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4.0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의 영화제작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야마구치 DNA에 대한 현장 가이드’ 워크숍 또한 YCAM에서 실제 진행된 바 있다. 영화는 워크숍 참여자들의 활동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처럼 시작되지만, 이내 인턴 우메(이토 호노카)를 중심으로 여러 참가자의 이야기가 뒤섞이며 픽션임이 드러난다. 대학생 인턴을 짝사랑하게 된 두 중학생 참가자의 삼각관계, 워크숍 진행자와 함께 산행을 떠난 네 학생의 모습, 자유롭게 야마구치 곳곳을 돌아다니며 처음 보는 식물을 채집하는 어린 학생들. 영화는 그들을 촬영함과 동시에 그들의 활동이 기록해낸 영상들을 함께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아이폰 카메라의 녹화기능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아이폰 특유의 질감이 돋보이는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영상은 아이폰으로 촬영된 여타 영화들, 이를테면 션 베이커의 <탠저린>이나 박찬욱(과 박찬경)의 단편들과는 구별된다. 아이폰 카메라에 별도의 렌즈를 장착하거나 카메라 리그, 케이지, 짐벌, 크레인 등이 동원되는 것과 달리, 기본 카메라 세팅 위에서 출연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관객이 보는 아이폰으로 촬영된 이미지 대부분은 영화 속에서 그것을 촬영하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_ 사실 이러한 연출은 스마트폰 시대에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촬영되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트위치 등으로 송출되는 이미지를 직접 등장시키고, 나아가 어플리케이션의 UI마저 동원하는 사례 또한 빈번하다. 흥미롭게도 <와일드 투어>는 그러한 순간들을 배제한다. 이 영화에서 아이폰으로 촬영된 이미지가 영화의 화면을 채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촬영된 이미지를 인물들이 함께 편집하며 지켜보거나, 메시지 등을 통해 사적으로 전달된 영상을 틀어보거나. 여기서 ‘카메라’로서의 아이폰은 그 바깥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유튜브와 같은 다른 장치는 개입되지 않으며, 영상을 전달하는 메신저(그마저도 아이폰의 기본 메시지)만이 사용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와일드 투어> 속 아이폰 영상들은 디지털-인터넷-모바일 시대의 (주로 콘텐츠로 명명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과거의 영화 속 비디오 캠코더나 8mm 카메라로 촬영된 홈비디오에 가깝게 다가온다. 분명 디지털 이미지이자 스마트폰으로 촬영되었으나, 영화 속에서의 쓰임과 아이폰이라는 조건 외에 (촬영 시) 별다른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이미지라는 지점에서 이 이미지들의 인상은 다른 것이 된다. 이 영상들은 영화 속 다른 이미지들, 즉 인물들, DNA 채집 워크숍, 대학생과 중학생이라는 나이, 가로로 흩날리는 눈이나 갑작스레 앞길을 막는 문화재와 같은 것들의 관계 속에서 위치 지어진다. _ 최근 출간된 강연집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는 픽션이건 다큐멘터리건 세계를 찍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언급한다. 여기서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리얼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헛된 강령 따위가 아니다.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 앞에 놓인 세계를, 그 세계가 무엇이건 간에 대면하는 행위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와일드 투어>를 생각해본다면, 미야케 쇼의 세계는 무엇보다 관계(들)과의 대면 속에서 만들어진다. 영화를 구성하는 영화 카메라와 아이폰 카메라 영상 사이의 관계들이 그것을 다른 영화의 아이폰 카메라 영상과 다른 지위로 옮겨 두는 것처럼,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그 관계는 야마구치의 식물/미생물과 대면하는 워크숍 참가자일 수도, 대학생 누나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는 중학생일 수도, 든든한 선생님을 따라 등산을 포기하려던 친구를 붙잡는 손길일 수도, 워크숍 과정 속에서 새로이 목격한 야마구치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아이폰 카메라를 켜는 행동일 수도 있다. _ 미야케 쇼의 필모그래피를 절반 정도 봤을 뿐이지만, 이제야 그의 영화들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해나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속 세 주인공의 이합집산이 그려내던 하코다테의 풍경,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권투와 노동을 오가던 주인공을 따라 담긴 팬데믹 시기의 도쿄, 데뷔작 <플레이백>의 ‘되돌아감’이 초래한 것들. 미야케 쇼의 영화들은 장소와 인물과 행위가 맺는 관계들이 규정해내는 시간을 찍는다. 그가 정의하는 세계란 그 관계들의 총체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가 (필모그래피 중 가장 독특하다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을 찍은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주온> 시리즈의 원혼들은 근본적으로 지박령이다. <와일드 투어>는 우메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를 짝사랑한 두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끝난다. YCAM이 더 이상 그들의 장소가 아니게 될 때, 관계가 마무리될 때 영화가 끝나는 것이다.いいね51コメント1
벤바4.0[미야케 쇼에 대한 단상] 누군가가 '감독의 말은 절반만 믿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날 미야케 쇼가 <와일드투어>의 가장 아름다운 씬과 관련하여 토니 스콧의 <데자뷰>을 언급했을 땐 우리와 일종의 게임을 하자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의뭉스러운 면이 살짝 있다고 느꼈다. 기표를 뿌리는 자가 고의적으로 말이 없을 땐 혼란스러운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러나 이처럼 해맑고 성실하게 답변할 때 더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물론 미야케 쇼가 '아직은' 성실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알고 보면 원체 솔직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써 온전히 드러날 테니, 다음 차기작을 통해 남은 퍼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낮과 밤의 존재는 인간이 지구를 느끼게 되는 순간과 관련이 있다." 아마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는 데 관심 있는 감독이라면, 그 기쁨을 아는 감독이라면 나는 흥분하며 기다릴 수 있다. 시네아스트의 탄생을 지켜보는 경험은 황홀하다. 세대의 행운이다. 내겐 미첼, 윤가은, 뒤쿠르노, 하마구치 등이 그랬듯 미야케가 그렇다. '이 감독은 앞으로 내 삶과 함께 간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감독들. 그들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나의 삶을 쌓아가는 것. 나 이전의 세계를 역사적으로 탐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이후의 세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 미야케는 분명 동시대의 이름이다.いいね36コメント4
Jay Oh3.5지나오고 지나치는 '야생', 그 속 감정들이 희한하게 빛이 난다. 채집해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An organic collection of emotions.いいね31コメント0
RAW4.5야생의 청춘이 발아하는 순간을 포착하다. 4.4/5점 짧은 영화 속에 10대의 미숙함이 특별한 가공없이 카메라에 온전하게 담긴 작품 영화의 끝에 갈수록 보기 힘들었다면 미숙했던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사람에 따라 잔인한 측면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은 어느 덧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지만 무료한 일상에 과거의 순간이 셀로판지처럼 겹쳐져 사라지지 않는다.いいね26コメント0
김솔한4.0"그땐 누나들이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고작 스물둘, 스물하나였다." -> 혹시 이런 느낌의 댓글 보신 분 있으실까요? 멜론 아님 왓챠피디아에 있었던 것 같은데...어느 분이신지, 또 어디에 있었던 감상평인지 찾고 싶네요. 영화를 보고 불현듯 떠올라 올려봅니다! -> 안녕하세엳님의 제보로 알게 됐습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석미인님 코멘트가 출처였네요😆 보실지 모르겠지만 석미인님 감사해요... 항상 맘속에 담고 있는 코멘트입니다..!いいね23コメント4
이동진 평론가
3.5
도달하기 전에 날아가버린 풍선과 닿자마자 미끄러져내린 물방울들이 모여.
동구리
4.0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CAM)의 영화제작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야마구치 DNA에 대한 현장 가이드’ 워크숍 또한 YCAM에서 실제 진행된 바 있다. 영화는 워크숍 참여자들의 활동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처럼 시작되지만, 이내 인턴 우메(이토 호노카)를 중심으로 여러 참가자의 이야기가 뒤섞이며 픽션임이 드러난다. 대학생 인턴을 짝사랑하게 된 두 중학생 참가자의 삼각관계, 워크숍 진행자와 함께 산행을 떠난 네 학생의 모습, 자유롭게 야마구치 곳곳을 돌아다니며 처음 보는 식물을 채집하는 어린 학생들. 영화는 그들을 촬영함과 동시에 그들의 활동이 기록해낸 영상들을 함께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아이폰 카메라의 녹화기능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아이폰 특유의 질감이 돋보이는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영상은 아이폰으로 촬영된 여타 영화들, 이를테면 션 베이커의 <탠저린>이나 박찬욱(과 박찬경)의 단편들과는 구별된다. 아이폰 카메라에 별도의 렌즈를 장착하거나 카메라 리그, 케이지, 짐벌, 크레인 등이 동원되는 것과 달리, 기본 카메라 세팅 위에서 출연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관객이 보는 아이폰으로 촬영된 이미지 대부분은 영화 속에서 그것을 촬영하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_ 사실 이러한 연출은 스마트폰 시대에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촬영되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트위치 등으로 송출되는 이미지를 직접 등장시키고, 나아가 어플리케이션의 UI마저 동원하는 사례 또한 빈번하다. 흥미롭게도 <와일드 투어>는 그러한 순간들을 배제한다. 이 영화에서 아이폰으로 촬영된 이미지가 영화의 화면을 채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촬영된 이미지를 인물들이 함께 편집하며 지켜보거나, 메시지 등을 통해 사적으로 전달된 영상을 틀어보거나. 여기서 ‘카메라’로서의 아이폰은 그 바깥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유튜브와 같은 다른 장치는 개입되지 않으며, 영상을 전달하는 메신저(그마저도 아이폰의 기본 메시지)만이 사용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와일드 투어> 속 아이폰 영상들은 디지털-인터넷-모바일 시대의 (주로 콘텐츠로 명명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과거의 영화 속 비디오 캠코더나 8mm 카메라로 촬영된 홈비디오에 가깝게 다가온다. 분명 디지털 이미지이자 스마트폰으로 촬영되었으나, 영화 속에서의 쓰임과 아이폰이라는 조건 외에 (촬영 시) 별다른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이미지라는 지점에서 이 이미지들의 인상은 다른 것이 된다. 이 영상들은 영화 속 다른 이미지들, 즉 인물들, DNA 채집 워크숍, 대학생과 중학생이라는 나이, 가로로 흩날리는 눈이나 갑작스레 앞길을 막는 문화재와 같은 것들의 관계 속에서 위치 지어진다. _ 최근 출간된 강연집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는 픽션이건 다큐멘터리건 세계를 찍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언급한다. 여기서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리얼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헛된 강령 따위가 아니다.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 앞에 놓인 세계를, 그 세계가 무엇이건 간에 대면하는 행위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와일드 투어>를 생각해본다면, 미야케 쇼의 세계는 무엇보다 관계(들)과의 대면 속에서 만들어진다. 영화를 구성하는 영화 카메라와 아이폰 카메라 영상 사이의 관계들이 그것을 다른 영화의 아이폰 카메라 영상과 다른 지위로 옮겨 두는 것처럼,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그 관계는 야마구치의 식물/미생물과 대면하는 워크숍 참가자일 수도, 대학생 누나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는 중학생일 수도, 든든한 선생님을 따라 등산을 포기하려던 친구를 붙잡는 손길일 수도, 워크숍 과정 속에서 새로이 목격한 야마구치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아이폰 카메라를 켜는 행동일 수도 있다. _ 미야케 쇼의 필모그래피를 절반 정도 봤을 뿐이지만, 이제야 그의 영화들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해나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속 세 주인공의 이합집산이 그려내던 하코다테의 풍경,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권투와 노동을 오가던 주인공을 따라 담긴 팬데믹 시기의 도쿄, 데뷔작 <플레이백>의 ‘되돌아감’이 초래한 것들. 미야케 쇼의 영화들은 장소와 인물과 행위가 맺는 관계들이 규정해내는 시간을 찍는다. 그가 정의하는 세계란 그 관계들의 총체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가 (필모그래피 중 가장 독특하다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을 찍은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주온> 시리즈의 원혼들은 근본적으로 지박령이다. <와일드 투어>는 우메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를 짝사랑한 두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끝난다. YCAM이 더 이상 그들의 장소가 아니게 될 때, 관계가 마무리될 때 영화가 끝나는 것이다.
벤바
4.0
[미야케 쇼에 대한 단상] 누군가가 '감독의 말은 절반만 믿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날 미야케 쇼가 <와일드투어>의 가장 아름다운 씬과 관련하여 토니 스콧의 <데자뷰>을 언급했을 땐 우리와 일종의 게임을 하자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의뭉스러운 면이 살짝 있다고 느꼈다. 기표를 뿌리는 자가 고의적으로 말이 없을 땐 혼란스러운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러나 이처럼 해맑고 성실하게 답변할 때 더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물론 미야케 쇼가 '아직은' 성실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알고 보면 원체 솔직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써 온전히 드러날 테니, 다음 차기작을 통해 남은 퍼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낮과 밤의 존재는 인간이 지구를 느끼게 되는 순간과 관련이 있다." 아마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는 데 관심 있는 감독이라면, 그 기쁨을 아는 감독이라면 나는 흥분하며 기다릴 수 있다. 시네아스트의 탄생을 지켜보는 경험은 황홀하다. 세대의 행운이다. 내겐 미첼, 윤가은, 뒤쿠르노, 하마구치 등이 그랬듯 미야케가 그렇다. '이 감독은 앞으로 내 삶과 함께 간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감독들. 그들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나의 삶을 쌓아가는 것. 나 이전의 세계를 역사적으로 탐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이후의 세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 미야케는 분명 동시대의 이름이다.
Dh
3.5
때 묻지 않은 투어 #🍃🌿🌱 #라이카시네마
Jay Oh
3.5
지나오고 지나치는 '야생', 그 속 감정들이 희한하게 빛이 난다. 채집해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An organic collection of emotions.
희정뚝
3.0
세상 소중한 DNA들을 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RAW
4.5
야생의 청춘이 발아하는 순간을 포착하다. 4.4/5점 짧은 영화 속에 10대의 미숙함이 특별한 가공없이 카메라에 온전하게 담긴 작품 영화의 끝에 갈수록 보기 힘들었다면 미숙했던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사람에 따라 잔인한 측면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은 어느 덧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지만 무료한 일상에 과거의 순간이 셀로판지처럼 겹쳐져 사라지지 않는다.
김솔한
4.0
"그땐 누나들이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고작 스물둘, 스물하나였다." -> 혹시 이런 느낌의 댓글 보신 분 있으실까요? 멜론 아님 왓챠피디아에 있었던 것 같은데...어느 분이신지, 또 어디에 있었던 감상평인지 찾고 싶네요. 영화를 보고 불현듯 떠올라 올려봅니다! -> 안녕하세엳님의 제보로 알게 됐습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석미인님 코멘트가 출처였네요😆 보실지 모르겠지만 석미인님 감사해요... 항상 맘속에 담고 있는 코멘트입니다..!
さらに多くのコメントを見るには、ログインし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