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4.0로라 멀비는 루마니아를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 . . ‘에세이 필름’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총체적인 사유, 실험적인 연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미지가 에세이 필름의 특징이라면,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2023)는 분명 하나의 에세이 필름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라두 주데 감독은 직접 자신의 신작이 ‘노동 착취’를 다룬다고 코멘트했다. 비록 표면적인 서사는 ‘초과 근무’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전작 <배드 럭 뱅잉>(2021)과 마찬가지로 163분의 영화가 겨냥하는 바는 결코 하나의 소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와 상스러운 욕설, 정치•종교계를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가 범람하는 루마니아의 시대상 전반을 다루는 국지적인 성찰에 가깝다. 영화가 고발하는 노동 착취 이슈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취급하는 것은 짧디짧은 생각이다. 한국 노동 환경의 참담한 실태를 다룬 뉴스를 콕 집어 언급한 감독의 코멘트처럼 말이다. <배드 럭 뱅잉>에 따르면 극장의 스크린은 ‘거울 방패’가 되어 세계를 비춘다. 예술(시네마)은 현실 세계의 단면을 잘라내어 전시하고 또 고발한다. 해당 작품이 황금곰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 데에는 예술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감독의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번 작품 또한 영화의 매체성을 강조하지만, 그보다 유튜브•틱톡•줌(zoom)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장면들도 눈에 띈다. 이제 영화인은 시네마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활용하는 이 ‘MZ 미디어’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찬찬히 살펴야 한다. . . . 안젤라는 다국적 기업이 제작하는 산업 안전 홍보 영상에 출연할 인물을 물색하느라 부쿠레슈티 시내를 누빈다. 로드무비 형식을 띠지만, 명확한 목적지는 없다. 그녀의 여정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연장되는 업무 시간에 고통받는 그녀의 모습은 초과 근무 시간에 산업 재해를 당한 인터뷰이들과 오버랩된다. 특히 최종 결과물인 안전 홍보 영상에서 사회 구조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동자들을 불구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초과 근무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안전모 착용을 강조하는 슬로건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안전 불감으로 돌려버린다. 명백히 불순한 의도에도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1장, <1981년도 영화와의 대화>. 이 장에서 영화는 안젤라와 과거 한 여성 택시 운전사의 하루를 교차한다. 흑백과 컬러 화면으로 포개지는 시간성은 두 인물의 공통된 행동에 주목한다. 안젤라의 라디오는 “그 황금기는 어디로 갔나?”며 향수를 느끼게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여성이 겪은 부조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후 두 여성(영화)이 실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며 택시 운전사의 이름 또한 안젤라로 밝혀진다. 택시가 우버로 바뀌었을 뿐, 신세는 물론 이름까지 같은 이들이다. . . . 택시 운전사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한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실험 중 하나이다. 세계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변형을 가하는 순간들은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실험을 연상케 한다. 멀비는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영화 역시 과거의 존재를 상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롤랑 바르트의 이론을 반박했다. 라두 주데 감독이 달리는 택시의 이미지를 변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영화의 진행을 인위적으로 지연하고 흐름을 방해하며 필름에 내재하는 정지의 시간성을 가시화한다. 만약 멀비의 주장처럼 카메라의 눈이 재현의 지시성을 얻는다면, 시네마는 세계의 재현에 일조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멀비가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정지의 순간을 가시화하는 그녀의 작업에 유용한 도구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라두 주데가 묘사한 현대의 디지털 기기는 세계를 서서히 ‘종말’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화상채팅 ‘줌’의 가상 배경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춰 교묘히 이미지를 조작한다. SNS의 필터는 피사체의 성별을 난잡하게 뒤흔든다. 또한 카메라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누구나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자, 조회수를 위한 이미지의 과잉과 왜곡이 판을 친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인간에게 쇄도하는 악의적 이미지를 막을 방법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짜 뉴스’ 문제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범람하는 쇼트폼 콘텐츠는 잠들고 싶은 인간의 눈을 포획하고 놓아주지 않는다. “포르노 배우가 상대 배우를 앞에 두고도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듯이”, 이제 이미지는 실제 세계보다 인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배드 럭 뱅잉>에서 시네마를 무기 삼아 세계와 맞서자고 주장했던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2장 <촬영 원본>에서는 카메라의 한계와 위험성이 강조된다. 현대의 모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감독의 입맛에 취약한 미디어로 변질되었다. 8K의 화질은 클로즈업을 통해 감성을 쥐어짜는 연출을 가능케 한다. 크로마키는 감독에게 노동자의 말풍선에 어떤 말이든 집어넣을 수 있는 권력을 쥐여줬다. 디지털 변형에 의존하는 이미지는 더 이상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만약 모든 디렉팅이 악의를 품을 수 있다면, 필름 역시 세계를 재현할 힘을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노동자와의 인터뷰 과정을 담은 2장의 ‘촬영 원본’은 최소한의 편집도 거치지 않은 영화의 원료이다. 하지만 가위질 없이도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사물은 철저히 회사 측의 입장을 반영한다. 이때 영화가 뤼미에르를 언급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카메라가 촬영한 모든 것에 불순한 의도가 섞였을 수 있다는 사실은 허탈함을 자아낸다. 우리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통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영화 리얼리즘’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영상에마저 감독의 디렉팅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이다. 이로써 세계를 비추는 거울 방패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하며 종말을 예고한다.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 / 기사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3いいね60コメント2
Jay Oh4.0종말 별 거 없죠? 사라진 '진짜'를 애도하는 지랄 한바탕. The end is already here, so let us laugh and get mad!いいね26コメント0
동구리4.0라두 주데는 상영 전 인사영상에서 이 영화가 '노동착취'를 다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주인공 안젤라는 하루 종일 일한다. 피곤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난 안젤라는 챕터A 내내 운전하며 곳곳을 돌아다닌다. 영상 프로덕션의 어시스턴트인 그의 업무는 새로 맡게 된 산업재해 예방 영상에 출연할 산재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흑백 16mm 필름 화면으로 촬영된 안젤라의 노동은 당장 클럽에 가도 어색하지 않을 그의 옷차림으로 상쇄되는 면이 있지만, 무수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다. 졸음운전을 할 것 같다는 안젤라의 말에 상사는 독한 커피나 레드불을 마시라고 할 뿐이다. 그 사이 안젤라는 아버지의 무덤과 관련된 법적 분쟁을 겪어야 하고, 10분이라도 애인을 만나야 하기도 한다.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그가 필터를 통해 '보비처'라는 이름의 남성이 되어 과장되고 폭력적인 언사를 쏟아붓는 틱톡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그런 영상을 찍고 있음을 알고 있기도 하다. 안젤라 스스로 "과장을 통핸 비판"이라 말하는, 보비처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벌어지는 발언들은 앤드류 테이트로 대표되는 대안우파부터 푸틴까지 무수한 현재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한편으로 영화는 1981년 제작된 루마니아 로맨스 영화 <Angela Moves On>의 장면들을 안젤라의 하루와 겹쳐 놓는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 이름 또한 안젤라라는 여성이며,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중 만난 헝가리인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1년의 루마니아와 2022년의 루마니아는 이 영화 속에서 뒤섞인다. EU 최빈국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외국 기업에 착취당하는 안젤라를 비롯한 2022년 루마니아의 사람들과 달리, <Angela Moves On>에 담긴 1981년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미묘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평온해보인다. 1989년의 혁명으로 차우셰스쿠가 축출되었지만 루마니아의 경제는 폭락했다. 영화 후반부, 1차선 고속도로에서 매년 수백명이 죽으며 사고가 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워둔다는 안젤라의 말 직후에 잠시 등장하는 무수한 십자가의 이미지는 지금의 루마니아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다. 물론 이 영화가 무겁고 진지한 영화는 아니다. 전작 <배드 럭 뱅잉>이 팬데믹 시기의 루마니아를 풍자했던 것처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또한 무수한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 풍자를 빼곡히 담아낸다. 흑백 필름 이미지부터 1981년도의 영화, 틱톡 필터가 입혀진 화면과 줌 화상회의 화면까지, 라두 주데는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루마니아의 현재를 산만하게 펼쳐낸다. 산만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속에 놓인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까지 정신없게 만드는 산만함은 '제정신으로' 지금을 살아내는 게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챕터B에 해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안젤라를 통해 섭외된 산재 피해자가 출연한 홍보영상의 촬영장이다. 30여 분의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영화가 앞선 2시간 가량 쌓아온 "과장을 통한 비판"의 모음집이다. 피해자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 라즐로 미스케(László Miske)는 <Angela Moves On>에서 안젤라를 연기했던 배우인데,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에서는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의 미래를 연기하는 것처럼 출연한다. 그것은 1981년 영화에 담긴 루마니아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관한, 광대 같은 연출자 라두 주데가 건네는 비극적인 농담이다.いいね14コメント0
형남임3.5필터를 끼고 방송하며 헛소리 지껄이는 주인공이 여러명의 헛소리 심포니로 익숙해지는 과정 각각 다른 촬영의 목적, 출연료보다 비싼 회식비용 노동에 대한 영상을 촬영하나, 스탭의 업무량은 신경쓰지않는 아이러니いいね12コメント0
김현승
4.0
로라 멀비는 루마니아를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 . . ‘에세이 필름’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시대와 장소에 관한 총체적인 사유, 실험적인 연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미지가 에세이 필름의 특징이라면,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2023)는 분명 하나의 에세이 필름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라두 주데 감독은 직접 자신의 신작이 ‘노동 착취’를 다룬다고 코멘트했다. 비록 표면적인 서사는 ‘초과 근무’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전작 <배드 럭 뱅잉>(2021)과 마찬가지로 163분의 영화가 겨냥하는 바는 결코 하나의 소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와 상스러운 욕설, 정치•종교계를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가 범람하는 루마니아의 시대상 전반을 다루는 국지적인 성찰에 가깝다. 영화가 고발하는 노동 착취 이슈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취급하는 것은 짧디짧은 생각이다. 한국 노동 환경의 참담한 실태를 다룬 뉴스를 콕 집어 언급한 감독의 코멘트처럼 말이다. <배드 럭 뱅잉>에 따르면 극장의 스크린은 ‘거울 방패’가 되어 세계를 비춘다. 예술(시네마)은 현실 세계의 단면을 잘라내어 전시하고 또 고발한다. 해당 작품이 황금곰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 데에는 예술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감독의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번 작품 또한 영화의 매체성을 강조하지만, 그보다 유튜브•틱톡•줌(zoom)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장면들도 눈에 띈다. 이제 영화인은 시네마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활용하는 이 ‘MZ 미디어’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찬찬히 살펴야 한다. . . . 안젤라는 다국적 기업이 제작하는 산업 안전 홍보 영상에 출연할 인물을 물색하느라 부쿠레슈티 시내를 누빈다. 로드무비 형식을 띠지만, 명확한 목적지는 없다. 그녀의 여정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연장되는 업무 시간에 고통받는 그녀의 모습은 초과 근무 시간에 산업 재해를 당한 인터뷰이들과 오버랩된다. 특히 최종 결과물인 안전 홍보 영상에서 사회 구조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동자들을 불구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초과 근무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안전모 착용을 강조하는 슬로건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안전 불감으로 돌려버린다. 명백히 불순한 의도에도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1장, <1981년도 영화와의 대화>. 이 장에서 영화는 안젤라와 과거 한 여성 택시 운전사의 하루를 교차한다. 흑백과 컬러 화면으로 포개지는 시간성은 두 인물의 공통된 행동에 주목한다. 안젤라의 라디오는 “그 황금기는 어디로 갔나?”며 향수를 느끼게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여성이 겪은 부조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후 두 여성(영화)이 실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며 택시 운전사의 이름 또한 안젤라로 밝혀진다. 택시가 우버로 바뀌었을 뿐, 신세는 물론 이름까지 같은 이들이다. . . . 택시 운전사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한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실험 중 하나이다. 세계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변형을 가하는 순간들은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실험을 연상케 한다. 멀비는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영화 역시 과거의 존재를 상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롤랑 바르트의 이론을 반박했다. 라두 주데 감독이 달리는 택시의 이미지를 변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영화의 진행을 인위적으로 지연하고 흐름을 방해하며 필름에 내재하는 정지의 시간성을 가시화한다. 만약 멀비의 주장처럼 카메라의 눈이 재현의 지시성을 얻는다면, 시네마는 세계의 재현에 일조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멀비가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정지의 순간을 가시화하는 그녀의 작업에 유용한 도구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라두 주데가 묘사한 현대의 디지털 기기는 세계를 서서히 ‘종말’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화상채팅 ‘줌’의 가상 배경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춰 교묘히 이미지를 조작한다. SNS의 필터는 피사체의 성별을 난잡하게 뒤흔든다. 또한 카메라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누구나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자, 조회수를 위한 이미지의 과잉과 왜곡이 판을 친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인간에게 쇄도하는 악의적 이미지를 막을 방법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짜 뉴스’ 문제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범람하는 쇼트폼 콘텐츠는 잠들고 싶은 인간의 눈을 포획하고 놓아주지 않는다. “포르노 배우가 상대 배우를 앞에 두고도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듯이”, 이제 이미지는 실제 세계보다 인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배드 럭 뱅잉>에서 시네마를 무기 삼아 세계와 맞서자고 주장했던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2장 <촬영 원본>에서는 카메라의 한계와 위험성이 강조된다. 현대의 모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감독의 입맛에 취약한 미디어로 변질되었다. 8K의 화질은 클로즈업을 통해 감성을 쥐어짜는 연출을 가능케 한다. 크로마키는 감독에게 노동자의 말풍선에 어떤 말이든 집어넣을 수 있는 권력을 쥐여줬다. 디지털 변형에 의존하는 이미지는 더 이상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만약 모든 디렉팅이 악의를 품을 수 있다면, 필름 역시 세계를 재현할 힘을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노동자와의 인터뷰 과정을 담은 2장의 ‘촬영 원본’은 최소한의 편집도 거치지 않은 영화의 원료이다. 하지만 가위질 없이도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사물은 철저히 회사 측의 입장을 반영한다. 이때 영화가 뤼미에르를 언급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카메라가 촬영한 모든 것에 불순한 의도가 섞였을 수 있다는 사실은 허탈함을 자아낸다. 우리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통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영화 리얼리즘’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영상에마저 감독의 디렉팅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이다. 이로써 세계를 비추는 거울 방패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하며 종말을 예고한다.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 / 기사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3
조조무비
2.5
#🚕 틱톡이 시네마를 이겨버린 세상에서 종말을 외치다.
Jay Oh
4.0
종말 별 거 없죠? 사라진 '진짜'를 애도하는 지랄 한바탕. The end is already here, so let us laugh and get mad!
김솔한
3.0
현시대에 필요한 사회의식, 찍는 행위에 대한 조금은 지겨운 고찰.
동구리
4.0
라두 주데는 상영 전 인사영상에서 이 영화가 '노동착취'를 다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주인공 안젤라는 하루 종일 일한다. 피곤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난 안젤라는 챕터A 내내 운전하며 곳곳을 돌아다닌다. 영상 프로덕션의 어시스턴트인 그의 업무는 새로 맡게 된 산업재해 예방 영상에 출연할 산재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흑백 16mm 필름 화면으로 촬영된 안젤라의 노동은 당장 클럽에 가도 어색하지 않을 그의 옷차림으로 상쇄되는 면이 있지만, 무수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다. 졸음운전을 할 것 같다는 안젤라의 말에 상사는 독한 커피나 레드불을 마시라고 할 뿐이다. 그 사이 안젤라는 아버지의 무덤과 관련된 법적 분쟁을 겪어야 하고, 10분이라도 애인을 만나야 하기도 한다.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그가 필터를 통해 '보비처'라는 이름의 남성이 되어 과장되고 폭력적인 언사를 쏟아붓는 틱톡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그런 영상을 찍고 있음을 알고 있기도 하다. 안젤라 스스로 "과장을 통핸 비판"이라 말하는, 보비처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벌어지는 발언들은 앤드류 테이트로 대표되는 대안우파부터 푸틴까지 무수한 현재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한편으로 영화는 1981년 제작된 루마니아 로맨스 영화 <Angela Moves On>의 장면들을 안젤라의 하루와 겹쳐 놓는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 이름 또한 안젤라라는 여성이며,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중 만난 헝가리인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1년의 루마니아와 2022년의 루마니아는 이 영화 속에서 뒤섞인다. EU 최빈국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외국 기업에 착취당하는 안젤라를 비롯한 2022년 루마니아의 사람들과 달리, <Angela Moves On>에 담긴 1981년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미묘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평온해보인다. 1989년의 혁명으로 차우셰스쿠가 축출되었지만 루마니아의 경제는 폭락했다. 영화 후반부, 1차선 고속도로에서 매년 수백명이 죽으며 사고가 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워둔다는 안젤라의 말 직후에 잠시 등장하는 무수한 십자가의 이미지는 지금의 루마니아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다. 물론 이 영화가 무겁고 진지한 영화는 아니다. 전작 <배드 럭 뱅잉>이 팬데믹 시기의 루마니아를 풍자했던 것처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또한 무수한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 풍자를 빼곡히 담아낸다. 흑백 필름 이미지부터 1981년도의 영화, 틱톡 필터가 입혀진 화면과 줌 화상회의 화면까지, 라두 주데는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루마니아의 현재를 산만하게 펼쳐낸다. 산만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속에 놓인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까지 정신없게 만드는 산만함은 '제정신으로' 지금을 살아내는 게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챕터B에 해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안젤라를 통해 섭외된 산재 피해자가 출연한 홍보영상의 촬영장이다. 30여 분의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영화가 앞선 2시간 가량 쌓아온 "과장을 통한 비판"의 모음집이다. 피해자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 라즐로 미스케(László Miske)는 <Angela Moves On>에서 안젤라를 연기했던 배우인데,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에서는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의 미래를 연기하는 것처럼 출연한다. 그것은 1981년 영화에 담긴 루마니아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관한, 광대 같은 연출자 라두 주데가 건네는 비극적인 농담이다.
김노엘
4.5
흘러가게 내버려둔 결과가 이거다. 너네가 망쳐놓은 지구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임중경
4.0
모든 이미지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이제 무엇이 보이는가?
형남임
3.5
필터를 끼고 방송하며 헛소리 지껄이는 주인공이 여러명의 헛소리 심포니로 익숙해지는 과정 각각 다른 촬영의 목적, 출연료보다 비싼 회식비용 노동에 대한 영상을 촬영하나, 스탭의 업무량은 신경쓰지않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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