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は君に何を語るのか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2025 · ドラマ · 韓国
108分 · R15

若き詩人のドンファ(ハ・ソングク)は、3年間交際している恋人ジュニ(カン・ソイ)を家まで送り届けた際、玄関先で彼女の父(クォン・ヘヒョ)と鉢合わせし、流れでジュニの家族と一日を過ごすことになる。初めはぎくしゃくしていたが、ジュニの家族に家や近所を案内され会話を重ねるうちに少しずつ距離を縮めてゆくドンファ。そして一家が揃う夕食の時間。勧められるまま酒を口にするドンファだったが、緊張から酒が進み、酔いが回り、本音があらわになり、次第に気まずい雰囲気が漂いはじ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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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주
3.0
홍상수가 매년 자기연민 내지는 한국인 관찰일기를 공장처럼 찍어 내놓으면 서양인들이 막 숨 넘어갈듯 웃고 상을 퍼줌
이동진 평론가
3.5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청구영언)
오세일
4.5
동화와 그의 애인 준희의 아버지가 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소박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벤치. 준희의 아버지는 들판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자신의 아지트라 소개한 뒤, 그 안에서 막걸리를 꺼내 온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는 두 사람. 정적인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흐른다. 주제는 '효심'. 그리고 이따금 동화는 자신이 얼마나 준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한다. 이를테면 준희를 마음씨 고운 천사와 비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카메라는 그들의 긴 대화를 픽스 숏으로 찍다가, 이내 한 번의 줌 아웃을 행한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줌 인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간다. 하지만 그 줌 인은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계산된 촬영이라기보단 뭔가를 잘못 눌러서 의도치 않게 당겨진 줌 인처럼, 동화와 준희 아버지의 모습은 프레임을 뚫고 기묘하게 사각지대의 끝에 걸친다. 어느새 둘 사이에 끼어든 나뭇잎. 사실 그 나뭇잎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 둘이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십 수 년 전 벤치가 그 자리에 설치되기 이전부터 나뭇잎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는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원래부터 일찍이 자리 잡고 있었던 나뭇잎의 자리에 둘의 존재가 불현듯 끼어든 것. 힘겹게 눈동자를 굴리며 프레임의 양 끝에 불편하게 걸쳐져 있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관객은 차라리 그들의 사이에 있는 나뭇잎을 응시하기로 택한다. 보기 좋은 편한 자리에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흩날리는, 그러나 그 무엇보다 평안한 자태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뭇잎. 그 자연은 자신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화와 준희 아버지의 만담에 슬며시 동참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냥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고 말하라는 듯이. 준희 아버지는 동화에게 질문한다. 안경을 벗어도 준희가 잘 보이느냐고. 그 뒤에 혼자서 자신의 질문에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아, 오히려 예뻐 보이려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줄곧 흐릿한 이미지로 일관한다. 마치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처럼, 깨끗하지 못하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깨끗함에 집착한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언니를 보고 소리가 깨끗하다 하는 준희와, 동화의 시 낭송을 듣고 깨끗한 시라고 칭찬하는 준희의 아버지. 하지만 그들의 깨끗하다는 말에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정말 맑고 깨끗하다고 느껴서 하는 진심 어린 칭찬이 아닌, 이 상황을 민망하지 않게 타파하기 위한 계산된 언어적 술수처럼. 홍상수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한다. 당신이 안경을 쓰고 더 깨끗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은 일종의 집착일 수도 있다고. 안경이라는 시선을 걸러내는 과정 없이 그냥 바로 자신의 안구에 투영되는 자연으로 우거진 세계. 그 세계만이 어쩌면 그대들이 그토록 원하는 진실에 가장 입각한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동화의 아버지는 변호사이다. 극 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준희 가족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하 변호사'라는 이름. 하지만 정작 동화는 재차 언급되는 아버지의 존재가 그다지 달갑진 않아 보인다. 일부러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완전한 독립을 택한 동화. 그러나 준희의 언니는 자꾸만 동화의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뒤에 있잖아요.' 단순한 독립으로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 결국 동화는 준희 가족과의 술자리에서 폭발하고 만다. 무슨 짓을 해도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란 존재가 동화에게 있어 얼마나 거슬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동화는 돈을 숭배하는 아버지가 지겨워 그의 곁을 떠나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소유의 삶을 원하는 그의 귀에는 자꾸만 세속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이름이 들려온다. 동화는 정말로,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실한 무소유의 삶을 원하는 것이 맞기는 할까. 사실 아버지란 존재가 너무 싫어서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기에, 돈을 숭배하는 그를 닮고 싶지 만은 않기에 억지로 자본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런 동화의 마음은 진실이 아닌 욕망에 가깝다. 무소유의 삶에 대한 욕망, 집착. 절에서 준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화에게 화를 낸다. 너가 생각하는 그런 삶의 태도야말로 성급한 재단이고, 그릇된 행위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동화는 자신의 시에 밤에 피는 꽃은 빛난다고 쓴다. 그리고 그 말을 믿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쓴 그 말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한다. 야밤에 산에 올라가 아름답게 핀 한 송이의 꽃을 바라보지만 그 꽃의 빛은 자신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불빛일 뿐, 꽃이 스스로 빛을 내뿜는 순간은 마주하지 못한다. 심지어 하산을 하다 넘어져 팔에 굵은 상처가 생기게 된 동화. 동화는 전 날 저녁 준희의 가족들에게 술에 취한 채 몹쓸 짓을 한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그는 차라리 도망가기를 택한다. 하지만 그의 도망은 얼마 안 있어 좌절된다. 96년도에 만들어진 그의 낡은 중고차가 고장 나버린 것. 동화의 무소유에 대한 의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해 주던 중고차의 수명은 그렇게 끝이 난다. 이제 동화에게는 한 개비의 담배만이 남았다. 그토록 의지하던 중고차마저 곁을 떠나버린 현재, 동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JY
3.5
하성국 보며 공감성 수치 느끼는 와중에도 뭘 끄적일까 고민하는 나같은사람 왓챠에 겁나많다 인정? 반박시 님 권해효
창민
4.0
생각이든 행동이든 가치관이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나든, 너든, 여느 집단이든. 그러니 웬만해선 단정짓지 말자. 그렇다고 단정짓지 말자는 것 또한 단정짓지 말자.
STONE
3.5
모르겠다.는 도피성 비관을 몇십 년 멀리에서 비웃는다. 그때의 그는 지금과 똑같이 흐린 시야에 갇혀 있다.
천수경
4.5
큰동생의 장인 장모를 만나는 상견례에 다녀왔다. 막내와 나는 가기 귀찮다고, 부모님들끼리만 만나면 안 되느냐고 앓는 소리를 했고. 우리 중 가장 보수적인 큰동생은 이미 식당 예약을 마쳤다는 말로 일단락지었다. 그 애랑 결혼한다는 여자는 내가 실물로 본 웬만한 배우보다 아름다웠다. 함께 온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자매의 미모에 일차적으로 충격 받은 나는 괜히 막내한테 말을 걸었다. 너 여자친구는 대통령 후보 누구 지지해? 큰동생은 당장 대화를 중단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원래 유령처럼 있다가 오는 게 목표였으나, 화사하게 차려입은 상대편 가족의 모습에, 긴장되어서 일찍 일어났다는 동생 장인어른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돈 가족이 우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도 외교적인 미소로 화답했다. 나의 큰동생은 사돈 가족의 집에서 종종 주말을 통째로 보내고, 그 가족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강아지를 돌보았을 정도로 친밀하다. 결혼할 사람의 동생과는 서로 반말을 섞어 쓸 정도다. 예비 신부의 동생은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데, 무례할 정도로 폰을 자주 보는 나와 우리 집 막내에게 말을 걸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와 막내는 거의 모든 말을 자학 개그로 받아쳤고, 그녀는 앳된 얼굴과 달리 산타할아버지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학생들에게 인기 많으실 것 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손사래 쳤다. 큰동생이 입만 열면 장인 장모가 빵빵 터졌다. 걔는 집에 있을 때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무얼 하시느냐는 질문에 산에 간다고, 뭘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도 산을 좋아한다고 답하는 우리 엄마를 두고 “엄마는 무슨 타잔이야? 모든 일상이 산에서 이루어져?” 하면서 언젠가 장모님의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보라고 했다. 나는 예비 신부와 말을 거의 안 했다. 숭고한 일을 하면서 돈까지 잘 버는 그녀가 어른들의 폭력적인 대화에 조금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듯했기에. 그것을 방조이자 공모로 여기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러면서 사돈 동생에게만큼은 관대해져서 그녀가 들고 온 필름 카메라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최근에 산 터라 기본적인 것들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진 않느냐는 내 질문에 문학에 관심 없다고 답한 건 용서했다. 동생의 장인과 장모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머 감각이 곧 인성이라는 내 이론의 근거가 될 이들. 그런 두 사람이 일구어나간 가정은 당연히 화목했다, 화목이라는 표현 따위가 평가절하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로를 온전히 믿고 함께 식사하는 일을 위안으로 여기는 그런 가족이었다. 예비 신부와 할아버지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일화를 듣다가 나는 그만 아찔해졌다. 식사에만 백만 원을 썼다는 그 자리가 내 큰동생의 잔인한 행위예술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입양될 새로운 가족을 찾아서 우리 부모님에게 들이미는 징벌이자, 두 사람이 수십 년간 저지른 잘못을 직접 느끼게끔 하는 체험 학습이었다. 상견례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차에서 “그 집 아버님 진짜 재미있으시다,” “그 집 동생 성격 진짜 좋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한 나와 막내는 그 공연에 기꺼이 동참했다. 엄마와 아빠는 피곤하다는 말 외엔 별말이 없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막내는 상견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상견례를 한다면 즉석떡볶이 프랜차이즈 <두끼 떡볶이>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식사를 떨쳐내기 위해 급하게 나의 연인을 찾았다. 그가 “나 보고 싶지?” 물었을 때 솔직히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봐야 해서 보는 거라고 했다. 진통제를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닌데 알약을 털어 넣으면서 “널 정말 먹고 싶었어,” 하는 건 기만이니까. 사돈 가족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 얼마나 내 동생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줬는지 말하면서도 나는 남자친구가 상기시켜주길 바랐다. 온 가족이 X당을 뽑는다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막상 그가 그렇게 나오자, 나는 그 가족이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지 직접 봐야 한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 따위 크게 생각 안 하고 우리가 증오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 가족의 추한 면모를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실존하는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 같아서 답답했다. 그들을 온전히 한심하게 여길 수가 없는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들이더라.” “이 시국에 X번 뽑는 게 무수한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는 거지.” “그건 나도 알아.”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나의 모습이 멋없는 것 같아서 관뒀다. 세상엔 위의 상견례 같은 일들이 널렸다. 최소한 내 인생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굴복하지 않길 바랐다. 본질적으로 추한 무언가 속에 작은 아름다움 하나가 있더라도 가뿐히 무시하길,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것 속에 작은 추함이 있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않길. 우아한 모습으로 천박한 어른들이랑은 단호하게 결별하길. 모양새는 경박할 수 있어도 진정 숭고하다면 끝까지 추구하길. 폭력이 난무한 여자친구의 집에서 취해 잠들었던 밤, 혼자 헤매다가 발견한 사진 한 장엔 여자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었을까. 그걸 보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내 마음을 녹였다. 어떤 심정으로 그 사진을 애틋하게 여길지 알 것만도 같아서. 어디선가 들려온 기타 소리를 그가 음미하는 모습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맑은 선율을 연주하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면 험한 말을 뱉은 입이 있다는 걸 남자도 알 테니까. 그리고 그는 사랑에 굴복한다. 더 좋은 차를 사기로 한 것만도 같다. 자신이 선택한 것들이 불러오는 피로에 스스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이 결말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강인하지 못한 남자에 대한 연민? 그를 무릎 꿇리고 만 사랑의 힘? 재능 없는 시인은 시를 쓸 수 없는 세상의 엄혹함? 날마다 그 결말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날은 후련하다. 언제까지고 온실 속 화초일 수 없는 한 사람이 잔혹함을 진정으로 마주한 것이, 그에 응답한 것이 후련하다. 어떤 날은 홍상수에게 화가 난다. 이미 다 아는 세상을 굳이 세밀화로 그려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 영화가 다소 악의적이지 않나. 또 어떤 날은 되려 굳세어진다. 이 영화를 백신처럼 맞은 것이다. 아직은 저 남자처럼 굴복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영화가 연습게임을 선사했다고 생각한다.
무비신
4.0
그 자연조차 알다가 모를 모순적인 인간들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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