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승규/동도4.5선과 악보다도 성숙과 미숙의 이분법, 참혹한 현실에 물들어버린 성숙, 그런 현실을 향해 정의를 외치는 미숙. 미숙한 선은 성숙한 악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체스에서 폰은 계급이 가장 낮지만 가장 먼저 전진해야 한다. 그런 폰은 체크메이트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NKVD의 통제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부모처럼 보살펴주는 이 하나 없이 미숙한 선은 스스로 시대의 고통을 극복해야 했다.いいね112コメント1
Fridaythe13th4.5영화 자체가 출입의 경계가 무의미한 거대한 감옥같다. - - - (아래 스포일러 리뷰) 이토록 경직되고 인위적인 미장셴은 영화의 주제와 완전히 맞닿아 있다. 교도소 내에 곳곳에 포진된 간수들은 맹목적이고 성실하게 작동한다. 마치 각자가 쇠창살 하나하나 같다. 목적과 무관하게도 코르녜프는 그 속에서 그저 시스템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기다리라 하기에 기다리며, 간수가 열어주는 문을 따라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의뢰인은 코르녜프가 과거에 존경했던 고위 간부, 스테프냐크다. (맥락상 검사였을 것이다) 감옥에 갇히게 된 그의 사연을 통해 영화는 의도적으로 스테프냐크에서 코르녜프의 미래를 엿보게 한다. 이후 코르녜프는 NKVD의 부패를 고발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모스크바로 가는 이유는 오직 스테프냐크가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스테프냐크의 처지만 보더라도, 그는 이 부패한 체제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끄는데 명백하게 실패했다. 모스크바에 가서 상부에 호소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그의 지시는 코르녜프만큼이나 순진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가 기차에 타자 어떤 할아버지는 자신이 레닌에게 구걸하러 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주인공은 자꾸만 존다. 주변에서도 너무 템포가 느리다며, 빠르게 이야기하라고 재촉하지만 노인은 주인공을 가리키며, 이 젊은이는 처음이지 않냐며 또박또박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는 마치 관객을 코르녜프의 자리에 앉힌다. 그의 이야기 방식은 이 영화 자체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한다. 그러나 이 체제의 작동방식은 그렇지 않다. 뚜벅뚜벅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영화처럼, 이 체제는 관료주의라는 질서를 따른다. 노인은 마치 그 질서에 따라서 서술하는 듯하다. 주인공의 여정 역시 그 질서 속에 있다. 이 지루한 이야기에 꾸벅꾸벅 졸던 그는 결국 똑같은 이야기를 겪는다. 사실 이 이야기는 스테프냐크의 조언이, 이 여정이 실패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다를 것이라 믿은걸까, 그는 꾸벅꾸벅 졸다 이 실패를 그대로 겪는다. 정부에서의 광경은 교도소와 이토록 유사하다. 앞서 교도소장을 대기하던 그는, 이제 같은 모습으로 경찰청장을 대기한다. 역시 사무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단순히 열의로 불타는 두 눈동자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껏 반복되며 단단하게 유지된 체제의 작동방식에 무지한 자가 지닌 눈에 띄는 열의는 맹목적이고 성실하게 작동하는 주변의 시선에선 검열이 필요한 이상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계단에서 흩뿌려진 서류를 줍는 걸 돕는 그의 주위에서 물러서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정부에서 계단을 오르는 도중, 어느 남자가 길을 묻는다. '출구가 어디에요?' 주인공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의아해하며 '내려가서 왼쪽이요.'라고 답한다. 마치 자신은 출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이제는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비신스키와의 면담후에, 그는 증거를 수집하러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걸까, 기차 내부에서 그는 잠시나마 긴장을 푼다. 공장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는 두 동지를 만나며, 그들과 이야기하며 술에 취해 잠이 들기까지 한다. 기차에서 내려서 굳이 차를 태워달라고 요청하는 것 역시 본인이다. 여담으로, 그들은 '질서를 위하여'라며 건배를 하는데, 코르녜프만은 법적 질서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셋 다 체제의 질서를 순순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이처럼 그는 감히 이 부패의 고리가 산재되어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중반부에 기차에서 노인이 묻던 '자네 동정인가?'라는 질문은 말미에 조사실로 가는 자동차 내부에서 반복되는데, 이는 이전과 달리 '자네는 그리도 순진한가?'라는 섬뜩한 질문같다. 코르녜프는 이제서야 자동차 문을 열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당연하게도 부패한 체제의 질서를 순순히 따르는 방식으로는 그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과 마찬가지로, 엔딩에서도 교도소 내부로 들어가는 구조를 통해 입구와 출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1.37:1의 비율과 함께 이를 통해 마치 영화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감옥인 것처럼 묘사해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누구나 질서를 따르기를 강요당하는 이 거대한 전체주의의 감옥에서, 출구의 존재에 대해 섬뜩하게 되묻고 있다.いいね70コメント0
Jay Oh4.0누군가 열리게 두었기에 열려있던 문들로 이뤄진 체계에서,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 부조리에 대해서. Oppressive is the system of closed doors. But that's just history, right? (제목에 대한 주저리, 스포 포함) 제목은 <두 검사>지만, 우리는 한 검사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렇다면 두 번째 검사는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첫 번째 후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전직 검사. 체계에 끝까지 맞서고는 있지만 그 끝이 보이는, 어쩌면 주인공의 미래일 수도 있는 모습의 검사다. 이 둘이 제목의 '두 검사'라 하면,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했을 때 이들은 동일시된다. '두 검사'는 체계 내에서의 무력감을 강조되는 제목이 된다. 두 번째 후보, 힘겹게 만난 검찰총장. 주인공은 알 도리가 없었겠지만, 사실 이 사람은 1936-1938년의 대숙청을 이끌었던, 당시 검찰총장이자 실존인물 안드레이 비신스키다. '두 검사'는 순진하다면 순진할 정도로 신념을 갖고 이상을 좇는 젊은 검사, 그리고 부조리를 형성하는 체계 꼭대기에 위치한 검사의 대비를 보여주는 제목이 된다. 둘 다 말이 되고, 둘 다 충분히 의도되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좀 더 와닿는 해석이 둘 있다. (물론, 이 둘도 의도되었을 수도 있다.) 셋째. 주인공과 같이 이상을 바라며 앞으로 나서는 검사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묻어가는 검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검사는 체계에 순응하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그런 검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검사'는 주인공이 나타내는 가치의 이면까지 내포하는 제목이 된다. 넷째. 사실 제목의 두 검사에 주인공이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주인공을 제외한 두 인물(수감된 전직 검사와 검찰총장)이 제목의 두 검사라 하면 대비 지점들이 보다 극명해진다. 검사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체계 내 최상위와 최하위로 갈렸던 현실이 도드라진다. 주인공이 제목에 자리 잡지 못할 나름 적절한 이유도 있다. 연인도 가족도 없다는 점이 강조된 주인공은 나머지 둘과 달리 역사가 기억해줄 방법도 없을테니 말이다.いいね55コメント3
이동진 평론가
5.0
요소마다 두 차례 반복하며 감옥을 지어 올리는 연출이 드러내는 섬뜩한 순환의 미로.
상어
3.5
나 코가 저렇게생긴사람 처음봄
지리산베지터
3.5
ネタバレがあります!!
ㅂ승규/동도
4.5
선과 악보다도 성숙과 미숙의 이분법, 참혹한 현실에 물들어버린 성숙, 그런 현실을 향해 정의를 외치는 미숙. 미숙한 선은 성숙한 악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체스에서 폰은 계급이 가장 낮지만 가장 먼저 전진해야 한다. 그런 폰은 체크메이트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NKVD의 통제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부모처럼 보살펴주는 이 하나 없이 미숙한 선은 스스로 시대의 고통을 극복해야 했다.
Fridaythe13th
4.5
영화 자체가 출입의 경계가 무의미한 거대한 감옥같다. - - - (아래 스포일러 리뷰) 이토록 경직되고 인위적인 미장셴은 영화의 주제와 완전히 맞닿아 있다. 교도소 내에 곳곳에 포진된 간수들은 맹목적이고 성실하게 작동한다. 마치 각자가 쇠창살 하나하나 같다. 목적과 무관하게도 코르녜프는 그 속에서 그저 시스템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기다리라 하기에 기다리며, 간수가 열어주는 문을 따라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의뢰인은 코르녜프가 과거에 존경했던 고위 간부, 스테프냐크다. (맥락상 검사였을 것이다) 감옥에 갇히게 된 그의 사연을 통해 영화는 의도적으로 스테프냐크에서 코르녜프의 미래를 엿보게 한다. 이후 코르녜프는 NKVD의 부패를 고발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모스크바로 가는 이유는 오직 스테프냐크가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스테프냐크의 처지만 보더라도, 그는 이 부패한 체제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끄는데 명백하게 실패했다. 모스크바에 가서 상부에 호소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그의 지시는 코르녜프만큼이나 순진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가 기차에 타자 어떤 할아버지는 자신이 레닌에게 구걸하러 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주인공은 자꾸만 존다. 주변에서도 너무 템포가 느리다며, 빠르게 이야기하라고 재촉하지만 노인은 주인공을 가리키며, 이 젊은이는 처음이지 않냐며 또박또박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는 마치 관객을 코르녜프의 자리에 앉힌다. 그의 이야기 방식은 이 영화 자체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한다. 그러나 이 체제의 작동방식은 그렇지 않다. 뚜벅뚜벅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영화처럼, 이 체제는 관료주의라는 질서를 따른다. 노인은 마치 그 질서에 따라서 서술하는 듯하다. 주인공의 여정 역시 그 질서 속에 있다. 이 지루한 이야기에 꾸벅꾸벅 졸던 그는 결국 똑같은 이야기를 겪는다. 사실 이 이야기는 스테프냐크의 조언이, 이 여정이 실패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다를 것이라 믿은걸까, 그는 꾸벅꾸벅 졸다 이 실패를 그대로 겪는다. 정부에서의 광경은 교도소와 이토록 유사하다. 앞서 교도소장을 대기하던 그는, 이제 같은 모습으로 경찰청장을 대기한다. 역시 사무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단순히 열의로 불타는 두 눈동자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껏 반복되며 단단하게 유지된 체제의 작동방식에 무지한 자가 지닌 눈에 띄는 열의는 맹목적이고 성실하게 작동하는 주변의 시선에선 검열이 필요한 이상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계단에서 흩뿌려진 서류를 줍는 걸 돕는 그의 주위에서 물러서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정부에서 계단을 오르는 도중, 어느 남자가 길을 묻는다. '출구가 어디에요?' 주인공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의아해하며 '내려가서 왼쪽이요.'라고 답한다. 마치 자신은 출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이제는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비신스키와의 면담후에, 그는 증거를 수집하러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걸까, 기차 내부에서 그는 잠시나마 긴장을 푼다. 공장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는 두 동지를 만나며, 그들과 이야기하며 술에 취해 잠이 들기까지 한다. 기차에서 내려서 굳이 차를 태워달라고 요청하는 것 역시 본인이다. 여담으로, 그들은 '질서를 위하여'라며 건배를 하는데, 코르녜프만은 법적 질서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셋 다 체제의 질서를 순순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이처럼 그는 감히 이 부패의 고리가 산재되어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중반부에 기차에서 노인이 묻던 '자네 동정인가?'라는 질문은 말미에 조사실로 가는 자동차 내부에서 반복되는데, 이는 이전과 달리 '자네는 그리도 순진한가?'라는 섬뜩한 질문같다. 코르녜프는 이제서야 자동차 문을 열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당연하게도 부패한 체제의 질서를 순순히 따르는 방식으로는 그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과 마찬가지로, 엔딩에서도 교도소 내부로 들어가는 구조를 통해 입구와 출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1.37:1의 비율과 함께 이를 통해 마치 영화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감옥인 것처럼 묘사해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누구나 질서를 따르기를 강요당하는 이 거대한 전체주의의 감옥에서, 출구의 존재에 대해 섬뜩하게 되묻고 있다.
조조무비
3.0
#💬 영화는 시작하면 반드시 끝나야 하고, 문은 열리면 반드시 닫혀야 한다.
Jay Oh
4.0
누군가 열리게 두었기에 열려있던 문들로 이뤄진 체계에서,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 부조리에 대해서. Oppressive is the system of closed doors. But that's just history, right? (제목에 대한 주저리, 스포 포함) 제목은 <두 검사>지만, 우리는 한 검사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렇다면 두 번째 검사는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첫 번째 후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전직 검사. 체계에 끝까지 맞서고는 있지만 그 끝이 보이는, 어쩌면 주인공의 미래일 수도 있는 모습의 검사다. 이 둘이 제목의 '두 검사'라 하면,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했을 때 이들은 동일시된다. '두 검사'는 체계 내에서의 무력감을 강조되는 제목이 된다. 두 번째 후보, 힘겹게 만난 검찰총장. 주인공은 알 도리가 없었겠지만, 사실 이 사람은 1936-1938년의 대숙청을 이끌었던, 당시 검찰총장이자 실존인물 안드레이 비신스키다. '두 검사'는 순진하다면 순진할 정도로 신념을 갖고 이상을 좇는 젊은 검사, 그리고 부조리를 형성하는 체계 꼭대기에 위치한 검사의 대비를 보여주는 제목이 된다. 둘 다 말이 되고, 둘 다 충분히 의도되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좀 더 와닿는 해석이 둘 있다. (물론, 이 둘도 의도되었을 수도 있다.) 셋째. 주인공과 같이 이상을 바라며 앞으로 나서는 검사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묻어가는 검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검사는 체계에 순응하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그런 검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검사'는 주인공이 나타내는 가치의 이면까지 내포하는 제목이 된다. 넷째. 사실 제목의 두 검사에 주인공이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주인공을 제외한 두 인물(수감된 전직 검사와 검찰총장)이 제목의 두 검사라 하면 대비 지점들이 보다 극명해진다. 검사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체계 내 최상위와 최하위로 갈렸던 현실이 도드라진다. 주인공이 제목에 자리 잡지 못할 나름 적절한 이유도 있다. 연인도 가족도 없다는 점이 강조된 주인공은 나머지 둘과 달리 역사가 기억해줄 방법도 없을테니 말이다.
Dh
4.0
부조리로 응축된 체제속에서 꿈틀대려했던 자의 말로 #어쩔수가 없다 #메가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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