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Oh4.0'나'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함께 일상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게끔, 내면을 파고들어 탐구하게끔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능동적으로 시간을 역행하게끔 하기까지. Having us go through the "self-discovery" alongside is brilliant. Forwards, inwards, backwards.いいね36コメント0
천수경4.0나는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 형광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열댓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인간들이 한 무리로 묶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뉴스에서 보던 ‘사회 봉사 명령’을 받은 범죄자들인가 싶고,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확실히 다들 범죄자처럼 생겼다. 또 다시 보면 유순하게들 생겼지만. 저녁쯤엔 세탁소 아저씨 아들이 (세탁소에선 항상 폰만 보더니) 세탁물들을 배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리브영 마감 알바생 두 명은 밤늦게 문을 잠그고 어색하게 인사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귀가한다. 포장마차 사장님들은 서로 라이벌이긴 해도 새벽 한두 시쯤엔 다같이 한 가게에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집 근처에 터미널이 있어서 군인들도 많이 보인다. 과자를 한 사바리씩 산 군인들은 PX에 없는 과자들을 산 것인지 궁금하고, 군인은 다 아저씨처럼 보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들이 이제는 앳된 동생들로 보이는 게 신기하다. 평일 오전에 가끔 동네 산책을 하는 유치원생들은 왜 짝꿍의 손을 잡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넘어질 때 같이 넘어지겠다는 건가. 이전에 살았던 동네엔 손주를 유치원에 등하교시키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서커스 단장처럼 옷을 입는 할아버지’라고 했을 때 가족들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우리는 그 할아버지 직업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 보라색 양복 세트는 어디서 사신 걸까. 이제는 그 손주가 컸을 테니 혼자 등하교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밤 열 시에 학생들로 북적이던 학원가의 버스 정류장은 지금도 북적이고 있겠지. 거기는 버스가 오면 애들이 다 탈 때까지 어른들이 타지 않았다. 그 어린 애들이 그 시간에 거기 있는 게 안쓰러워서 절로 양보하게 되는 거였다. 어차피 애들도 대다수는 만원 버스에 서서 가야 했지만. 간혹 중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이 보이면 더 눈길이 갔다. 자기 상체만 한 백팩을 메고 수학 문제를 풀던 여자애를 지켜본 나와 어떤 아주머니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쓰린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여자애가 너무 어려 보였고, 두꺼운 안경도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리라. 바로 그런 순간들이 다 내가 된다는 걸 알아서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특히 상실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내가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을 때, 집 밖으로 나가기 싫을 때. 그럴 때 쓰레기봉투를 사러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재수 때 친구랑 "우리 5년 만이다," 라며 서로 반가워하고, 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게 느껴지면, 역시 인생은 0.3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소한 사실로 인해 내가 조금은 더 내가 될 힘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애기가 인사하길래 너무 당황해서 “응 안녕,”이라고 해야 하는 걸 “앗, 고, 고마워,” 라고 했다. 그 애기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내 등에다 대고 “똥은 똥인데 안 매운 똥은?!” 이라고 외쳤다. 나는 뒤돌아본 후 답을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그 애기는 떠나버렸다. 세상 찝찝했지만 그날 하루 중 제일 많이 웃었다. 집 밖으로 나간 것에 대해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いいね17コメント0
이동진 평론가
3.5
계절처럼 흐르다가 머물러 풍경이 된 나를 골똘히 들여다보다.
황재윤
3.5
잠시 머물러서 나를 알아가는 것만큼의 신비로운 여정이 또 어딨을까.
JY
3.0
막판에 툭 던지듯 내려놓은 그 말로 인해 감상의 여정인것 같던 것들이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재정립된다
Jay Oh
4.0
'나'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함께 일상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게끔, 내면을 파고들어 탐구하게끔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능동적으로 시간을 역행하게끔 하기까지. Having us go through the "self-discovery" alongside is brilliant. Forwards, inwards, backwards.
뭅먼트
1.5
나다움으로 수놓인 8월 어느 여름날의 여정.
simple이스
4.0
도시를 방랑하며 무겁지 않게 나에 대해 물어보다.
백준
3.0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 <어른> sondia
천수경
4.0
나는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 형광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열댓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인간들이 한 무리로 묶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뉴스에서 보던 ‘사회 봉사 명령’을 받은 범죄자들인가 싶고,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확실히 다들 범죄자처럼 생겼다. 또 다시 보면 유순하게들 생겼지만. 저녁쯤엔 세탁소 아저씨 아들이 (세탁소에선 항상 폰만 보더니) 세탁물들을 배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리브영 마감 알바생 두 명은 밤늦게 문을 잠그고 어색하게 인사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귀가한다. 포장마차 사장님들은 서로 라이벌이긴 해도 새벽 한두 시쯤엔 다같이 한 가게에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집 근처에 터미널이 있어서 군인들도 많이 보인다. 과자를 한 사바리씩 산 군인들은 PX에 없는 과자들을 산 것인지 궁금하고, 군인은 다 아저씨처럼 보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들이 이제는 앳된 동생들로 보이는 게 신기하다. 평일 오전에 가끔 동네 산책을 하는 유치원생들은 왜 짝꿍의 손을 잡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넘어질 때 같이 넘어지겠다는 건가. 이전에 살았던 동네엔 손주를 유치원에 등하교시키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서커스 단장처럼 옷을 입는 할아버지’라고 했을 때 가족들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우리는 그 할아버지 직업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 보라색 양복 세트는 어디서 사신 걸까. 이제는 그 손주가 컸을 테니 혼자 등하교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밤 열 시에 학생들로 북적이던 학원가의 버스 정류장은 지금도 북적이고 있겠지. 거기는 버스가 오면 애들이 다 탈 때까지 어른들이 타지 않았다. 그 어린 애들이 그 시간에 거기 있는 게 안쓰러워서 절로 양보하게 되는 거였다. 어차피 애들도 대다수는 만원 버스에 서서 가야 했지만. 간혹 중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이 보이면 더 눈길이 갔다. 자기 상체만 한 백팩을 메고 수학 문제를 풀던 여자애를 지켜본 나와 어떤 아주머니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쓰린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여자애가 너무 어려 보였고, 두꺼운 안경도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리라. 바로 그런 순간들이 다 내가 된다는 걸 알아서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특히 상실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내가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을 때, 집 밖으로 나가기 싫을 때. 그럴 때 쓰레기봉투를 사러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재수 때 친구랑 "우리 5년 만이다," 라며 서로 반가워하고, 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게 느껴지면, 역시 인생은 0.3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소한 사실로 인해 내가 조금은 더 내가 될 힘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애기가 인사하길래 너무 당황해서 “응 안녕,”이라고 해야 하는 걸 “앗, 고, 고마워,” 라고 했다. 그 애기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내 등에다 대고 “똥은 똥인데 안 매운 똥은?!” 이라고 외쳤다. 나는 뒤돌아본 후 답을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그 애기는 떠나버렸다. 세상 찝찝했지만 그날 하루 중 제일 많이 웃었다. 집 밖으로 나간 것에 대해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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