イディオッツ
The Idiots
1998 · ドラマ · デンマーク
117分 · R18

人々の偽善を、自ら知的障害者のふりをするというやり方で暴こうとするストファー(イェンス・アルビヌス)を中心としたグループ、イディオッツ。カレン(ボディル・ヨアンセン)は立ち寄ったレストランで、口からよだれを垂らし突然泣き叫ぶ彼らに偶然出会う。それが演技だと分かり最初は怒りをあらわにするカレンだったが、次第に彼らに惹かれ、ストファーの叔父の持ち物である一軒家で共同生活を送るグループと行動を共にす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そして、やがてカレンも、知的障害者の演技を始めるよう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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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5.0
ネタバレがあります!!
시나브로
4.5
결국 백치는 '척'이었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있었기에 백치들은 즐거웠었다. 세상에 시비를 거는듯 보였던 백치들은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현실에 얽매여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 -------(스포)-------- . 백치는 안티테제다. 백치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페르소나이며 고로 우리가 힘껏 뒤집어써야하는 가면이다. 적어도 스토퍼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백치들의 가면은 그들을 구원할만큼 충분히 견고한가? . 백치들의 공동체는 다른 이들의 백치를 긍정하지 못하면서부터 천천히 금가기 시작한다. 진짜 지체장애인들과 마주한 스토퍼가 그들에 대한 경멸을 내비쳤던 것이 그 첫 징조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골리기 위해 합심하여 백치흉내를 내던 그들이었으나, 모순적이게도 이들은 자신이 대면하게 되는 백치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 못하다. . 백치들이 악셀의 회사에서 펼친 소동도 이러한 모순을 잘 대변해주는 또다른 예다. 이때 자신의 직장이 도마 위에 놓이게 되자, 악셀은 더이상 백치놀이를 여유롭게 웃어넘기지 못한다. 이것은 비단 악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백치들은 다른 멤버들이 백치 흉내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가는 행동들을 할때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스토퍼가 시청직원에게 광기어린 행동을 보일 때에는 그를 진짜 미친 걸로 여기고 사지를 묶을 정도로 그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친다. . 백치들의 모순적인 면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예프가 문신을 한 남자들 앞에서 백치흉내를 냈을 때를 떠올려보자. 동료들이 그를 내버려두고 떠나자 예프는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백치흉내를 내야만 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일에 도움을 받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굴욕감에 스스로 연기를 무너뜨리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스토퍼의 말대로라면 예프는 '자신 내면의 백치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 이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이다. 공동체가 와해되기 직전 스토퍼가 멤버들에게 차례차례 현실로 돌아가서 백치짓을 할 것을 강권하지만, 지목된 악셀과 헨릭은 모두 그러지 못한다. 잃을 것이 없었던 유희로서의 백치놀이는 즐거웠지만, 자신의 하나뿐인 현실을 담보로 백치흉내를 내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백치들은 타인의 백치를 긍정하지도 못할뿐더러, 자기 자신의 백치조차 긍정하지 못했다. . 공동체를 묶어주던 백치의 위선이 폭로되자마자, 백치들의 공동체는 순식간에 와해된다. 생각해보면 스토퍼의 말마따나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백치놀이를 택했던 그들이었지만, 몇몇 주민들에게 겁을 준 것 이외에는 그들이 일궈낸 것은 거의 전무했다. 조세핀을 다시 현실로 끌고가려했던 아버지의 손길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의 거짓되고 얕은 백치놀이는 현실에 대한 아무런 저항력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 하지만 캐런의 경우는 어떠한가? 캐런이 다른 백치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의 현실을 걸고도 백치놀이에 성공했던 멤버라는 점이다. 그녀는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현실에 대해서 아무런 애착도 갖지않고 오직 절망만을 느꼈기에 이토록 미련없이 백치라는 순수의 영역으로 발을 뗄 수 있었다. 스토퍼가 내세운 위선적이고 모순투성이인 백치 철학이 그녀에게는 진정으로 구원이었던 것이다. . 그렇다면 캐런의 백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에 성공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 한가운데에서 짧게 펼쳐보였던 백치놀이는 남편의 분노를 사는 데에 그치고만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앗아간 숨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백치가 되기로 하였지만, 현실은 그런 그녀의 일탈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신경한 현실은 그녀의 백치가 깊은 슬픔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 우리가 현실의 무게를 버겁게 느끼고 탈출하는 꿈을 꿀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우리는 그저 일시적인 유희와 해방감을 노리는 기회주의적인 스토퍼네 무리에 가까울까, 아니면 정말 모든 걸 내버릴 각오로 필사적인 캐런에 가까울까? 어쩌면 우리가 꾸었던 탈출에 대한 모든 공상들은,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던 이들에겐 그들의 성역에 흙발을 들이미는 행위나 다름없지 않았을까. .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이는 별로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태어난만큼,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꿈꾸었던 백치들은 현실에서 도망가지도, 현실에 이기지도 못할 것이다. 마치 캐런의 진심어린 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처럼.
박서하
4.0
가짜의 힘!
볶음너구리
5.0
라스 폰 트리에는 전통적인 영화 문법의 파괴를 통해, 영화의 주제와 형식을 일치시켰다. 인위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현실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도그마 서약은, 규범을 거부하고 본능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 ‘백치들’은 영화의 형식과 주제가 완벽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ㅇㅈㅇ
3.5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Cinephile
4.5
생존을 포기한 게 아니라면 현실과의 아무런 타협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데, 그 타협이 안 되는 자는 그런 자신을 더는 혐오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병증으로 도피한다. 겉보기엔 똑같이 도피해도 그 간절함은 달랐던 우울의 심층이 아득하다.
스테디
4.0
빛으로 어둠을 촉매하는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별,
4.0
극단적인 퇴행으로서의 위악적인 행위가 그저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도피라는 위선으로 여겨질때 비로소 드러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지우고 싶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는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그것은 단순한 이해의 개념을 넘어 그 행동 자체로서의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타인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는 행위에 대한 하나의 굳건한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행복하다고 이야기되는 것들의 핵심이 이해가 아닌 함께 있음에 방점이 찍힌다는 사실은 타인의 고통을 향한 태도가 무엇이어야 되는지 각인시킨다. . 한편으로는 도그마 95 선언 이후의 두번째 작품인 <백치들>은 라스 폰 트리에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영화적인 퇴행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위적인 극적 효과를 거부하여 프레임 속의 진실만을 담겠다는 의지가 마치 진정한 영화를 향한 그들의 패기 어린 용기라면 결국 실패로 끝난 선언의 결말은 그럼에도 영화에서처럼 함께 있었음으로, 연대했었음으로 그 의미를 뜻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의 위악적으로도 보이는 이후의 퍼포먼스와 암울한 세계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보는 이의 판단에 달렸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우울하고 고통 받는) 내면과 영화적인 모든 태도를 일체화시킨다는 점만큼은 그 무엇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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