ベロニカ・フォスのあこがれ
Die Sehnsucht der Veronika Voss
1982 · ドラマ · ドイツ, 西ドイツ
104分 · G

1955年、ミュンヘン。スポーツ記者のロベルト(ヒルマール・ターテ)は、どしゃ降りの雨の夜、茫然と濡れそぼっている女に出会った。若くはないが、妖しい雰囲気と端正な顔立ちが彼を惹きつけた。傘をさしかけ、一緒に電車に乗りこむ。他の乗客の視線に怯え、「私だということがわかるとまずいわ……」と呟く彼女にジャーナリストとしてのロベルトの好奇心が芽生えた。数日後、彼女からの電話を受け、恋人ヘンリエッタ(コーネリア・フロベス)をおいて約束のレストランに向かったロベル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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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땅
3.5
한물 간 배우 베로니카.. 어느날 우연히 만난 기자는 그녀를 궁금해하지만 뭔가.. 이상한 구석이 많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그녀!! 매번 말이 달라지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기자!! 가스라이팅!! 보는 사람마져 답답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속에 씁쓸함과 연민이 한가득 든다. 인간의 정신이, 이렇게 취약한 소프트웨어라니... 조금의 바이러스와 더 강화된 명령어가 입력되면 점점 침식당하는 프로그램!! 성악설이 더 증명되는 순간이다.. #24.1.13 (38)
김솔한
4.5
프레임 안에 정확히 담긴 백색 공포.
차지훈
4.5
사랑과 약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갈망 망가져가는 모습에 흐려져가는 스포트라이트 여배우와 환자 사이에서 일상적 삶의 망각 흔들리는 로맨스에서 신념의 드라마로 끝맺는 미칠듯한 서사 컬러 대신 흑백으로 자연스레 흘러가는 고전적 아름다움 시종일관 한가지 배경음악으로 몰아치는 꿋꿋함 이 모든게 35년전 흑백 고전에 담겨있다.
sanissan
4.0
파시즘을 완벽히 대체한 자본주의, 착취하는 자들과 의존하는 자들. 진실을 알고 있다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선명하고 새하얀 패배감 앞에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책상 앞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젊은 소시민.
미상.
4.5
전후 독일, 그리고 독일 영화는 여전히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일에서 파시즘은 사라졌다. 하지만 돈이라는 힘을 가진 자본주의가 파시즘의 자리를 대신 지배한다. 베로니카 포스와 괴벨스의 관계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대략 추측 가능한 것은 베로니카 포스가 파시즘에 매달려서 나치즘의 시대를 극복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사라진 자리 베로니카 포스는 돈을 통해서 모르핀이 중독된다. 돈이 없다면 모르핀도 없다. 돈과 모르핀이 없다면 죽는다. 결국 자본주의에 생을 결탁한 것이다. 결국 전체주의는 지속된다. 나치즘에서 자본주의로 변했을 뿐이다. 아마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UFA 영화 시절 베로니카 포스가 나름 괜찮은 배우였다는 것이다. UFA 영화 시절, 표현주의 영화는 나치에 비협조적이었다. 대다수 영화인은 미국,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그런 UFA 시대의 영화배우인 베로니카 포스가 나치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은 나치즘에 협력했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나치즘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에 협력 혹은 노예가 되어 버린 게 베로니카 포스다. 베로니카 포스의 꿈 속에서 나오는 영화사는 유나이티트, MGM, 20세기 폭스 사다. UFA 독일 표현주의가 사라지고 독일 영화는 사라졌다. 영화는 곧 미국 영화만이 남아 버린 시대. 독일 영화는 나치의 지배를 벗어났지만, 미국 자본주의 돈의 지배를 다시 받는다. UFA 시대 표현주의 영광은 사라져버렸다. 물론 파스빈더는 그 영광을 꿈꾸는 것 같다. 과장된 조명은 이 영화에서 왜곡된 베로니카나 카츠 박사, 로베르트의 영혼이나 꿈 같은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에서 독일 표현주의 시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파스빈더는 표현주의 시대의 영광과 상실, 왜곡을 한 장면에서 보여준다. 카츠박사의 병원은 밝고 경쾌하다. 화사하며,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 속에서 타인의 영혼을 조작하며 돈으로 모든 것을 사는 악의 공간이다.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공간 그 자체다. 하지만 화려하며 살기 좋아 보인다. 자본주의가 그런 것 아닐까? 헐리우드가 그런 것 아닐까? 화려하고 살기 좋아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 지옥이 있다. 트래블링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부부. 그들에게서 나치즘은 사라졌다. 하지만 고통은 없어지지 않는다. 카츠 박사로 대표되는 착취의 대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의 삶은 저당잡혀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혹은 만족한다. 원래 그런 게 민중의, 힘없는 사람의 삶일지도 모르니. 로베르트의 동인은 알 수 없다 .베로니카 포스에 대한 사랑인지, 혹은 기자로서의 정의인지. 그저 그는 뭔가 진실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진실은 친절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살해당하고, 경찰과 카츠 박사는 사실을 왜곡한다. 유태인 노부부는 그에게 젊은이라고 했다. 그는 진짜 '젊은이'일 것이다. 새로운 독일을 꿈꾸는 젊은이. 하지만 젊은 이에게는 힘이 없다. 그 시도 조차 무력하게 무너진다. 68년도의 기억은 파스빈더에게 그런 기억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나치즘과 자본주의의 시대를 끝내고 진실을 찾고자 했지만. 자본주의는 나치즘이었고, 나치즘은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겼다. 그렇게 로베르트, 더 나아가 독일 젊은이에게 남은 것은 그저 처절한 패배감 뿐이다. 신문의 이면에 부정의가 있음을 알아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패배감. 자본가들의 탐욕을 바라만 보고 떠날 수 없는 마무리처럼.
Eun Hye Choo
4.0
나치즘이라는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 그 광기의 시대 속에서 빛나던 삶이나 그림자보다 더 어둡게 가리워졌던 삶이나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을 꿈꾸는 유령들에 불과한. 그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아무런 정의도 선도 남아있지 않은 자본에 중독된 인간들만 남은 세태에 대한 무력감.
Indigo Jay
4.0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 (1950)에서 글로리아 스완슨이 연기한, 과거의 화려한 명성에 사로잡혀 사는 은퇴한 여배우 노마 데스먼드를 연상시키는 베로니카 포스는,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 (1982)에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이 오마주로 만든 캐릭터다. 그녀는 나치의 전성기에 스크린을 누빈 여배우였지만 지금은 마약에 중독되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베로니카는 "전후 독일에 드리워진 파시즘의 망령"을 대신 나타낸 인물이라고 한다. 조셉 L. 맨케비츠 감독의 <이브의 모든 것> (1950)에 등장한 연극 배우 이브도 떠오른다. 하지만 <선셋 대로>와 <이브의 모든 것>이 자신들의 명성과 대중의 관심이 사라지고 나이를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여배우의 심리 분석에 집중했다면,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은 여배우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고통으로 이끈 주변 상황 (파시즘적 사회)을 그녀를 흠모하는 기자를 등장시켜 더 잘 보여준다. 비극적인 사건 후 가해자들이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엔딩은 무기력함과 허무함을 주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기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아직도 그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감지할 수 있었다. *리뷰 http://m.blog.naver.com/cooljay7/220740071357 *2012.10.24 재감상
zerkalo
4.0
무대 위 밝은 조명이 늘 반짝인대도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매번 바뀌기 마련인데, 잠깐의 강렬했던 빛에 이미 눈이 먼 자는 아득한 심연 속에서도 춤을 멈추지 못한다. 그 현혹과 중독의 빛을 내뿜는 주체가 파시즘이든 자본주의든, 더 무서운 것은 그 배후를 알고서도 그대로 몸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선셋 대로>(1950)의 모티브와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흑백 촬영에 독일 현대사의 맥락을 더해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린 트라우마를 체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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