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しき仕事
Beau Travail
1999 · ドラマ/戦争 · フランス
92分

元・外国人部隊所属上級曹長のガルーは、マルセイユの自宅で回想録を執筆している。かつて暑く乾いたアフリカのジブチに駐留していたガルー(ドニ・ラヴァン)は、いつしか上官フォレスティエ(ミシェル・シュボール)に憧れともつかぬ思いを抱くようになっていた。そんななか、部隊にやってきた新兵のサンタン(グレゴワール・コラン)が社交的な性格でたちまち人気者となり、ガルーはそんな彼に嫉妬と羨望の入り混じった感情を募らせ、破滅させたいとすら思うようになる。あるとき部隊内でトラブルが起き、ガルーはその原因を作ったサンタンに遠方から一人で歩いて帰隊するよう命じるが、サンタンは途中で行方不明になってしまう。その責任を問われたガルーは、本国へ送還され、軍法会議にかけ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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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Oh
3.5
이제서야, 이렇게 표현한다. Physicality, freed.
Dh
4.0
동떨어진 곳의 외인부대, 한 잔존병의 처절한 몸부림 #명불허전 드니 라방👍 #단련
JE
3.5
시적인 영화라는 표현은 늘 모호하고 어렵지만, 적어도 <아름다운 직업>은 그 예시를 들 때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러티브는 희박하게 던져주곤 이미지에 기대 영화를 이어가는데, 탐미적인 카메라와 유장한 편집으로 만들어낸 리듬이 최면을 거는 듯 서서히 빠져들게끔 한다. 전시적이다 싶을 정도로 군인들의 육체와 운동을 탐하는 이미지 자체는 의뭉스럽긴 해도, 재바르기도 둔중하기도 한 군인들의 훈련 템포와 이국적이고 광활한 풍경의 정적인 호흡이 이뤄내는 조화가 제법 좋았다. 특히 드니 라방은 <홀리 모터스>를 너무 강렬하게 본 탓인지는 몰라도 육체만으로 운동성과 리듬을 단박에 체현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아름다운 직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든다. 어떤 침잠과 붕괴의 정서가 스미다 마주하게 되는 엔딩의 춤사위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 초반부 부대원들이 가건물로 진입하는 훈련을 하던 장면.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신속하게 건물을 올라가는 다른 대원들과 달리, 드니 라방은 사주 경계를 하는 듯 눈은 빠르게 살피면서도 아주 느리게 계단을 오르는데, 카메라가 그 모습을 잠잠히 담아낸다. 속도나 편집이 이전까지 부하들을 담아내던 것과는 다른 데다, 로우 앵글에서 하이 앵글로 바뀌기까지 한 대비들 덕택이기도 하겠으나, 앞선 속도를 대뜸 모두 집어삼킨 듯한 드니 라방의 걸음이 ('시적'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리듬'이라는 단어를 그야말로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기라도 하는 것 같아 감탄스럽고 매혹적이었다. 언뜻 짧고 잉여적인 흐름처럼 보이지만, 좀 더 과장하면, 활력이 흐르는 댄스 장면으로 시작해 황량한 기차 밖 사막 풍경과 소란한 기차 내부의 사람들 풍경을 지나 고요하고 공허하게 버려진 폐전차의 모습을 이어내는 오프닝처럼, 윤슬이 빛나던 바다에 폭발과 핏빛이 담기는 것처럼, 군인들의 활동적이고 육체적인 관능과 어떤 정서적인 황폐함 같은 것처럼, '아름다운 직업'이라는 제목이 주는 역설적인 느낌처럼,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충돌의 감각과도 잘 어울리는 리듬처럼 다가왔다. 그 유별난 감흥이야말로 아마 드니 라방 덕택 아니었을까.
Flick
4.0
아름다운 직업(Beau Travail, 1999)은 클레어 드니의 영화적 미학이 절제와 여백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조형하는 방식의 정점에 이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내러티브보다 감각적 경험을 통해 감정을 전이하는 독특한 영화적 언어를 구축하며, 한 인간이 내면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절제된 형식미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남성성, 권력, 욕망, 그리고 제국주의적 질서가 얽힌 복합적인 균열의 순간이다. 제국주의적 질서와 외인부대의 존재론적 모순 영화는 프랑스 외인부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군사적 정체성 자체를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인부대는 제국주의적 질서의 연장선상에서 작동하는 억압적 시스템으로 그려진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원래 프랑스 국적이 아닌 자들이 모여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부대이며, 그 기원 자체가 식민주의적 확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 속 부대의 배경이 된 지부티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오늘날에도 프랑스 군사 기지가 존재하는 장소다. 이 공간은 외인부대원들에게는 훈련과 규율의 장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로 남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 속 인물들의 정체성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갈루(드니 라방)는 군대라는 엄격한 규율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지만, 그가 믿고 있는 질서 자체가 이미 오래된 제국주의적 환상의 잔재일 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는 부대에서 쫓겨나고, 결국 스스로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가 신념처럼 따랐던 질서가 결국 그를 버렸고, 그가 속한 군대의 세계는 실상 그에게 아무런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질서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균열과 붕괴를 상징한다. 억압된 욕망과 퀴어적 해석 영화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적 갈등은 갈루가 상티안(그레고리 콜린)에게 품는 애매한 감정이다. 표면적으로 그는 상티안을 질투하며 군대 내의 규율을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시선과 행동은 단순한 경쟁심을 넘어서 있다. 드니는 갈루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언어화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시선과 태도를 통해 억압된 욕망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영화는 상티안의 신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갈등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상티안이 상의를 벗고 햇빛 속에서 운동하는 장면, 그의 신체가 반복적으로 카메라에 포착되는 방식 등은 마치 군대적 규율과 대비되는 유연한 자유의 몸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신체는 갈루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그는 상티안을 제거하려 하지만, 실상 그가 제거하려는 것은 자기 내부에서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의 존재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갈루는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지 못한 채 철저히 억압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군대라는 공간은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며, 그는 철저히 명령과 규율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상티안의 존재는 그 규율을 뒤흔드는 요소가 된다. 갈루는 상티안을 군대적 규율로 통제하려 하지만, 상티안은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존재 자체가 갈루의 내면을 뒤흔든다. 결국 갈루는 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상티안을 제거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려는 시도일 뿐이며, 그 결과로 그는 군대에서조차 버려지는 존재가 된다. 사운드 디자인과 감각적 서사 이 영화는 대사보다 시각적 이미지와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군대의 훈련 장면에서 들리는 반복적인 발소리, 숨소리, 군인들의 집단적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리드미컬한 소리는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율적 소리들이 반복되면서 점차 그것이 단조롭고 기계적인 강박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춤 장면에서 삽입되는 corona의 “The Rhythm of the Night”는 이러한 사운드적 통제를 완전히 해체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의 군대적 리듬과 대비되는 이 갑작스러운 팝 음악은 마치 갈루가 처음으로 자신을 억압해온 구조에서 벗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의 춤은 자유로움이라기보다, 마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그는 마치 규율을 따라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감시하는 듯하며, 오히려 자신의 억압된 내면이 절정에 이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성의 폐쇄성과 여성의 부재 클레어 드니는 이 영화에서는 철저히 남성만 존재하는 세계를 그린다. 군대라는 공간 자체가 남성성을 강화하는 폐쇄적 체계이며, 이곳에서는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남성성을 단순히 강함의 상징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남성성이 자기 파괴적이고 폐쇄적인 구조 안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간간이 나타나는 여성들은 마치 환영처럼 존재한다. 부대원들이 클럽에서 여성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여성들은 그들의 삶과 동떨어진 외부의 존재일 뿐이다. 이는 영화가 철저히 남성성 내부의 균열을 탐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남성들은 결국 자기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고립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결론 이 영화는 결국 질서와 규율, 남성성과 권력, 욕망과 억압이라는 구조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균열을 탐구하며, 군대라는 공간을 통해 이 모든 요소가 어떻게 충돌하고 붕괴하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걸작이다.
주방장의 잡기술
3.0
정복(正服)의 안과 밖, 군인이라는 외부를 벗어 개인의 본연까지 탐미하기.
샌드
4.0
흔히 클레르 드니의 영화 중 대표로 말해지는 영화인만큼 저도 지금까지 본 드니의 영화들 중에선 제일 좋았습니다. 인간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육체를 잘 다뤄낸 영화는 사실 드물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방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Hyong Ju Kim
4.0
드니 라방이 얼굴로 거저 먹는 배우가 아닙디다
오세일
4.0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는다는 촬영의 단순 개념을 넘어서, 카메라와 인간의 시선을 일치시킨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모든 이미지들을 화폭에 수채화를 그리듯 감각적으로 수놓는다. 이미지의 운동성에 대한 탐미주의 예술의 최전선에 위치한 듯한 실험적 연출이 스크린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영화는 그들의 내면에 대한 서사적 내러티브를 배제하고, 오로지 시선과 행위에서 파생되는 시적 언어를 통해서만 이야기의 운율을 건축한다. 상의를 탈의한 채 몸을 부대끼는 남성들에 집중하는 카메라는 육체에 대한 탐미주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갈루의 브루노를 향한 마음을 대변하는 이미지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화 특유의 미학은 연출뿐만이 아닌 드니 라방이라는 배우의 힘에서 빚어지는 순간 또한 마주할 수 있는데, 복합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전달해 내는 그의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렇다. 그렇기에 영화의 끝에서 접하게 되는 그의 춤에서는 사랑, 질투, 욕망, 후회라는 인간의 근원적 본질에 대한 괴로움이 처연하게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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