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ム・オブ・ザ・ウルフ
The Time Of The Wolf
2003 · ドラマ · ドイツ, フランス, オーストリア
113分 ·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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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隠された記憶』の奇才、ミヒャエル・ハネケ監督が手掛けた初期作品集のシリーズ第6弾。危機的な災害が起き、ヨーロッパ中が水と食料不足に陥る。ジョルジュとアンナ夫婦は、わずかな貯えを持ち、子供を守るために田舎の別荘へと向かうのだ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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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Oh
3.0
죽어가는 것들 사이에 살아있다는 것. 이 무슨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며 오늘도 기차를 기다립니다. Living among the dying, like everyone else.
별,
4.0
느닷없이 가해지는 폭력의 상황을 불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미카엘 하네케'의 특징이지만, <늑대의 시간>은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인과의 과정을 외면해버린다. 이쯤 되면 남는 것은 상황의 결과와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캐릭터들의 반응 뿐인데, 뜻밖에도 감독의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극히 차가운 현실에서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캐릭터들 속에 인간성을 보존하는 인물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낯설다. - 생존만이 유일한 미덕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황 속에서도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이러니한데, 결국 자기 희생으로 구원을 이끌어내겠다는 소년의 모습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성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려야 되는 비 - 물 - 만이 인류의 구원을 향한 길임을 생각해볼 때 자기 희생으로의 불의 이미지는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다. 이만하면 됐다는, 할만큼 했으니 그만하라는 소년을 붙잡는 남자의 말은 차라리 헛된 구원의 희생을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쓰라린 좌절을 준다. - 약간 낮은 시점에서 - 마치 좌석에 앉은 소년의 시선으로 - 달리는 기차의 창과 밖을 응시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과연 그렇게도 기다리던 구원을 향한 기차는 당도하였는가. 그렇게 어디론가 간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인가. 감독은 우리에게 그 어떤 답도 주지 않으나, 그 답을 향한 침묵이야말로 감독이 우리가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희망을 말하는 듯한 <늑대의 시간>은 결국 우리가 지금의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도 없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음을 무기력하게 보여주는 극단적인 허무의 메세지로 여겨진다.
개구리개
2.5
기발한 폭력이 없다면 한없이 지루해지는 하네케
임중경
4.0
누군가의 희생으로 연명하는 인간 사회의 굴레에서. 미카엘 하네케는 장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높아 그것을 거부하는 듯 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처럼 보이는 <늑대의 시간> 역시 다른 하네케의 영화들처럼 뚜렷한 서사를 따라가기 보다는 사건의 발생과 인물의 반응을 쫓아야 할 뿐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누군가의 희생-남은 사람들의 생존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버지가 죽어 나머지 가족이 살고, 집을 태우자 아들을 찾고, 말을 죽이자 비가 내리고, 염소를 죽여 위험한 상황에서 숨는 등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희생-생존이라는 규칙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불 속에 뛰어들어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미신을 극중 인물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 어린 아이인 베니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은 그 희생의 당위에 설득되지 않았는지. 결국 나를 희생의 방관자에 위치하게 한 후, 그 희생을 저지하고 어딘가로 떠나는 기차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
청소년관람불가
2.0
아포칼립스 상황 말곤 잘 모르겠다
샌드
3.5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실 것입니까.
양태현
4.5
하네케의 세계는 원인이 부재한 세계이다. <퍼니 게임>에서 자택을 침입한 두 악당이 게오르그 가족을 그토록 끔찍하게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히든>에서 익명의 범인이 협박성 도촬 비디오를 조르쥬에게 지속적으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늑대의 시간>은 이러한 세계의 정점이다. 극 중 등장인물에게 닥치는 상황, 벌어시는 사건, 심지어 등장인물의 행동마저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원인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오직 결과만을 담는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쇼트는 맥거핀이다. 이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물의 시선으로 본다면, 하네케는 영화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감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 원인의 부재는 이유 없는 기적으로 탈바꿈한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려고 하는 아이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구해야 하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 논리에서 비롯된 자그마한 기적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하네케는 믿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황량한 풍경에서 정지해 있던 열차는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전진한다.
Ilk
3.0
이유없는 고통에 설명없이 겪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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