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종주의 심리학의 전범, 탈식민주의 비평의 고전 “내가 나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나를 끊임없이 창조한다.” 프란츠 파농 20세기에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논한 가장 강력한 이론가. _앤절라 데이비스(사회운동가) 니체, 프로이트, 사르트르를 잇는 우상파괴의 계승자 파농은 일탈적이고 과도기적인 진리의 전달자다. _호미 바바(탈식민주의 이론가) 프란츠 파농, 그는 내 희망이요 영웅이다. _올랜도 패터슨(하버드대학 사회학과 교수) 탈식민주의 논의의 출발점이자 인종주의 심리학의 전범이 된 책. 국내 유일한 불어 원전 번역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쓴 알제리혁명의 지도자 파농이 아니라, 백인 문명에 종속된 유색인의 정체성 자각과 정신적 해방을 모색하는 ‘심리학적’ 파농을 만난다. 1951년 출간되고 70여 년이 흘렀지만, 점점 더 다문화, 다인종이 공존하고 다양한 층위의 차별이 내재화되어가는 오늘날 사회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더욱 긴요하다. 2014년 한국어판 출간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개정판에서는 번역을 섬세하게 다듬었고, 전문가 감수를 거쳐 정신의학 관련 용어와 표현을 일부 바로잡았으며, 옮긴이 해설을 새롭게 다시 썼다. 불어 원전 번역으로 만나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 20세기 후반 탈식민주의 비평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 책은 오랫동안 국내에서 주로 영어판으로 소개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한국어 번역본이 처음 나왔지만 영어판에서 옮긴 중역이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영어판은 읽기 편하고 의미가 비교적 명료한데 이는 불어 원문의 충실한 번역이라 하기 어렵다.(파농 전기를 쓴 데이비드 메이시도 이런 영문판의 결함을 지적한 바 있다.) 파농이 이십대에 쓴 이 책의 원문은 결코 친절하게 쓰인 글이 아니다. 때로는 시적 수사와 선언적 문구가 툭툭 튀어나오고, 때로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복잡한 심리학적 서술이 이어진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는 알제리혁명기에 쓰인 파농의 후기 글들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문체와 서정성이 담겨 있다. 파농은 프랑스의 리옹 의과대학에 다니던 스물다섯 살 무렵에 이 책을 썼다. 애초에 학위논문으로 준비하던 이 책의 원제목은 ‘흑인의 탈脫소외에 관한 시론’이었다. 이 책을 이루는 근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종주의․식민주의에 대한 심리학적(정신분석적) 분석이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했던 파농은 프로이트, 융, 아들러를 비롯해 당시로선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까지 끌어와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의 심리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이처럼 인종문제를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술은 그때까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이 출간되기 두 해 전에 나온 옥타브 마노니의 『식민화의 심리학』(1950)이 유일한 사례이나, 파농은 4장 「이른바 식민지인의 종속 콤플렉스」에서 마노니가 백인/주인/식민지배자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준엄하게 비판한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백인 문명 아래서 성장한 흑인이 흑인의 시각으로 흑인의 실존을 해체하고 재구성해가며 써나간 최초의 인종주의 심리학 저서이다. 이 책을 이루는 또하나의 근간은 마르티니크인의 혼종적 정체성이다. 파농은 중앙아메리카 서인도제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 출신이다. 앙티유 군도에 속하는 마르티니크는 17세기 이후 줄곧 프랑스 식민지였다. 인종적으로는 흑백 혼혈이 대다수인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피지배자라기보다는 프랑스인으로 여긴다. 책에서 파농이 언급하는 마르티니크인 또는 앙티유인은 피부는 거무스름하지만 정신적으론 이미 ‘백인’이다. 그러나 본토인 프랑스 땅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의 ‘하얀 가면’은 적나라하게 벗겨진다. 그렇기에 이런 앙티유인의 정체성은 인종주의 심리학을 구성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된다. 앙티유인은 백인을 닮고 싶고, 백인에 동화되고 싶은 모든 유색인의 자화상이다. 백인은 문명인이요, 검둥이는 야만인이라는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도식이 이미 그들에게 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책의 구성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앙티유 사람 파농의 자기비판, 자기성찰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곧 백인 세계에서 흑인이 보이는 태도에 대한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1장 「흑인과 언어」는 앙티유인에게 ‘프랑스어’가 갖는 위상을 다룬다. 그들에겐 정확한 프랑스어가 곧 ‘하얀 가면’이다. 어눌한 프랑스어는 검둥이의 징표다. 2장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과 3장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은 백인 선망, 즉 백색 신화에 물든 식민지인의 초상이다. 파농은 앙티유 출신의 여성 작가 마요트 카페시아의 『나는 마르티니크 여자』, 세네갈 작가 압둘라예 사지의 『니니, 세네갈의 물라토 여인』, 앙티유 출신으로 아프리카 식민지의 관료를 지낸 공쿠르상 수상 작가 르네 마랑의 『다른 이들과 똑같은 한 남자』 같은 작품들을 분석해 그 실상을 추적해나간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피부색에 기초한 인종의 드라마는 곧 식민지 현실의 거울이다. 유색인 여자는 백인 남성과 결혼하고 싶어하고 흑인 남성은 어찌해서라도 배제한다. 또 유색인 남자는 흑인 여성은 멀리한 채 백인 여성과 결혼해 인정받길 갈망한다. 3장까지가 현실 진단이었다면, 4장부터 파농은 본격적으로 식민지인(흑인)에게 내재된 심리기제를 파헤친다. 4장 「이른바 식민지인의 종속 콤플렉스」에서 파농은 식민지배의 심리학을 연구한 선구자인 정신분석학자 옥타브 마노니의 『식민화의 심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노니는 토착민과 식민지배자의 관계를 지배하는 심리 현상을, 식민지배자의 권위(지도자) 콤플렉스와 식민지인의 종속 콤플렉스로 풀어내는데, 파농은 이 자체가 백인 중심의 시각이라고 질타한다. 5장 「흑인의 실제 경험」은 자신이 흑인임을 자각하게 되는, 하얀 가면이 벗겨지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흑인됨’과 대면하는 흑인을 다룬다. 이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마르티니크 출신 시인 에메 세제르에게서 가져온 ‘네그리튀드Negritude’이다. 흑인의 고유한 문화적 주체성을 표방하는 네그리튀드에 대해 파농은 그것이 흑인의 인식을 전환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거 회귀성과 아프리카 본질주의와는 분명한 거리를 둔다. 6장 「흑인과 정신병리학」은 흑인 심리에 대한 정신의학적 해부이며, 7장 이후는 스스로에게서 배제되고 소외된 주체가 소외를 극복하고 자기 존재를 실현할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언어 이 책은 서유럽 형이상학의 허구성, 존재론의 허구성을 꿰뚫는 과감성, 시와 산문을 자유로이 묶고 푸는 형식의 개방성, 개인적 체험과 객관적 분석이 서로 갈마드는 내용의 도발성, 낯선 크레올 어휘를 흩뿌린 문장들의 이질성 등이 하나로 만나 기묘한 무늬의 만화경을 이룬다. 파농의 모든 분석과 이론, 또 선언적 이념은 그만의 독창적 언어로 표상된다. 파농의 책은 그가 구술을 하면 누군가 그것을 받아쓰는 방식으로 초고가 나왔다. 그 방식이 처음 적용된 것이 이 책이었다. 비범한 리듬과 호소력 짙은 감수성은 이렇게 목소리의 울림으로만 가능한 방식에 빚진 것이기도 하다. 파농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며 최상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다. 파농은 식민지 언어 환경의 양면성을 수차례 강조한다. 그는 유색인이나 아랍인에게 검둥이식 반말(프티네그르)이 아닌 반듯한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고 했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파농은 일상에서 대화를 나눌 적에는 거리낌 없이 서인도제도 특유의 크레올어도 구사했다.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 크레올어 사용은 함부로 해선 안 될 행동이라 보았다. 식민지에 밴 지배의 형상을 지우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는 크레올어는 존중이 아니라 편견이 된다. 식민지 현실이 그렇듯 크레올어는 분명 양가적이다. 크레올어는 모어로 주체의 언어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가 속한 사회와 계급을 규정하는 피지배의 낙인이 될 수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