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정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극영화 가운데 우수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1983년부터 매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을 발간하고 있다. 2003년 한국시나리오 선집에는 총 10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선택],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와일드 카드], [싱글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4인용 식탁],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 보이], [실미도]가 수록되었다. ≪한국시나리오선집≫은 2003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책의 특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하 [스캔들])은 대중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노력과 영리함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면서도 뭔가 색다른 척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스캔들]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취하면서도 조선 시대의 남녀상열지사로 채색을 입히고, 유럽이나 할리우드의 문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양식적인 스타일을 취하면서도 지난 시대의 분위기를 살려 ‘진짜 한국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 시대의 한량인 조원(배용준)은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바람둥이이자 부르주아다. 조원의 특권은 은근한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영화 전체를 통해서도 배어나지만 말 위에서 죽어가는 조원을 향해 “양반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하는 수행하인의 지나치는 한마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조원의 사촌 누이인 조씨 부인(이미숙)은 겉으로는 사대부 아낙네의 행색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현대 여성의 전형이다. 사대부의 체통과 규율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근친의 감정이 넘쳐흐르는 조원과 조씨 부인은 9년간 수절한 숙부인(전도연)을 두고 내기를 한다. 조원이 숙부인의 막힌 문을 돌파할 경우 조씨 부인은 조원이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들어주기로 약조한 것이다.(중략) _[작품 해설]중에서 [머리말] 한국 영화의 웰메이드 시대 도래 2003년 한국시나리오선집 심사 총평 최근 한국 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열면서 한국 영화의 산업적인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나리오 선집에 실린 시나리오들이 더욱더 의미 있게 여겨진다. 천만 관객 시대의 위상을 보증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데, 시나리오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 기초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시나리오 선집에 수록된 2003년도의 주요 작품들은 대중적인 반응과 비평적 반응을 동시에 끌어내면서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이상 끌어올렸다. 2003년은 한국 영화에 대한 자긍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해였다. 10편의 수록작은 그 위상에 대한 토대다. 산업적인 위상을 뒷받침할 만한 든든한 배경은 ‘웰메이드(well-made)’라는 저널의 용어를 낳았다. 말 그대로 ‘잘 만들어진’이라는 뜻을 지닌 웰메이드라는 용어는 단순히 영화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웰메이드는 기획과 든든한 자본의 후원과 연출이 어우러져 탄생한 일종의 문화적인 합작품이라고 해야 옳다. 웰메이드가 도저한 작가의식이나 첨예한 사회인식을 담은 문제작에 다가갈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영화 예술의 한계를 품은 말로 폄하되어 사용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 한국 영화의 웰메이드는 누가 뭐래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 밑바탕에는 말 그대로 잘 만들어진 대중 영화를 지향하는 붐이 있었고, 웰메이드라는 용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반영하는 의미가 되었다. 이러한 붐의 밑바탕에는 관객들이 얼마나 적정한 수준 이상의 한국 영화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부분도 있다. 그간 한국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 어울릴 만한 명품이 드물었다는 반증인 것이며, 2003년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영화 관계자들은 2003년 흥행작들의 다수는 될 만한 영화가 된 한 해라고 입을 모은다. 흥행의 흐름과 대중적 욕망과 비평적인 감식안이 서로 어우러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2003년은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평론가의 선택과 관객의 기호가 합일을 이루는 진귀한 풍경도 목격되었다. 가벼운 트렌디 코미디와 거대 영화에 대한 야심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성급히 점쳐 보는 웰메이드 시대의 도래는 한국 영화의 한 단계 성숙을 증거하는 지표로 보인다. 그것은 분명 이상적인 완성이었다. [올드 보이]를 비롯해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등의 영화는 각기 다른 장르로 세련된 양식미를 깔고 관객과 만나는 데 성공했다. 꽉 짜인 영화적 구성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차별화된 형식미를 갖춘 이들 영화의 성공은 양식미에 민감하게 반응한 관객층의 확인과 더불어 기존 한국 영화의 편향된 장르 경향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영화계에 불어넣었다. 특정 장르는 계절과 어울리는 붐을 야기하기도 했다. 매년 여름 특수를 노렸던 공포 영화는 [장화, 홍련]을 필두로 [거울 속으로], [4인용 식탁], [아카시아],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 등 다양한 지류로 뻗어나갔다. 특정 장르에만 기대 일방 통행하는 가운데 일희일비했던 충무로가 새로운 꼴을 갖춘 다양한 영화 장르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산업에 윤활유를 뿌린 격이 되었다.(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