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살짝 포함
소영과 베이비 박스, 즉 자신이 원치 않았던 결과들 때문에 자신의 곁보다 안전한 교회에 아이를 떠넘긴 상황이다.
영화 속 소영은 '모성'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소영의 감정과 정보는 철저히 감춰진다.
그런데 소영은 왜 박스가 아닌 바닥에 아이를 뒀을까. 그리고 왜 아이를 다시 보러 가야 했을까.
우성(아기)을 데려간 상현 & 동수는 경제적인 문제로 베이비박스에 접근해 왔다.
자신들의 일을 큐피트에 빗대어 정당화하는 상현이 현실과 가식이라면, 편지를 읽고 3%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수는 이상과 그리움이었겠지 싶다.
베이비 박스 속 아이를 탐내는 이들을 오래도록 추적하는 수진과 이형사가 있다. (그러고보니 모두 짝꿍을 맺고 있구나.)
이동진 평론가가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영향력을 가진 송강호 배우를 영화의 뿌리로 비유한 부분은 적잖이 동감했다. 더불어 수진 역의 배두나 배우 역시 <브로커> 속 또 다른 뿌리라고 덧붙여보고 싶다. 이 둘의 행적은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수진은 형사로서 눈 앞에서 아이가 유기되는 과정을 지켜보지만, 버려진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베이비 박스로 옮겨준다. 상현은 개인 문제로 인신매매범의 삶을 병행하지만, 아이를 함부로 다루거나 방치해두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아이와 접촉하기를 꺼리지 않는 적극적인 상현과 아이가 버려지는 장소 근처에 숨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소극적인 수진은 서로 목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늘 아이를 좇는다. 6개월 동안 현행범을 붙잡기 위해 수진이 비인간적인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선하다는 믿음과 긍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상현은 범죄(경찰)와 빚(조폭)으로부터 쫓기는 입장이라면, 수진은 '여성'과 '부모'로서의 책임과 분노로부터 은근한 압박을 느끼는 입장일 것이다.
수진은 소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지만, 그건 단지 '모성' 없는 소영의 모습을 비난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성을 베이비 박스에 올려두고, 거래 현장을 급습해 범인을 체포하고 아이를 구하는 것, 상현 팀이 와해되면서 갈 곳 잃은 우성을 자신이 (잠시) 맡는 것은 '모성'일까.
우리가 베이비 박스라는 존재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은, 베이비 박스가 '아이를 위한 것'이기 보다 '부모 될 자격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그 심리를 밑받침 삼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판단력과 선택할 능력이 온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놓은 한 생명을 버릴 '좋은' 구실에 치를 떠는 것이다. 아이를 버리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베이비 박스를 바라본다면, 베이비 박스에 깃드는 것은 사랑과 보살핌이 아니라 수진이 느낀 증오와 원망일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이가 버려지기까지의 과정과 이유를 상세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보육원, 혹은 맨 땅에 유기해버리는 사람의 진위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 소영과 동수는 각각 버린 입장과 버려진 입장으로 대립하지만, 베이비 박스 존재에 대한 의문에는 합치한다. 베이비 박스는 의견이 갈린 양측 모두에게 '좋은' 구실로써 작용하게 된다. 원인은 베이비 박스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렇다. 나는 이 조치가 여성 청소년과 경제 형편이 처참한 여성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착한' 마음에서 실행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피해자를 무책임과 방조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착한 아이디어들이 서면 위에 가득했을 것이다. 정작 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아이를 갖게 된 배경과 원인은 텅텅 빈 채로, 무지로만 가득한 서면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모성'은 무지를 뒤엎을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님을 베이비 박스를 두고 소영, 상현, 수진, 동수가 각자 던진 말마디에서 은은하게 드러난다.
나는 양육으로부터 부여되는 사회적 책임이나, 출산으로부터 규정되는 삶 그리고 무지가 두렵다.
소영이 양부모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 동행하고 처음 만난 부부와의 '거래 장면'은 불쾌했다. 고레에다 감독 영화에서 장난스러운 분위기로만 묘사된 장면을 본 건 조금 놀랄 만 했다. 비혼이 늘고 저출생 현상에 직면한 사회적 현실에서 여성들의 욕구나 여성들의 삶의 변화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감독만의 살짝 엉성한 다큐멘터리 식 구성과 마음을 꿰뚫는 대사, 은유에 매료되어 있던 관객 입장에서 이번 영화는 언어(대사) 전달로부터 비롯된 듯한 단조로움이 짙어서 아쉬웠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를 직설적으로 전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탄생한 목적과 의도를 밝히는데 꼭 필요했던 장면일 수도, 감독이 보육원 출신들과 만난 현실을 가감없이 반영하고파 했던 욕구일 수도 있겠다.
(+이동진 평론가의 부둣가 거래 장면은 실망스러웠다는 코멘터리에 공감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