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_ 노비
선녀인가 매화인가_ 기생
언저리도 안 되는 것들_ 백정
신나게 한번 놀아보세_ 광대
자유를 대가로 차별을 얻다_ 공장
병든 영혼을 해방시켜라_ 무당
조선은 유교의 나라다_ 승려
망각의 강으로 인도하라_ 상여꾼
역사도 비껴간 운명, 조선의 천민
온갖 수탈과 차별에 저항할 힘조차 상실한 천민의 삶에 주목하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왕의 남자>는 모두 조선시대 천민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비와 광대, 둘은 조선시대 가장 아래서 멸시받던 여덟 부류 천민에 속한다. 기생, 백정,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을 더해 ‘팔천八賤’이라고 부른다. 천민들의 삶을 역사에서 들춰내기란 쉽지 않다. 기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역사가 천민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팔천》은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여덟 천민’에 주목한다.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여러 역사서에서 찾아낸 천민들의 삶에 비친 조선의 역사를 들춘다.
조선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키워드, 팔천
팔천은 일반 백성들과 가장 가까이 살면서 다양한 직업에서 활약하며 조선의 발전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역사는 이들을 기록하지 않았고, 불과 최근세까지도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존재였다. 이들의 삶에서 찾아낸 역사가 조선을 읽는 새로운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견뎌야 했던 노비, 말을 알아듣는 꽃(해어화)으로 불리지만 양반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던 기생, 마음대로 살 자유조차 박탈당한 백정, 왕과 양반들 틈에서 웃음을 팔면서도 정작 웃을 수 없는 인생의 광대, 이 밖에도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등 조선시대 팔천의 다양한 삶 속엔 조선의 역사가 오롯이 들어 있다.
누구도 피하지 못한 신분제의 폐단
조선시대 신분제에서 천민이 물려받은 신분에서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거나 떨쳐버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노비와 관련해서 당시 이를 잘 엿볼 수 있는 인물은 《미암일기》로 유명한 미암 유희춘이다. 유희춘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이조참판까지 지낸 실력자다. 그에게는 노비 출신 첩과 그에 딸린 딸 넷이 있었다. 조선시대 노비법에 따라 네 딸은 모두 노비 신분이 된다. 부모 중 한 명이 천민이라면 그 자식도 천민이 되기 때문이다. 유희춘은 자기 자식이 노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동원해 딸들의 신분을 벗겨주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노비가 신분을 벗으려 하자 기나긴 소송도 불사하면서 적극적으로 맞섰고 끝내는 승소했다. 이처럼 조선의 노비제도는 양반에게까지도 분쟁거리였을 만큼 큰 사회적 문제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천재지변과 탐관오리들이 수탈에 못 이겨 양인들이 스스로 노비를 자청하는 일도 발생했다. 심지어 1822년(순조 22) 11월 복쇠라는 사람은 생활고 때문에 자신과 처 복섬을 박승지에게 25냥을 받고 노비로 팔아넘기는 일도 나타났다. 이는 현재 문서로도 남아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를 가리켜 ‘해어화解語花’라고 칭했다. 이때부터 경국지색의 여인을 일컫는 말로 쓰였고, 조선 기생에 관한 풍속을 정리한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진 황진이나 논개 등 일부를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기생은 그저 왕족과 고관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 심지어 육조의 낭관들은 큰길에서 기생을 끼고 다니며 거들먹거렸고, 유생들도 향교에 기생을 불러 술을 마셨다. 사대부들은 불법으로 관기를 첩으로 들였고, 지방 수령들은 관기의 수효를 맞추기 위해 간통한 여자를 잡아 강제로 기생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다. 말을 알아듣지만 놀이 대상에 불과한 꽃으로 전락한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조광조와 같은 인물이 기생제도 폐지를 논하기도 했지만, 이미 기생 놀음에 빠진 양반들의 힘에 눌려 뜻을 접어야 했다.
가장 아래서 역사를 만들다
또 지금은 전통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무속신앙과 장례 등에 종사하던 무당과 상여꾼도 팔천이었다. 당시 무당은 양반가를 비롯한 백성들의 정신적 위안을 안겨주는 존재였는데도 차별을 받았고, 상여꾼도 백성들의 상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때가 아니면 괄시의 대상이 되어 일반 백성들과는 떨어져 살아야 했다.
다른 팔천들도 백성들에게 무시당하고 때론 이용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안주하며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드라마로도 방영된 <제중원>의 실제 주인공인 박성춘과 그의 아버지 박성춘 역시 백정 출신이었다. 이들은 개화기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백정 신분을 벗었지만 현실에선 역시나 무시당하는 백정이었다. 박성춘은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현실에 맞섰다. 그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 사회운동에 앞장섰고, 박서양은 이런 아버지의 강한 의지에 힘입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었다. 그 후 식민지 시기 백정들은 형평사를 조직해 형평운동이라는 신분차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연산군에게 왕은 왕다워야 한다며 꾸지람을 준 광대 공길의 이야기는 이미 영화 <왕의 남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또 최고의 기술자로서 측우기를 비롯해 해시계 등을 만들어 조선의 과학기술을 끌어올린 장영실은 천민 출신임에도 세종과 함께 조선의 황금기를 이룩했다. 종이나 두부를 만들어 바치고 양반에게 조롱 대상이던 승려들은 임진왜란처럼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승군과 의병을 조직해 나라를 구하려 애썼다.
이처럼 팔천들이야말로 유교 사회의 신분제라는 사슬에 묶여 차별을 받으며 살면서도 조선 역사의 밑바탕을 형성했다. 가장 아래서 조선을 떠받치고 힘든 운명을 견뎌낸 이들의 역사가 바로 《조선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