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

김가람 · エッセイ/社会科学
224p

著者/訳者

目次

프롤로그_ 아이가 있어 이토록 좋은 세상 1. 광산 1) 빨간 눈의 아이들 2) 주 84시간, 시급 120원 3) 구덩이로의 진급 4) 스마트폰을 충전하다 깔려 죽었습니다 2. 마을 1) 우주에서 태어난 아기 2) 감히 코발트를 밟고 산 죄 3. 법정 1)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 2) 저들이 우리 아이들을 개처럼 죽이고 있어요 3) 그 광산이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면 4. 쓰레기산 1) 단풍잎과 말굽자석 2) 좀비 줄게, 아이 다오 3) 아이의 숨을 빼앗아 지구 살리기 5. 도시 1) 새 제품을 파쇄해 드립니다 2) 수리하면 벌 받는 사회 3) 70년 전 꿈꾸던 그 미래에서 에필로그_ 살아서 어른이 되면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KBS <환경스페셜> PD가 찾아낸 낯선 디지털 문명 세계 위대한 AI 인프라의 민낯을 고발하다 팬데믹이 끝난 후, 기후와 환경에 대한 관심은 바이러스만큼이나 잦아들었다. AI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환희와 두려움 속에 우리의 생산, 소비, 폐기를 성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마음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일 따위는 철 지난 소꿉장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위대한 AI 인프라마저도 아이들이 캔 코발트 없이는 돌아가지 않고, 수명이 다하면 그것을 가장 싸고 지저분하게 재활용해 줄 아이들의 손에 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을 바꿀 기술의 앞길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들은 모두 경제관념이 없는 한가한 사람들일 뿐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죽어간다. 그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하루를 뽑아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AI 챗봇과 대화한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AI가 알아서 아동 노동을 없애주고 전자 폐기물 무덤을 실리콘밸리 사무실처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AI 기업의 우선순위에 아이들의 으깨진 다리 같은 것이 들어갈 리 없다. 그래서 이 낡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야 했다. 아이가 있어 이토록 좋은 세상 속 좀 아파도, 빨리 죽어도 괜찮은 아이들의 이야기 지금 이 순간에도 코발트 광산과 전자 폐기물 더미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며 일하는 아이들의 손발에 대한 수요는 국경 안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이 피땀 흘려 캐낸 코발트와 재활용된 납은 글로벌 공급망을 타고 자유 무역의 세계를 누빈다. 그 고리 어딘가에서 ‘아동 노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들의 핏값은 세계 곳곳의 초거대기업들에 납품된다. 아이들의 피는 곧 스마트폰과 전기 차, 각종 AI 산업의 밑바탕이 되지만 정작 희생된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 보기는커녕 하루 일당 2달러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기 일쑤다.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 일들은 소위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니까. 모든 추악한 현실과 문제에 대한 책임과 비난은 언제든 서로에게 전가할 수 있다. 동시에 (아동 노동자만 빼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복잡한 공급망 덕에 위대한 AI 인프라는 수십 년째 문제없이 그리고 눈부시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만든 세상에서 어떤 아이들은 좀 아프고, 빨리 죽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애플, 구글, 델,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가 절대 말해주지 않는 아동 노동의 민낯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카술로 마을에서 대량의 코발트 광석이 발견된 2014년, 코발트 1t당 가격은 2만 달러 내외였다. 그 후 전기 차, 스마트폰, AI 등에 코발트 수요가 증가하며 1t당 10만 달러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하는 아이들의 일당은 1달러다. 시급으로 따지면 고작 120원. 이렇게 캐낸 코발트는 스마트폰, 태블릿, 전동 칫솔, 로봇 청소기, 전기 차, 무선 키보드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전자제품들의 교체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가령 매년 여름 한두 달 반짝 쓰다가 버리고, 내년이 되면 또 구매하는 휴대용 무선 선풍기처럼.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 이 전자 폐기물들은 다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향한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나이지리아에서도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하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자 폐기물 더미에서 구리와 철, 아연과 알루미늄 따위를 골라내는 일은 전부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통 전자 폐기물을 소각하고, 남은 광석들을 손으로 모으는데 이때 아이들은 각종 중금속과 탄화수소,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에 그대로 노출된다. 실제로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가 보니, 아침 여섯 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한 여섯 살 무하메드 손에 남는 돈은 0.5달러 정도였다. 시급 60원 꼴이다. 유독 물질을 발생시키는 친환경 재생 자원, 자본주의 질서에서 철저히 배제된 아이들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는 독자에게 이런 의문을 남긴다. 코발트 가격이 그렇게나 비싼데, 아이들에겐 왜 고작 1달러밖에 가지 않는가? 친환경 재생 자원이라는데, 유독 물질이 대체 왜 발생하는가 등.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발달된 디지털 문명사회를 살고 있고,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세계가 유지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왜 콩고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에겐 이 ‘당연한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 질서에 의해 그 가치와 수요가 높은 코발트 광석의 가격은 점점 비싸지고, 발전하는 기술로 혁신적인 여러 전자 제품들이 앞다퉈 출시된다. 하지만 어떤 곳에선 스마트폰 한번 만져본 적 없는 다섯 살, 여섯 살 아이들이 시급 60원, 120원을 벌고자 맨손으로 유독 물질들을 캐내고, 골라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용납 안 될 아동 노동이 마침내 지구 반대편에서도 뿌리 뽑히면 곤란할 것은 누구인가? 벨기에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차마 가할 수 없던 잔인한 폭력, 미국에서 소비자가 차마 알아서는 안 될 노동 착취를 아프리카에서 행하고, 방조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