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ンナ・マグダレーナ・バッハの日記
Chronik der Anna Magdalena Bach
1968 · 音楽/歴史/ドラマ · ドイツ, イタリア, 西ドイツ
94分 ·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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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年、アンナ・マグダレーナは、バッハの2度目の妻として迎え入れられる。それから29年後の1756年に死ぬまでの間のバッハの創造的苦悩、家庭でのアンナや子供たちへの態度が、これらの音楽の作曲された年月にそって語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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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h_光顯
4.5
스트라우브-위예의 이미지는 로고스이고 이 긴밀한 연합에 올곧은 힘이 있다.
Cinephile
3.5
바흐의 음악에서 엄격하게 정돈된 형평의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이 작품은 창작자가 임의로 이미지의 맥락을 형성하는 서사 관행에 저항하며 음악과 영상의 합일을 이룬다. 다만 이로써 이미지가 악곡의 전후를 나눈 신호에 그치게끔 하는게 과연 함의가 클지 의문이다.
도 강
5.0
스트로브-위예가 9년 남짓되는 장고와 인내의 시간을 거쳐서라도 이 작품으로 장편 데뷔를 해야했던 까닭에 주목한다. 어찌하여 음악이었고, 바흐였으며 그의 생애를 구송하는 화자는 안나 막달레나였을까. 이는 본인들이 믿는 영화론의 지평을 열기 위한 가장 탁월한 소재이자 장치로써 훗날 스트로브-위예 필름의 코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커닿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단순히 바흐만을 위한 헌사는 아님을. 스트로브-위예의 영화론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작품이라고 여기며. 플루서나 바그너의 철학을 굳이 빗대지는 않을 것이다. 비전문가 대중이 음악을 청취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장르에 따라 상이한 경향이 있지만, 다른 예술과 달리 대부분은 음악을 결과론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작곡가가 어떠한 고로를 통해 음악이라는 결과물을 창작했는가에 대한 인지의 부재. 그것은 그들의 생활을 관음하지 않고서야 작품에 투자한 시간과 자본의 경중을 쉬이 따져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스트로브-위예가 위 작품을 만들고자 했을 때 부딪혔던 가장 큰 곤경은 투자의 영역이었다. 당시의 필름 기술로는 온전히 10분 이상의 라이브를 동시 녹음을 통해 녹여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로브-위예는 바흐의 곡에 대한 애정과 동시 녹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훗날, 단 80개의 숏과 간결한 구성을 통해 바흐의 생을 톺아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영화 자체는 바흐의 생을 화자 안나 막달레나(외화면)의 목소리로 재현한 뒤 그의 곡이 연주되는 라이브 숏을 반복하는 단조롭다 못해 단촐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은 미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내는데, 마치 <Johannespassion>의 요한처럼 수난을 겪는 바흐와 달리, 뒤에 이어지는 라이브 숏은 무색할 만큼 완전한 형태로 현시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관람자는 앞서 언급한 음악 청취의 태도를 그대로 적용시키고, 작품에서 서술되는 바흐의 수난을 배제한 채 음악의 완결성만 중시하게 되고 만다. 스트로브-위예의 필름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영화를 단지 원전의 텍스트나 어떤 도시의 풍경을 훔쳐 그대로 복사한 것과 다름 없게 느끼는 이가 있지 않을까. 플루서가 말한 <음악 청취의 제스처>가 필요할 때이다. 스트로브-위예 필름의 작동 방식을 생각해보자. 스트로브-위예 대부분의 영화는 원전의 텍스트를 기준점으로 활용하여, 영화라는 개체를 통해 모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작곡에서 두 개 이상의 선율이 각각 음표 대 음표(punctus contra punctum)로써 모방하고 작동하여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러한 대위법적 모방의 한 기법인 “푸가”로 대표되는 작곡가가 바로 바흐이다. 이러한 점에서, 바흐-안나 막달레나의 관계와 스트로브-위예의 관계. 나아가 원전-영화, 풍경-카메라의 관계성까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푸가처럼 쫓고(fugare), 쫓기는(fugere) 것과 같은 그들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방/대조성이 자아내는 앙상블. 스트로브-위예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시네마적으로 포착했다. 훗날, 원전의 텍스트를 쫓는 영화와 풍경을 쫓는 카메라를 통해 본인들의 유물론적 관점을 시사할 수 있음은 물론, 본인들과 바흐-안나 막달레나처럼 동지적 결합이 얼마나 영화사에 커다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극 중 바흐는 “통주저음”에 대해 언급한다. 왼손의 멜로디를 쫓아 오른손의 화음 혹은 불협화음이 나타내는 조화는 신을 향한 찬미라고. 스트로브-위예는 본인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시네마적 푸가를 영화에 대한 찬미로 여기지 않았을까. 결국 오늘날, 스트로브-위예의 필모그래피가 완결되면서 <Chronik der Anna Magdalena Bach>는 <Chronik der Straub-Huillet>로 치환된다.
상맹
3.5
첨 접하는 위예와 스트라우브 감독님의 영화. 콘서트를 보는 건지 극 영화를 보는 건지 다큐멘터리로 고증하거나 재연하는 건지 그 사이에서 있다. 바흐의 얘기지만 그렇다고 바흐의 시점도 아니다. 잘 봤다 아니 잘 들었다가 맞겠다. 음악 자체가 이미지보다 몽타쥬에 우선이다. 오랜만에 클래식 들으니 생각 정리하고 멍도 때리고 좋네.
양준석
3.5
제발 슈만 일대기도 이렇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산호대
2.0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연주를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큰 장점이 없는 68년의 실험작. 영화가 왜 영화여야 하는지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게하는 영화.
로트링겐
5.0
페터 네슬러의 글: 다니엘과 장-마리를 위하여 2021 전문: https://lothringenseoul.com/peter-nestler-for-dani%C3%A9le-and-jean-marie - 우리는 어린 시절에 만났다. 1958년, 장-마리와 다니엘은 파리를 떠나 처음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다음에는 뮌헨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슈반탈러 거리의 중앙역 근처, 고층 건물 안 작은 방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있어 처음이자 가장 큰 영화 프로젝트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 연대기〉를 준비하기 위해 그들은 독일로 온 것이었다.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한 장-마리가 투옥을 피하려는 것도 부분적인 이유였다. (“알제리인은 내 친구들이다”라고 장-마리는 말했다.) 그의 고향인 메츠에서, 그는 일찍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활동, 알제리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 과정에서 프랑스 경찰은 그를 학대하기도 했었다. 1950년대 초, 장-마리는 스트라스부르, 낭시, 그리고 메츠에서 공부했는데, 그는 중요한 영화들로 구성된, 생기 넘치는 프로그램을 가진 필름 클럽을 설립하기도 했다. 1954년, 그는 프랑스 동부에서 파리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니엘을 만났다. 이후로 몇 년 동안, 그는 아벨 강스, 장 르누아르, 자크 리베트, 로베르 브레송 그리고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의 촬영 현장에서 일하며 견문을 쌓았다. 그러던 중 알제리 혁명이 시작되었다. 해당 시기, 그는 이미 그의 바흐 영화를 위한 촬영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만프레트 블랑크의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초상 영화, 〈시선의 끈기〉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마리: 저는 바흐에 대한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그게 1954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영화 창작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이 저를 놀랍게 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 있어 즉시 브레송을 떠올렸습니다. [...] 이 프로젝트를 통해, 브레송이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에서 이뤘던 것을 그가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말은, 그 영화에서는 문학 텍스트가 있다면 이 영화에는 음악 텍스트가 있다는 뜻입니다. 바쟁이 말했듯, 문학 텍스트를 ‘원료로서 있는 그대로의 미학적 질료(matiére esthétique brute)’로 여기고, 영화를 위해 촬영하거나 각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누군가가 음악적 조직을 가지고 동일한 것을 시도하거나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 겨우 있었던 제가 그것을 그에게 설명했고, 그는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습니다. 저 또한 많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약간 수줍어 했으며 저는 몹시 수줍어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가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며, 바로 당신입니다.” 그걸로 저는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저를 사로잡았던 또 다른 존재는 다니엘이었습니다. 우리는 1954년 리세 볼테르(Lycée Voltaire)라는 김나지움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브레송에게 완전히 사로잡혔을 때, 저는 그녀에게 저와 함께 각본을 쓰고 영화를 준비하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물론 제가 처음 보자마자 그녀에게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약 제가 홀로 남았다면 아마 영화를 한 편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너무 게을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아마도 실패했거나 포기했을 것입니다. 혹은… 장-마리와 다니엘이 독일에 왔을 때, 바흐 영화의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싸움은 수년간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서독과 동독에서 촬영이 가능한 장소와 바흐의 자필 악보를 물색했다. 그들은 이러한 장소뿐만 아니라, 바흐가 쓴 악보, 당대의 문서와 편지들에 대한 촬영 허가도 요청했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들은 오르간 연주자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를 만났다. 당시 그는 암스테르담과 빈의 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레온하르트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역으로 출연시키고 카메라 앞에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레온하르트는 처음에 다소 조심스러워하며 영화가 정확히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고 싶어했다. 장-마리와 다니엘은 설명했다. 결국에, 그는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형 프로젝트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 연대기〉를 위해 자료를 찾고 예산을 모으는 동안, ‘초조함 때문에’, 장-마리와 다니엘은 1962년에 그들의 첫 단편인 〈마쇼르카-머프〉를 만들었다. 1964/65년에는 하인리히 뵐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전보다 더 길어진 영화인 〈화해 불가 혹은 폭력만이 폭력이 지배하는 곳을 돕는다〉를 완성했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난 것은 그들이 〈화해 불가〉의 계획을 위해 뮌헨의 촬영 후보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은 이자르강 근처이자 영국식 정원 맞은편에 위치한 보겐하우젠 지역에 있던, 이전에 상류층이 살았던 대형 주택의 1층 응접실이었다. 나는 거기서 살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하녀가 지냈을 작은 방을 빌려 쓰고 있었다. 해당 주택은 친구들 소유였다. (그는 시인이었고, 그녀는 성악 지도자였다.) 친구들은 그들이 집을 살피는 동안 내가 그곳에 있어볼 것을 권했다. 나 또한 영화인이기 때문에, 이 프랑스 영화 감독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장-마리와 다니엘이 방문하여 이곳(방 가운데에 소파, 바로크 종교 조각상, 거대한 검은색 피아노가 있는 응접실)을 촬영지로 결정한 그날, 우리 셋은 소파에 앉아 다과를 즐기며 영화에 대해, 영화가 무엇일 수 있는지,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이 아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집중과 정밀, 카메라 앞에서 발견하거나 구성한 것들에 대한 존중과 신중이라는 의견에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동의했다. [...] - 일환 옮김
율은사랑
3.5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이 영화의 ‘청각적 매혹’에 대해 내가 감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바흐의 음악들을 현장 녹음으로 진행된 롱테이크 화면으로 담은 감독의 고집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바흐의 두 번째 부인, 안나의 관점으로 구성된 내레이션을 통해 바흐의 실제 삶과 그의 음악들을 임의적으로 연결지으면서 단순한 시청각 이상의 풍부한 감각이 가능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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