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어 좌파의 역사

부자가 가난한 자를 진정 위할 수 있을까 ? 욕먹지 않기 위해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위선이 아닐까 ? 그런 자들이 설령 있다고 해도 뭐 대단한 역할을 하기나 했을까 ? 이런 의문에서 이 책의 저자는 출발한다.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 그리고 미국에서는 피프스 애브뉘 리버럴(5th Avenue Liberal) 이라 불리우는 부르주아 좌파(한국에서는 '강남좌파'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해 왔다. 이들 '가난한 자들을 돕는 부자들'은 재산상으로는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지만 지향점은 '사회적 진보' 이기에 부르주아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고 정통좌파에게는 '민중의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 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역사의 극적인 상황에서 좌파 진영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이유로 우파건 진정한 좌파이건 캐비어 좌파를 비난하지만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사회운동은 가장 부유하면서 가장 계몽적인 부르주아들의 열렬한 지원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좌파 정당의 지도자들은 상층 부르주아와 하층 부르주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우 부르주아 또는 엘리트 출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이 편집장으로 몸담고 있는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 가 캐비어 좌파의 본산이라고 밝히는 저자 로랑 조프랭은 고대 로마시대의 그라쿠스 형제로부터 시작해 볼테르,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라파예트, 케인스, 루즈벨트, 케네디 등 역사상 유명한 캐비어 좌파들을 두루 거치면서 그들의 행태 그리고 공과 과를 살펴봄으로써 정통 마르크스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변종 계층에 대한 의문점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저자는 또한 현대 사회에 이르러 언론인, 광고인, 문화/예술계 종사자 그리고 기업인들 가운데서도 어렵지 않게 캐비어 좌파를 발견할 수 있음을 밝히고 다양한 직군에 속하는 이들이 어떻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사회적 진보' 라는 대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지 분석하고 있다. 좌파 진영에 속한 대표적인 캐비어 좌파 언론인이 예리한 시각으로 캐비어 좌파 현상과 그 역사를 살펴보는 이 책은 캐비어 좌파의 역사를 조명하고 새로운 캐비어 좌파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좌파의 탄생, 좌파의 분화 그리고 급진좌파와 온건좌파의 대결 등 좌파의 역사를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통해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