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살인
쓸쓸한 러브스토리와
섬뜩한 스릴러를 넘나드는
놀랍도록 고혹적인 추리소설이 펼쳐진다.
그녀는 고요한 물속의 소용돌이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다.
꿈틀대던 사랑과 욕망, 증오의 흔적은 먼 시간 속에 지워졌지만
살인은 끝내 잠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저명한 고전학자인 캐슬린 프리먼이 메리 피트라는 필명으로 1941년에 출간한 열 번째 추리소설이다. 언어적 재능이 남달랐던 프리먼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어를 독학으로 익히고 대학에서 고전학을 전공하여 1918년 고전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22년에는 석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이후 1940년 고전학 박사 학위를 받고 고대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다. 프리먼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여러 편의 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6년부터는 범죄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프리먼은 어떤 인터뷰에서 추리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항상 인기 있고 잘 팔리는 분야이기에 독자를 확보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녀가 오로지 ‘팔리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쓴 것은 아니었다. 추리소설도 일반 소설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표현의 정당한 장을 제공한다고 생각했기에 문학적 가치를 지닌 매력적인 범죄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거의 모든 사람, 동료, 친구, 의사, 변호사 등 모든 사람이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형식에 담으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그녀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
<죽음을 걷는 여자>는 독창적인 추리소설이다. 스릴러가 아니지만 스릴을 선사하고, 추리를 하는 형사나 탐정이 없지만 추리가 이루어지며, 주류 문학이 아니지만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 같은 빅토리아 시대 고전 작품이 지닌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액자 소설 형식의 이중 서사 구조로 쓰인 이 작품은 시골 마을 목사관의 담배 연기 자욱한 응접실에서 네 남자가 목사 부인으로부터 50년 전의 사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에필로그를 통해 현재의 그들이 그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완성된다. 사건의 주인공들이 이미 사라진 상태에서 제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대화와 감정이라는 부정확하고 모호한 정황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듣는 사람들의 추측을 통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이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는 매우 독특한 구성인 것이다.
이 이중 서사에서 독자는 목사관 응접실에 모여 앉은 네 남자처럼 현존하지 않는 먼 옛날의 시공간인 그곳, 그 시간에 있는 것처럼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시골 마을의 저택이라는 허구적인 현실성을 긴장감 속에 경험하게 된다. 수수께끼같이 비현실적인 여자, 흥미진진한 인간관계, 모든 것이 소멸했기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황금기의 내로라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의 모임인 추리 클럽(Detection Club) 회원이었지만, 이 작품은 그 시대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불가능한 밀실 살인, 집사가 있는 시골집의 미스터리 등과 같은 통념의 틀을 깨고, 개인들 사이의 은밀한 감정과 심리가 어떻게 비극으로 이어지는지를 차분하고 독특하며 낯선 분위기로 전개하고 있어 전통적인 황금기 추리 소설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도서출판 키멜리움
cimelium : 보물 상자(라틴어)
하나의 세상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현실인바
쉽사리 바꿀 수도, 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다른 세상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으로 열리는 만화경인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버릴 수 있다.
책은 그곳으로 가는 은밀한 통로다.
그 속에서 현실은 같으면서 다른 현실과 교류한다.
그것은 현실보다 더 참혹하기도 하고
현실의 데자뷔이기도 하고
미리 도래한 내일의 현실이기도 하다.
실재하지도 않는 그 다양한 세상이
우리에게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길이 되고 또 때로는 절망이 된다.
키멜리움북스는 이 만화경을 그리는 도화지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누구라도 자신만의 보물 같은 세상을 마주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책을 내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