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이제 여신들로 다시 읽자!
“여신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곧 신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화 속에서 여신들을 포함한 ‘여성’들은 ‘누구의 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화는 항상 지구와 함께 시작하고, 지구는 늘 여성이며, 생명과 풍요를 약속해 주는 대지의 어머니이다. 남자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신들과 여인들. 남성들 못지않게 이들의 영향력은 컸고, 여신들은 또 인간의 삶을 조종하기까지 한다.
창조 이야기부터 자존심과 아름다움과 질투, 용기와 자유, 사랑, 아내와 어머니, 초능력 등, 주제별로 모아 놓은 60개가 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지금까지의 신화 이야기와는 다른 재미를 주고 교양을 넓혀 줄 것이다. 또한 여신들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모든 여신들에 관한 원래 이야기들을 충실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스토리텔러, 도서관 사서, 학생과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신화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대지의 딸들’, 신화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다
우리는 흔히 서양의 문화를 떠받들고 있는 것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이 둘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재해석되며 서양 사람들의 일상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경과 신화를 모르고서는 서양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다. 특히 문학, 예술, 영화와 같은 분야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이루 다 형용하기 힘들 만큼 방대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 근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에서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탄생, 프시케와 에로스, 판도라의 상자,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다프네와 아폴론 등의 이야기들은 루벤스 등 수많은 화가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해 아름다운 명화들로 생생하게 다시 태어나게 된다.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인 신화 이야기는 이들에게 결국 마르지 않는 샘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처럼 서양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 것은 다른 수많은 신화들과 달리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무섭고 암울하며 기괴하고 잔혹한 다른 고대 부족들의 신화와는 달리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자존심, 용기, 지혜, 질투, 분노와 같은 인간의 개성마저도 갖고 있어 오히려 함께하기에 편안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녔고, 신들의 행위에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신들을 경배했다. 또한 미(美)의 세계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대가 되었던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신화는 주로 남신들과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여신들과 여인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신들의 전쟁이라든가 영웅 신화들은 대부분 남성 중심이다. 이는 고대 신화를 다룬 많은 책들이 ‘영웅과 신들’ 같은 제목을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쟁과 인간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두 편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위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구사회가 전통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남자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여신들과 여인들이 등장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적 삶의 관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때로는 인간들의 삶을 조종하기까지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서구 문화의 이야기들을 보면 이러한 ‘여성’들에게는 단지 한두 가지 역할만이 배정되고 있다. 즉 착하기 그지없고 순결한 어머니이거나, 아니면 서슴없이 상대를 유혹하는 아주 못된 악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여인들은 그보다 훨씬 폭넓은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복잡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여신들의 신화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여신들을 이해함으로써 신화 속에 담긴 의미를 더욱 면밀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신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의식 속에 유지되어 왔던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 여성에 대해 갖고 있던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오랜 옛날 세상은 여성들을 어떻게 보았으며, 신화 속의 여신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는 것은 신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바로 이 모든 여신들에 관한 ‘원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그리스 사람들은 이 여신들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원문을 읽는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겨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리스 여신들을 분석해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적 관심을 제시한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함께 읽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주제별로 모아놓은 60여 개의 흥미로운 이야기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는 창조 이야기부터 ‘자존심과 아름다움, 그리고 질투’, ‘용기와 독립심(자유)’, ‘사랑과 연인들’, ‘아내와 어머니’, ‘초능력과 예언’ 등에 관한 이야기까지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총 60여 개의 흥미롭고 아름다운 여신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1부 ‘창조 이야기’에서는 올림포스 열두 신의 어머니인 가이아를 비롯한 모든 신들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에 관해 들려준다.
2부 ‘자존심과 아름다움, 질투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먼저 신의 힘과 권위에 도전하는 자만의 죄, 즉 오만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에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질투한 여신들과 그 희생양이 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테네 여신에게 도전했다가 거미가 된 여인 아라크네, 레토에게 자식 자랑을 했다가 자식들 모두가 죽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마저 돌이 되어 버린 니오베, 그리고 뮤즈에게 도전한 피에리데스, 바쿠스를 비웃은 자매 등 자신의 오만으로 신의 벌을 받은 여인들과, 질투의 화신 헤라, 그 헤라가 질투해 황소로 살아야 했던 이오와 곰으로 변한 칼리스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 ‘용기와 독립심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용기를 지닌 여인들과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 된 아테나,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를 돕는 황금 실의 공주 아리아드네, 오디세우스를 구해준 나우시카아,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숙부의 손에 죽고 마는 비운의 안티고네,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아가멤논)의 복수를 하는 엘렉트라, 그리고 이피게네이아 등 용기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와,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다 월계수가 된 다프네, 여전사 아마조네스, 샘물의 님프가 된 아레투사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4부 ‘사랑과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비롯해, 카르타고를 세운 여왕으로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나머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 디도, 태양신을 사랑해 결국 해바라기가 된 클리티에, 나르키소스를 짝사랑한 에코,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배신했다가 해조(海鳥)가 된 스킬라,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한겨울에 바다를 건너다 죽음을 맞이한 레안드로스와 헤로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근원이 되었던 피라모스와 티스베 등의 이야기와, 에로스의 사랑을 의심해 가혹한 형벌을 받았지만 결국 에로스와 결혼한 프시케, 괴물의 사랑을 받은 갈라테이아,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죽은 영혼들을 달래주는 히포다메이아, 사랑을 매몰차게 외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