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아이디어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상상 가능한 세계를 확장해낼 수 있다는 점이죠.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인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Two People Exchanging Saliva)는 파격적인 세계관과 설정을 바탕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30분 남짓의 러닝타임 안에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줄리안 무어와 이자벨 위페르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성스러운 거미〉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루아나 바쟈미가 주연을, 비키 크립스가 나레이션을 맡았습니다 💎
© The New Yorker
‘키스’가 금지된 세상?
한 고급 백화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의 세계관은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물건값을 돈 대신 ‘뺨 맞기’로 지불한다는 설정이죠. 비싼 물건을 구매할수록 뺨을 맞아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데요. 얼굴에 든 멍은 상류층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일부러 얼굴에 멍을 그려 넣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 The New Yorker
여기에 ‘키스 금지’라는 설정이 더해집니다. 폭력이 당연시되는 세계에서 친밀함이란 동물적이고 기괴한 것으로 규정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키스’란 사형에 처하는 범죄인데요.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처럼 ’두 사람이 타액(saliva)을 교환하는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출근하는 길에는 구취 검사를 받고, 칫솔과 치약을 소지하는 건 중대한 범죄 행위죠.

© The New Yorker
백화점의 한 고급 의류 매장, 점원으로 첫 출근한 ‘말레즈’(루아나 바쟈미)는 매장에서 아름다운 VIP 손님 ‘앙진’(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을 마주치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에서는 깨끗한 치아조차 가질 수 없는, 악취 풍기는 사회에서도 서로에게 이끌리고 질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숨을 곳 없는 흑백 화면 위에 고스란히 펼쳐놓습니다.
영화의 출발점과 세계관의 구축
© The New Yorker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는 비주얼 아티스트인 나탈리 무스테아타와 알렉상드르 싱이 공동 연출한 작품인데요. 두 사람은 2019년부터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하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개발해 나갔습니다. 제작사로부터 프랑스의 라파예트 백화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구상해달라는 제안을 받아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하는데요. 알렉상드르 싱이 물건값을 따귀로 지불하는 것이 어떻냐는 아이디어를 던졌고, 구상 당시 이란에서 시민들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을 본 나탈리 무스테아타는 키스가 금지된 세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 The New Yorker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은 ‘단편영화’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알렉상드르 싱 감독은 제작 과정을 회고하며 30분에서 1시간 사이라는 러닝타임이 꽤 애매한 카테고리에 해당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농담하듯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독창적인 세계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The New Yorker
두 감독은 시작과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길 바랐다고 해요. 하지만 그들이 구축한 세상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들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서서히 드러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초기 편집본은 52분으로 꽤 길게 뽑혔지만, 편집을 통해 줄이는 과정을 거쳐 최종본에서는 36분의 러닝타임으로 만들어냈어요.
정교한 제작 과정
프랑스 파리의 라파예트 백화점은 2021년부터 영화 촬영을 위한 내부 대관을 허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8시에 영업이 종료되면 마지막 손님이 퇴장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장비를 들고 들어가 새벽 동안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5박 6일간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매일 아침 6시, 백화점 영업을 위해 다시 장소를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단 1초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감독은 ‘폴리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환경을 3D 스캔한 뒤, 모든 장면을 블렌더로 구성해 본 뒤 인물의 블로킹까지 계산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 결과, 백화점에서 5박 30시간 동안 촬영할 수 있는 분량으로 샷 리스트를 만들어 컴팩트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 The New Yorker
라파예트 백화점이라는 특수한 로케이션은 영화의 설정과 비주얼적인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감독은 영화 전체가 흑백으로 연출된 것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밝혔는데요.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는 ‘친밀함’이 부재한 세상이기 때문에 색을 빼앗는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고, 화려한 백화점이 배경이지만 두 주인공의 감정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색을 배제하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해요. 흑백 화면은 마치 엑스레이 같아서 배치와 형태에 있어 ‘순수함’의 상태에 가장 가깝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비주얼 아티스트 출신인 두 감독은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 룩을 구상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블랙과 화이트라는 색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해요. 최종적으로 라파예트 백화점이 실제로 영업 중인 장소였기 때문에 새벽 동안 내부의 모든 미술을 완전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흑백 연출이 현실적인 진행에도 도움이 된 겁니다.
© The New Yorker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는 흑백으로 연출됐음에도 화면 속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의미와 상징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두 감독은 시나리오 구상 단계에서부터 디스토피아를 표현하는 디자인 문법을 다져나갔고, 백화점에 배치되는 향수나 배경에 붙을 포스터까지도 세심하게 살폈어요. 모든 것이 이분법에 기반한 세상이기 때문에 ‘더럽고 냄새나는 것’,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구분 속에서 모든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마늘 향 껌이나 가솔린 향이 나는 향수 등, 재미있는 디테일들을 추가하며 만들어나갔다고 해요.
두 감독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인용하며 ‘영화란 세상과 감정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는데요. 어쩌면 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고 극대화해 경고하는 영화,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는 ‘더 뉴요커’(The New Yorker) 공식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영화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의 예상별점을 확인해 보세요!
Copyright © 왓챠피디아, 무단 전재-재배포 및 AI 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