향했다. 아빠의 집 거실엔 내 유치원 졸업 사진이 액자에 아주 크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는 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금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주 현상으로 알콜성치매가 도진 것이다. 엄마는 친가 가족들을 불러 상의해 정신병원입원 절차를 밟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빠는 정신병원에서 종종 종이로 접은 연필꽂이나 도기로 만든 머그컵 따위를 만들어 내게 보냈다. 내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10살이 되자 어느 낯선 남자를 데려와 이제부터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는 고집불통에 오기가 세 그에게 일부러 아저씨라고 부르며 깐죽거렸다. 그런 나를 엄마의 남자친구는 8년 간 사랑으로 돌봐주었다. 나는 친아버지가 보내준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미련없이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18살이 되자 정식으로 나를 호적에 올리고 싶다고 손을 덜덜 떨며 고백하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무심한 듯 싫다고 답했다. 정말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냥 내 성씨가 바뀌는 것이 싫어서. 그냥 그렇다고 말했다. 최토일에서 김토일이 되듯 내이름은 김조이로 성이 바뀌면 이조이가 되어 우스운 이름이 되었다. 그는 내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납득해주고 내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집안일은 손도 대지 않는 엄마와 달리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밥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며 아침밥을 차려 나를 깨웠다. 주말엔 나를 차에 태워 어디로든 향했고 계절이 바뀌면 직접 옷을 골라주었다. 또 어찌나 박학다식한지 내가 시험공부를 할 때면 내 옆에서 교과서엔 없는 재미난 인문학과 역사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주변에선 이렇게 다정한 아버지 이세상에 또 없다며 칭찬 일색이었고 나는 내심 그런 그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는 내게 내가 동경했던 가정을 선물해주었다. 어색하고 낯 부끄러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18살의 가을, 친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이 왔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 친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슬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뻥 뚫린 기분. 오래된 고향집이 폐허가 된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그도 이별을 했다. 이번엔 달랐다. 그와의 이별은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어릴적 그렇게 동경하고 꿈꿨던 가정이 불과 8년 만에 무너졌다. 나는 나를 탓하며 자책했다. 그가 호적에 올리고 싶다고 한 것을 거절했기에 그렇게 된 것만 같았다. 물론 그 탓도 어느정도 있었으리라. 그는 그만큼 내게 진심이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의 엄마도 좋지만 무엇보다 너에게 반했다. 너처럼 똑똑하고 예쁜 아이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다. 언젠가 네가 아버지라고 불러준다면 더 할 낙이 없겠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나는 후회했다. 친아버지의 장례식을 가지 않은 것보다 내게 아버지가 되어주려 했던 그에게 이름 성이 마음에 안든다는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그의 진심을 거절했던 것을. 나도 그에게 반했다고 말해줄 것을 그랬다고. 오래 전부터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줄 것을 그랬다고. 나는 열여덟에 두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담담한 척을 했다. 엄마를 위해서였다. 이혼후에도 줄곧 친가와 가족처럼 지냈던 엄마는 내 친아버지의 장례식을 가지 않은 것을 계기로 친가쪽에서 절연 선언을 당했다. 엄마와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은 그를 원망하거나 증오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엄마와 나 각자의 선택이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장례식에서 문득 “너를 네 아빠 장례식에 보낼 걸, 너라도 보냈어야 했는지 몰라.” 하고 말했다. 내가 두 아버지와 친가 식구들, 외할아버지를 잃었듯, 엄마 역시 친가 식구들과 첫 결혼상대, 애인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나보다 엄마가 더 상심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그 후로 변했다. 나를 늘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오로지 내편이 되어주었다.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엄마는 나를, 두 아버지를 잃은 나를 더 사랑해주려 노력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대화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했다. 엄마는 가끔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두 아버지의 몫까지 사랑해주기로 결심했고 나는 엄마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를 보며 친아버지와 새아버지,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에 크게 공감이 되었고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보았다. 토일이의 상황은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낙관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그녀의 곁에 그녀를 응원하고 아껴주는 이들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종종 웃고 종종 진지해졌다. 통통 튀는 편집이 밝고 귀여우면서 중간중간 떠오르는 어릴적 엄마와의 기억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부분이 좋았다. 일월이와의 만남은 조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고 마지막에 힘이 많이 빠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완벽한 선택따위는 없다는 대사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지금 두 아버지 없이도 엄마와 행복하니까. 때로는 어떤 결정이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흉터 몇 개 쯤은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니까.いいね173コメント4
다솜땅3.5진짜 괜찮은 걸까? 불안하고 또 불안해.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으니까.. 수십번 변하는 마음, 확실해도 못미더운데, 안보이니 더 불안해.. 단지, 사랑과 믿음을 원할 뿐인데.. 이젠 내가 주도할꺼야!!!! ㅎ 생각보다 발찍한 상상! 어쩜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해도, 마음 한편으론 응원해주고 싶다. ㅎ #20.12.17 (2924)いいね79コメント0
P13.5망하지 않으려고 겁만 먹고 살바에야 망하고 다시 시작하자구! 허접한 내용같았는데 마지막 부분이 와닿아서 맘에 들어 "불안은 불안으로 해소한다 미래는 어짜피 정해진 게 없으니꽈! 뭘 하든 불안한 게 정상이지"いいね68コメント0
윤제아빠4.0그닥 아비규환급 참상이라 할 수는 없는거 같다. 새로운 세대를 여는 참신함을 남성의 시각보단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모나지 않다. 그래 남자..까짓거 뭐라고. 어차피 잉태의 반만 제공했을 뿐인데. . . #이런공정한시각으로이야기하니 #모두다어설프고불안한존재임이 #확연하다더배우고생각하며살자いいね63コメント0
아무개
4.0
한예종 전단사건을 아시는지. '2m 길이의 성기를 가진 남성이 성관계 중 여성의 입을 성기로 뚫어서 죽이는 영화를 찍겠으니 연락달라' 한예종 교내에 배우 구인 전단지가 붙었다. 이를 본 최하나 감독님은 전단을 패러디해, '<남성이 2m 성기로 여성을 살해하는 영화>를 찍고싶어하는 한 창피한 남자에 대한 영화를 찍겠으니 연락달라' 전단을 붙였다. 이후에 수차례 공방이 오갔고, 감독님은 전단을 붙인 남학우를 만나 이 내용이 왜 여성혐오적인지 설명했으나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고. 벌써부터 영화 너무 기대되고..마구 높아진 기대의 충족여부와 상관없이 이 영화를 응원해요.
rizu
見たい
애비규환의 최하나 감독님은 한예종 출신으로 교내 여성혐오 컨텐츠에 거세게 항의하며 목소리를 냈고 그에 따른 변화를 일구어낸 사람이다. 결론은 이 영화를 무조건 볼 거라는 거.
skye
3.5
?? : 애비규환이 뭐니.. 아버지규환이라고 해야지.. 시놉을 보니 진짜 애비규환이네요... 제목이 찰떡 같단 뜻입니다💓
김미미
4.0
알코올 중독자인 나의 친부와 이혼한 우리엄마는 자유방임주의로 늘 자식인 나보다 자기 인생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으나 미디어에 나오는 그런 헌신적인 어머니는 아니었다. 엄마는 늘 여행을 다니느라 외동인 나를 집에 혼자 두었다. 나는 늘 가정적인 부모님을 둔 친구들을 동경했다. 티브이 앞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그런 평범한 가정집. 나는 친구네 집에 가면 그 집 가족이 된 양 굴며 자주 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했다. 엄마는 어느날 친구네 집에서 실컷 놀다가 들어온 내 발을 씻겨주며 물었다. “친구네 집이 그렇게 좋아?” 응 엄마. 민지네 엄마가 쿠키도 구워주고 민지네 아빠가 목마도 태워줬어. 엄마는 말없이 내발을 뽀득뽀득 닦았다. 얼마지나지않아 엄마는 내게 아빠를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했는지 나를 데리고 아빠가 있는 전주로 향했다. 아빠의 집 거실엔 내 유치원 졸업 사진이 액자에 아주 크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는 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금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주 현상으로 알콜성치매가 도진 것이다. 엄마는 친가 가족들을 불러 상의해 정신병원입원 절차를 밟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빠는 정신병원에서 종종 종이로 접은 연필꽂이나 도기로 만든 머그컵 따위를 만들어 내게 보냈다. 내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10살이 되자 어느 낯선 남자를 데려와 이제부터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는 고집불통에 오기가 세 그에게 일부러 아저씨라고 부르며 깐죽거렸다. 그런 나를 엄마의 남자친구는 8년 간 사랑으로 돌봐주었다. 나는 친아버지가 보내준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미련없이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18살이 되자 정식으로 나를 호적에 올리고 싶다고 손을 덜덜 떨며 고백하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무심한 듯 싫다고 답했다. 정말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냥 내 성씨가 바뀌는 것이 싫어서. 그냥 그렇다고 말했다. 최토일에서 김토일이 되듯 내이름은 김조이로 성이 바뀌면 이조이가 되어 우스운 이름이 되었다. 그는 내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납득해주고 내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집안일은 손도 대지 않는 엄마와 달리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밥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며 아침밥을 차려 나를 깨웠다. 주말엔 나를 차에 태워 어디로든 향했고 계절이 바뀌면 직접 옷을 골라주었다. 또 어찌나 박학다식한지 내가 시험공부를 할 때면 내 옆에서 교과서엔 없는 재미난 인문학과 역사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주변에선 이렇게 다정한 아버지 이세상에 또 없다며 칭찬 일색이었고 나는 내심 그런 그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는 내게 내가 동경했던 가정을 선물해주었다. 어색하고 낯 부끄러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18살의 가을, 친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이 왔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 친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슬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뻥 뚫린 기분. 오래된 고향집이 폐허가 된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그도 이별을 했다. 이번엔 달랐다. 그와의 이별은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어릴적 그렇게 동경하고 꿈꿨던 가정이 불과 8년 만에 무너졌다. 나는 나를 탓하며 자책했다. 그가 호적에 올리고 싶다고 한 것을 거절했기에 그렇게 된 것만 같았다. 물론 그 탓도 어느정도 있었으리라. 그는 그만큼 내게 진심이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의 엄마도 좋지만 무엇보다 너에게 반했다. 너처럼 똑똑하고 예쁜 아이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다. 언젠가 네가 아버지라고 불러준다면 더 할 낙이 없겠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나는 후회했다. 친아버지의 장례식을 가지 않은 것보다 내게 아버지가 되어주려 했던 그에게 이름 성이 마음에 안든다는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그의 진심을 거절했던 것을. 나도 그에게 반했다고 말해줄 것을 그랬다고. 오래 전부터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줄 것을 그랬다고. 나는 열여덟에 두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담담한 척을 했다. 엄마를 위해서였다. 이혼후에도 줄곧 친가와 가족처럼 지냈던 엄마는 내 친아버지의 장례식을 가지 않은 것을 계기로 친가쪽에서 절연 선언을 당했다. 엄마와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은 그를 원망하거나 증오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엄마와 나 각자의 선택이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장례식에서 문득 “너를 네 아빠 장례식에 보낼 걸, 너라도 보냈어야 했는지 몰라.” 하고 말했다. 내가 두 아버지와 친가 식구들, 외할아버지를 잃었듯, 엄마 역시 친가 식구들과 첫 결혼상대, 애인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나보다 엄마가 더 상심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그 후로 변했다. 나를 늘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오로지 내편이 되어주었다.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엄마는 나를, 두 아버지를 잃은 나를 더 사랑해주려 노력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대화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했다. 엄마는 가끔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두 아버지의 몫까지 사랑해주기로 결심했고 나는 엄마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를 보며 친아버지와 새아버지,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에 크게 공감이 되었고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보았다. 토일이의 상황은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낙관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그녀의 곁에 그녀를 응원하고 아껴주는 이들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종종 웃고 종종 진지해졌다. 통통 튀는 편집이 밝고 귀여우면서 중간중간 떠오르는 어릴적 엄마와의 기억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부분이 좋았다. 일월이와의 만남은 조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고 마지막에 힘이 많이 빠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완벽한 선택따위는 없다는 대사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지금 두 아버지 없이도 엄마와 행복하니까. 때로는 어떤 결정이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흉터 몇 개 쯤은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다솜땅
3.5
진짜 괜찮은 걸까? 불안하고 또 불안해.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으니까.. 수십번 변하는 마음, 확실해도 못미더운데, 안보이니 더 불안해.. 단지, 사랑과 믿음을 원할 뿐인데.. 이젠 내가 주도할꺼야!!!! ㅎ 생각보다 발찍한 상상! 어쩜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해도, 마음 한편으론 응원해주고 싶다. ㅎ #20.12.17 (2924)
film fantasia
3.0
망해도 괜찮아, 그래도 우리 잘 살아왔으니까!
P1
3.5
망하지 않으려고 겁만 먹고 살바에야 망하고 다시 시작하자구! 허접한 내용같았는데 마지막 부분이 와닿아서 맘에 들어 "불안은 불안으로 해소한다 미래는 어짜피 정해진 게 없으니꽈! 뭘 하든 불안한 게 정상이지"
윤제아빠
4.0
그닥 아비규환급 참상이라 할 수는 없는거 같다. 새로운 세대를 여는 참신함을 남성의 시각보단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모나지 않다. 그래 남자..까짓거 뭐라고. 어차피 잉태의 반만 제공했을 뿐인데. . . #이런공정한시각으로이야기하니 #모두다어설프고불안한존재임이 #확연하다더배우고생각하며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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