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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erKino

FisherKino

7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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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루블료프

영화 ・ 1966

놀랍고도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창세기 18장의 '세 천사의 방문'을 주제로 하는 삼위일체 이콘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어떤 고뇌와 고통 속에 이콘을 완성했는지를 과감한 형식미 안에 담은 작품이다. ● 8개의 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라도네츠의 삼위일체 수도원 수도사인 루블료프는 동료 수도승들과 함께 당대 민중들이 당면한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며 스스로의 죄인됨을 자각하고 기약없는 침묵에 들어간다. 한편 정치패권을 차지하고자 타타르와 손을 잡는 '대공의 동생' 조차 마을이 있으면 무참히 살육하고 양민을 성당에 몰아넣고 몰살시키는 타타르의 잔인함에 근심이 짙어진다. 루블료프는 가는 곳곳마다 민중이 얼마나 핍박받는지를 목도한다. 현실을 풍자한 광대는 혀가 잘리고 악기는 부서진다. ● 장애가 있는 여인을 타타르의 손에서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수도사 루블로프는 침묵의 고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 민중의 약동하는 힘과 삶의 의지로 점철된 '종' 에피소드는 질병과 이민족의 살육에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십대 소년이 (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아버지의 종 주조술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며 위정자의 종을 만드는 과업을 보여준다.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들어가다 걸리는 질기고 질긴 뿌리는 한그루 나무의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 뿌리는 땅 속에 있어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듯 러시아의 민초들이야말로 그 땅의 생명의 문명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함축한다. 종은 완성되고 대공으로 지칭되는 권력자와 종교권력은 종에게 축도하며 의식을 진행하지만 정작 그것을 만든 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으며 종 제작지휘관인 소년이 종을 치지 않는다고 욕설을 내뱉을 뿐이다. 종의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퍼지자 정념 상태가 된 소년은 오열하고 루블료프는 진흙에서 뒹구는 소년을 끌어안고 '앞으로 너는 종을 만들고 나는 그림을 그리'겠노라 말문을 연다. 그러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에피소드에서 조차 루블료프는 민초들 사이에서 방황할 뿐이었으나 종을 만드는 민초들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끼는 가운데 한 소년에 대한 위로를 건네며 행위 안에서 죄의식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이게 된다. ●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정말이지 영성이란 관념의 차원이 실재하는 것으로써 체험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놀라울 지경이며 영화가 예술이 되는 경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 타르코프스키가 34세의 약관의 나이에 완성시킨 이 작품은 영화를 사랑하고 또 만들고픈 이들에게 깊은 절망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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