勝手に逃げろ/人生
Sauve qui peut (la vie)
1980 · ドラマ · フランス, スイス, 西ドイツ, オーストリア
87分

木曜日。テレビ番組のディレクター、ポール・ゴダール(ジャック・デュトロン)はホテルから同僚で別れた恋人、ドゥニーズ・ランボー(ナタリー・バイ)に電話している。彼はホテルを出て車に乗る。一方、ドゥニーズは自転車でレマン湖畔の田舎を走っている。彼女は元活動家で今は地方新聞を発行している旧友ミシェル・ピアジェ(ミシェル・カサーニュ)と出会う。ドゥニーズは田舎からテレビ局のポールに電話し、2年間暖めてきたマルグリット・デュラスが出演する番組の件について話す。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Dh
3.5
폴과 드니즈 그리고 이자벨의 각자도생 #체념과 구원
다솜땅
3.5
담담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자극도 고뇌도 모두 평범해져 버린다. 이자벨 위페르의 어린 모습이 눈에 쏙 들어온다. #20.12.5 (2852)
개구리개
3.0
세련미 넘치는영상 공감되지않는 철학
모까모까
4.5
서브크레딧이 시작되고 꽤나 묘한 쇼트가 하나 등장한다. 여자를 따라 나오던 남자는 여자는 다시 붙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2차적인 사건을 기술하느라 주된 이슈를 소홀히 했어." "조연이 주연이 된거지." 고다르의 영화는 항상 첫부분에서 자신의 영상언어를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철저하게 그에 따라 만들어진다. 고다르가 감독일때 서브크레딧#1을 확인하고 바로 이상한 구간을 눈여겨봐야하는 이유다.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카메라는 팬숏으로 움직이고 남녀의 배경이된 담장 너머에서 이야기와 거의 관련없는 화려한 차림의 여성을 걸어나온다. 카메라가 이름 모를 여인을 따라나가다보면 어느샌가 카메라 뒤에서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그렇게 이야기는 조연을 주연으로 만들어가는 독특한 서사의 표현을 미리 선보인다. 드니스에서 고다르로, 고다르에서 이자벨로 순차적으로 주연이 등장하고, 카메라의 시선은 눈여겨보지 않던 조연에게 이동한다. 그렇게 조연은 새로운 주연이 된다. 이 부분이 가장 극단적으로 잘 표현한 것은 아마 드니스가 자전거를 세우는 도중의 폭행당하는 여자의 시퀸스이다. 말보로 파일럿(?)이 등장하고 그가 잠시 상점에 들렀다 나오는 순간 이 쇼트는 위의 표현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다. 여자가 나오는 프레임수를 낮추고, 지나가는 인부를 바스트 컷으로 포커스를 맞춰 주연처럼 그려내고, 프레임을 되돌린후 모두를 퇴장시킨후 인부를 프레임 가장자리에서 스쳐가는 피사체처럼 다시 조연으로 그려내는... 이러한 생각 자체는 굉장히 참신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잘 활용하였는지이다. 이 영화는 #3의 가장 후반부와 <#4.음악>을 통해 인물을 통제한다. #4의 서브타이틀이 음악인것은 이를 표현하는 방법(혹은 신호)으로 음악을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위의 시퀀스에서 드니스와 고다르는 좋지 않게 깨지고, 고다르와 그의 전부인과 딸이 헤어지며, 이자벨의 친구가 창녀가 되려던 이유가 밝혀진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3의 확실한 주연으로 변모한 이자벨이 다시 조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영화의 모든 주연들이 다시 조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고다르가 서장에 제시한 원칙에서는 주연은 반드시 조연에 의해 소홀히 대해져야 하기때문이다. 즉, #1-3에 이르는 각 주연들이 조연이 되어 프레임 속에서 어느순간 퇴장하고 고다르의 전처와 딸처럼 다시 조연으로 그려지며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플래시백으로나 그려졌을 작은 쇼트들을 하나의 시퀀스로 구성하여 마무리함으로 구조를 만들어낸다. 달리 말하면 #4는 모든 시퀀스에 관여한다. 반대로 #4를 보면 거리의 오케스트라(?)가 눈에 띄지만, 사실 #1-3에서 언어나 사운드의 충돌로 인해 생략되는 쇼트들이 #4에서 모두 채워진다. 그럼으로 <인생>은 비록 그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진 않지만, 이야기 중의 가장 필요한 구성요소들을 채움과 동시에 영화를 마무리짓는 독특한 구조의 완결된 이야기로 변모한다. 이 사이에는 조연이 주연이 되고, 모든 주연이 사라진다는 고다르가 선제시한 원칙이 영화 곳곳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쇼트와 사운드를 이어버리는 개인적인 실험이자, 동시에 각 주연들이 존재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상업적인 영화일 수 있다. 즉, 고다르의 작가주의와 프랑스 대중영화의 중간지점에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최소한 <미녀 갱 카르멘> 전까지는..) P.s) 고로 고다르는 가장 친절한 감독이다. 떠먹여주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다만, 삼키기가 힘들뿐...
ㅎㅇㄱ
3.5
할 수 있어도 구할 수 있는가 인생은
상맹
3.0
이 놈의 고다르 안 보려고 했는데 정성일 평론집 제일 먼저 나와서 또 보게 되네!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재미 없고 몇 번 간지나는 철학적 대사있고 이해는 안 가고. 후기 실험들과는 다르게 그래도 여기는 이미지를 정지시키는 것에 힘을 둔다. 무빙 이미지라고 흐르는 것만이 영화라고 생각하던 때 고다르는 아니다! 영화는 세상을 정지시키고 그 역동성과 벡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순간을 봐라. 이거 말고는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고다르는 늘 외부텍스트랑 같이 봐야 이해가 간다. 거의 한 10편은 본 거 같은데 고다르 영화 매번 느끼지만 좋은 영화 감독인지는 모르겠다. 혁명적 감독은 맞는 것 같고. 근데 뭐 영화가 단일한 게 아니니까 쓸 데 없는 이야기인 거 같고.
Hoon
4.0
감독은 극에 순종할 것인가.
lilin🪽
5.0
단절되고 조각나고, 반복되며, 움직이다 멈추는, 무의미한 거짓과 거짓과 거짓의 진실된 감정이 인생일 뿐이다. - 영화가 세상을 바꾸리라는 믿음 조차 거짓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된 시대의 중심에서 고다르는 초연해졌다. 인정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에게 영화는 이미 모든 의미에서 삶의 기표이며 기의이며 진실과 거짓이었다. - 영화는 들린다. ‘고다르에 의해 작곡된 영화’
さらに多くのコメントを見るには、ログインし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