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3.0어둑한 그림자 가득히 모아놓은듯 암울하기만한 하늘과 그 집안과 그둘의 모습들. 시대를 반영한듯한 암울한 모습은 한순간에 부도가 나버린 회사와 빚쟁이들에게 짓밟히는 그 집을 배경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인물의 감정묘사에 많은 힘을 주는 모습이다. #20.7.3 (1666)いいね31コメント0
달밤에그림자를쫓다4.5가히 한국의 데이비드 린치라고 해도 아깝지 않은 영원한 젊은 반항아 하길종, 그의 야심작. 화분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 중 하나다.いいね5コメント0
박상민4.01. <화분>은 기와집을 향해 줌 인하는 숏으로 시작해서 줌 아웃하는 숏으로 끝난다. 이러한 카메라와 유사한 동선을 보이는 인물은 ‘단주’다. 이미 파란 집에 살고 있는 세란, 미란, 옥녀, 현마와 달리 단주는 현마를 따라 파란 집으로 들어오며 등장하고, 빚쟁이들이 휩쓸고 간 집을 나가며 퇴장한다. 단주는 평온했던 파란 집을 뒤흔들고 무너뜨리는 존재다. 기존 연구(ex. [하길종 영화의 섹슈얼리티와 공간정치학 -<화분>을 중심으로-](박명진, 2009))에서도 단주의 등장이 부르주아 계급의 안정성과 폐쇄성, 현마-단주/세란-미란의 동성애 관계를 위협한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단주의 존재와 푸른 집의 동성애, 계급적 특성만 논하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옥녀’다. 옥녀는 푸른 집의 하녀이나 미심쩍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우선 그녀의 첫 등장을 보자. 세란이 미란을 부르는 소리에 정작 미란은 답이 없고, 옥녀가 ‘부르셨나요?’라고 물으며 등장한다. 뒤이어 세란이 옥녀를 부를 때는 세란에게 답하지 않고 현마와 단주를 맞으러 나간다. 옥녀는 부름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인물이다. 옥녀의 시선은 다른 네 사람의 바깥에서 그 안을 계속 훔쳐보는 것만 같다. 미란이 목욕을 하는 동안 옥녀는 건물 바깥에서 어딘지 모를 곳을 몰래 들여다본다. 현마와 단주가 집에 돌아온 후에는 방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현마와 세란이 정사를 나누는 동안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며 쥐를 풀어 넣는다. 쥐를 풀어 넣는 옥녀의 존재는 해당 정사 장면과 다른 정사 장면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화분>에는 다섯 번의 섹슈얼리티가 강조되는 정사-유사 정사 장면이 등장한다. 사무실에서 단주와 대화하던 현마는 세란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단주의 아파트에서 현마는 단주의 마사지를 생각한다. 단주와 미란의 정사는 자동차를 타고 단주를 쫓는 현마의 시선과의 교차 편집 때문에 현마의 상상처럼 보인다. 현마가 떠난 후, 세란은 단주와 관계를 갖는 꿈을 꾼다. 이 네 개의 정사 장면의 공통점은 실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상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마와 세란의 정사 장면은 쥐를 집어넣는 옥녀의 존재로 인해(그리고 교차편집 없이 다른 신으로 이어지는 편집 때문에) 유일하게 상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옥녀가 하녀로서 제대로 하는 일은 방문자를 맞이하는 일이다. 현마와 단주가 집에 돌아왔을 때, 폭풍이 멎고 미란이 집에 돌아왔을 때, 현마가 해변에서 미란과 단주를 끌고 올 때, 이들을 맞이하며 대문을 여는 인물은, 이들이 집에 왔다는 사실은 집안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은 옥녀다. 심지어는 세란이 옥녀를 내쫓은 직후에 통제할 수 없는 빚쟁이들이 푸른 집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가? 요약하자면 옥녀는 부름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푸른 집의 구성원들을 훔쳐보고, 이들의 관계에 균열을 낸다. 대신 외부자들의 방문만은 충실하게 알린다. 단순히 하녀와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차이만이 아니라 푸른 집의 가족들 틈에서 옥녀라는 인물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 <화분>에는 금붕어가 두 번 등장한다. 푸른 집의 연못 속 떼로 죽은 금붕어들로 한 번, 현마가 단주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어항 속 금붕어 한 마리로 두 번. 특히나 후자의 경우, 현마에 앞서 미란이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죽은 금붕어 떼를 보며 미란은 무서움을 느끼고, 세란은 옥녀에게 이를 치우라고 한다. 현마는 단주의 아파트에 있는 금붕어를 어항에서 꺼내 죽이고는 어항을 던져버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몸짓) 금붕어를 죽이는 현마의 모습은 단주를 죽일 듯 패는 몸짓으로, 현마와 세란의 방에 쥐를 풀어놓는 옥녀의 모습은 단주를 풀어주는 옥녀의 몸짓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금붕어와 쥐의 알레고리는 무엇일까? 3. 단주의 아파트와 그가 갇힌 창고, 미란의 방과 욕실 등. <화분>에서 강조되는 건 폐쇄적인 공간의 이미지다. 그러나 반대로 유사한 외양의 개방적인 공간이 두 차례 등장한다. 공사가 한창인 한강과 미란-단주가 도피한 해변이다. 그러나 이 탁 트인 두 공간의 개방성은 각각 불도저와 현마의 자동차로 인해 종결된다. 불도저는 단주의 욕망을 드러낸다. 현마의 자동차는 단주가 처음 등장할 때의 숏 구성처럼, 그를 가로막고 억압한다. 노동 현장의 탈 것과 고속도로 위의 탈 것 간의 차이인가? 4. <화분>에는 두 차례 비가 내린다. 단주가 미란을 뒤쫓아 나갔을 때와 현마가 떠나며 가든파티가 끝났을 때다. 특히 전자의 경우, 단주와 미란이 푸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날이 밝으면서 거짓말 같이 개고, 미란은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첫 폭풍은 단주와 미란은 현마와 세란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서로 의심케 한다. 즉, 폭풍이 인물들의 관계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후반부의 폭풍은 어떤 식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현마가 떠나고, 파티가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퇴장하고 나면 비가 내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거짓말 같이 날이 갠다. 현마가 없는 집에서 세 여성은 각자의 이유로 단주를 찾고 점점 미쳐간다. 여기선 관계의 어떤 위상이 변한걸까?いいね4コメント0
바르다4.060~70년대이후 한국영화 감독라인이 있다 이른바 도제시스템 그 링 밖 아웃사이더 감독중 하나 하길종. UCLA유학시절이 아메리카 뉴웨이시네마 시기이니 얼마나 머리속에 보고 들은게 많았을까 싶다 위키를 읽다 서울대 재학시절 김승옥 김지하랑 몰려다니고 동생 하명중 와이프 전채린 처제 전혜린.. 미드나잇 인 서울 설정속으로 내가 가고 싶다 화분은 파졸리니감독의 오마주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재과가 가질법한 치기어린 실험정신 유신의 칼질에 교묘히 숨긴 비판의식 한국적 정서의 깊은 이해 순간 감탄이 나오는 미장센등 우리나라영화의 숨은 걸작이다 시대와 타협하기가 힘들어서 울분을 삭히지못한 예술가 죽음마저 영화같은 이상주의자 이제 다시 그의 영화들이 재조명되고있다いいね2コメント0
다솜땅
3.0
어둑한 그림자 가득히 모아놓은듯 암울하기만한 하늘과 그 집안과 그둘의 모습들. 시대를 반영한듯한 암울한 모습은 한순간에 부도가 나버린 회사와 빚쟁이들에게 짓밟히는 그 집을 배경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인물의 감정묘사에 많은 힘을 주는 모습이다. #20.7.3 (1666)
시나문
2.5
화분에 빠진 금붕어, 70년대에 동성애 코드와 실험적인 장면이 돋보인다.
달밤에그림자를쫓다
4.5
가히 한국의 데이비드 린치라고 해도 아깝지 않은 영원한 젊은 반항아 하길종, 그의 야심작. 화분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 중 하나다.
박상민
4.0
1. <화분>은 기와집을 향해 줌 인하는 숏으로 시작해서 줌 아웃하는 숏으로 끝난다. 이러한 카메라와 유사한 동선을 보이는 인물은 ‘단주’다. 이미 파란 집에 살고 있는 세란, 미란, 옥녀, 현마와 달리 단주는 현마를 따라 파란 집으로 들어오며 등장하고, 빚쟁이들이 휩쓸고 간 집을 나가며 퇴장한다. 단주는 평온했던 파란 집을 뒤흔들고 무너뜨리는 존재다. 기존 연구(ex. [하길종 영화의 섹슈얼리티와 공간정치학 -<화분>을 중심으로-](박명진, 2009))에서도 단주의 등장이 부르주아 계급의 안정성과 폐쇄성, 현마-단주/세란-미란의 동성애 관계를 위협한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단주의 존재와 푸른 집의 동성애, 계급적 특성만 논하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옥녀’다. 옥녀는 푸른 집의 하녀이나 미심쩍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우선 그녀의 첫 등장을 보자. 세란이 미란을 부르는 소리에 정작 미란은 답이 없고, 옥녀가 ‘부르셨나요?’라고 물으며 등장한다. 뒤이어 세란이 옥녀를 부를 때는 세란에게 답하지 않고 현마와 단주를 맞으러 나간다. 옥녀는 부름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인물이다. 옥녀의 시선은 다른 네 사람의 바깥에서 그 안을 계속 훔쳐보는 것만 같다. 미란이 목욕을 하는 동안 옥녀는 건물 바깥에서 어딘지 모를 곳을 몰래 들여다본다. 현마와 단주가 집에 돌아온 후에는 방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현마와 세란이 정사를 나누는 동안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며 쥐를 풀어 넣는다. 쥐를 풀어 넣는 옥녀의 존재는 해당 정사 장면과 다른 정사 장면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화분>에는 다섯 번의 섹슈얼리티가 강조되는 정사-유사 정사 장면이 등장한다. 사무실에서 단주와 대화하던 현마는 세란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단주의 아파트에서 현마는 단주의 마사지를 생각한다. 단주와 미란의 정사는 자동차를 타고 단주를 쫓는 현마의 시선과의 교차 편집 때문에 현마의 상상처럼 보인다. 현마가 떠난 후, 세란은 단주와 관계를 갖는 꿈을 꾼다. 이 네 개의 정사 장면의 공통점은 실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상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마와 세란의 정사 장면은 쥐를 집어넣는 옥녀의 존재로 인해(그리고 교차편집 없이 다른 신으로 이어지는 편집 때문에) 유일하게 상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옥녀가 하녀로서 제대로 하는 일은 방문자를 맞이하는 일이다. 현마와 단주가 집에 돌아왔을 때, 폭풍이 멎고 미란이 집에 돌아왔을 때, 현마가 해변에서 미란과 단주를 끌고 올 때, 이들을 맞이하며 대문을 여는 인물은, 이들이 집에 왔다는 사실은 집안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은 옥녀다. 심지어는 세란이 옥녀를 내쫓은 직후에 통제할 수 없는 빚쟁이들이 푸른 집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가? 요약하자면 옥녀는 부름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푸른 집의 구성원들을 훔쳐보고, 이들의 관계에 균열을 낸다. 대신 외부자들의 방문만은 충실하게 알린다. 단순히 하녀와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차이만이 아니라 푸른 집의 가족들 틈에서 옥녀라는 인물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 <화분>에는 금붕어가 두 번 등장한다. 푸른 집의 연못 속 떼로 죽은 금붕어들로 한 번, 현마가 단주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어항 속 금붕어 한 마리로 두 번. 특히나 후자의 경우, 현마에 앞서 미란이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죽은 금붕어 떼를 보며 미란은 무서움을 느끼고, 세란은 옥녀에게 이를 치우라고 한다. 현마는 단주의 아파트에 있는 금붕어를 어항에서 꺼내 죽이고는 어항을 던져버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몸짓) 금붕어를 죽이는 현마의 모습은 단주를 죽일 듯 패는 몸짓으로, 현마와 세란의 방에 쥐를 풀어놓는 옥녀의 모습은 단주를 풀어주는 옥녀의 몸짓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금붕어와 쥐의 알레고리는 무엇일까? 3. 단주의 아파트와 그가 갇힌 창고, 미란의 방과 욕실 등. <화분>에서 강조되는 건 폐쇄적인 공간의 이미지다. 그러나 반대로 유사한 외양의 개방적인 공간이 두 차례 등장한다. 공사가 한창인 한강과 미란-단주가 도피한 해변이다. 그러나 이 탁 트인 두 공간의 개방성은 각각 불도저와 현마의 자동차로 인해 종결된다. 불도저는 단주의 욕망을 드러낸다. 현마의 자동차는 단주가 처음 등장할 때의 숏 구성처럼, 그를 가로막고 억압한다. 노동 현장의 탈 것과 고속도로 위의 탈 것 간의 차이인가? 4. <화분>에는 두 차례 비가 내린다. 단주가 미란을 뒤쫓아 나갔을 때와 현마가 떠나며 가든파티가 끝났을 때다. 특히 전자의 경우, 단주와 미란이 푸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날이 밝으면서 거짓말 같이 개고, 미란은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첫 폭풍은 단주와 미란은 현마와 세란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서로 의심케 한다. 즉, 폭풍이 인물들의 관계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후반부의 폭풍은 어떤 식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현마가 떠나고, 파티가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퇴장하고 나면 비가 내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거짓말 같이 날이 갠다. 현마가 없는 집에서 세 여성은 각자의 이유로 단주를 찾고 점점 미쳐간다. 여기선 관계의 어떤 위상이 변한걸까?
바르다
4.0
60~70년대이후 한국영화 감독라인이 있다 이른바 도제시스템 그 링 밖 아웃사이더 감독중 하나 하길종. UCLA유학시절이 아메리카 뉴웨이시네마 시기이니 얼마나 머리속에 보고 들은게 많았을까 싶다 위키를 읽다 서울대 재학시절 김승옥 김지하랑 몰려다니고 동생 하명중 와이프 전채린 처제 전혜린.. 미드나잇 인 서울 설정속으로 내가 가고 싶다 화분은 파졸리니감독의 오마주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재과가 가질법한 치기어린 실험정신 유신의 칼질에 교묘히 숨긴 비판의식 한국적 정서의 깊은 이해 순간 감탄이 나오는 미장센등 우리나라영화의 숨은 걸작이다 시대와 타협하기가 힘들어서 울분을 삭히지못한 예술가 죽음마저 영화같은 이상주의자 이제 다시 그의 영화들이 재조명되고있다
앨런 쇼어
4.0
한국 영화의 어느 괴상한 시작점. 이 영화는 왜 외면을 받고 있을까.
화자
2.5
모든게 엉망이고 뒤죽박죽한 세계
이형주
3.5
ネタバレ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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