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피터 터친 · 사회과학
4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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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국가와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릴까? 그중 많은 사회가 내전, 혁명이나 심각한 수준의 혼란을 겪으며 명멸하고, 소수의 사회만이 대격변 없이 완만하게 혼돈에서 벗어난다.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시기는 100년, 길어야 200년을 넘지 못한다. 피터 터친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위기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복잡계 이론에서 성공했던 방법론을 적용하여 ‘왜 사회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이를 역사동역학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의 구조적 요인이 위기를 추동한다. 엘리트 과잉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추동 요인은 엘리트 과잉생산인데,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및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으로 표출된다. 이와 함께 왜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끔찍하고(수많은 사람의 죽음, 엘리트층 혹은 지배계급의 절멸이나 몰락 등),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운지를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앞의 사례들에서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뒤의 사례들에서는 무엇을 잘한 걸까? 최후의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정당성마저 취약해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그 답의 단편이라도 찾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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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부. 권력의 역사동역학 1장. 엘리트, 엘리트 과잉생산, 위기로 가는 길 2장. 한 걸음 뒤로: 역사의 교훈들 2부. 불안정을 추동하는 요인들 3장. “농민들은 혐오스럽다” 4장. 혁명군 5장. 지배계급 6장. 왜 미국은 금권정치인가? 3부. 위기와 여파 7장. 국가의 와해 8장. 근미래의 역사들 9장. 부의 펌프와 민주주의의 미래 감사의 말 부록 A1. 새로운 역사과학 A2. 역사 매크로스코프 A3. 구조동역학적 접근법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왜 모든 국가와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릴까? 그중 많은 사회가 내전, 혁명이나 심각한 수준의 혼란을 겪으며 명멸하고, 소수의 사회만이 대격변 없이 완만하게 혼돈에서 벗어난다.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시기는 100년, 길어야 200년을 넘지 못한다. 피터 터친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위기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복잡계 이론에서 성공했던 방법론을 적용하여 ‘왜 사회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이를 역사동역학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의 구조적 요인이 위기를 추동한다. 엘리트 과잉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추동 요인은 엘리트 과잉생산인데,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및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으로 표출된다. 이와 함께 왜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끔찍하고(수많은 사람의 죽음, 엘리트층 혹은 지배계급의 절멸이나 몰락 등),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운지를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앞의 사례들에서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뒤의 사례들에서는 무엇을 잘한 걸까? 최후의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정당성마저 취약해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그 답의 단편이라도 찾기를 희망해 본다.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반엘리트, 대중의 궁핍화가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스티븐 핑커는 《지금 다시 계몽》에서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으며, 과학과 이성적 사고가 사회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면 세상이 반드시 나아지리라 낙관하기 어렵다. 피터 터친에 따르면 모든 복잡한 인간 사회는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의 파고를 겪었으며, 이는 현대에도 예외가 아니다. 터친은 나폴레옹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약 300건의 위기 사례를 확인하고, 왜 사회가 위기에 빠져드는지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의 구조적 추동 요인이 순환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대중의 동원 잠재력으로 이어지는 궁핍화, 엘리트 내부 충돌로 귀결되는 엘리트 과잉생산, 쇠약한 재정 건전성과 국가의 정당성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추동 요인은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인데, 이는 위기가 다가옴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예측 지표다. 오늘날의 미국이나 규모가 큰 강력한 제국들의 경우에 지정학적 요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제국은 살인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 미국(나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은 격동의 시기로 들어서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그 상징으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말한다.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되었는가? 정치 경험 없이 ‘슈퍼리치’로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스티브 포브스(1996년과 2000년에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탈락)와 억만장자 로스 페로(1992년과 1996년에 무소속 후보)는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이들 사이의 차이가 무엇일까? 첫째, 2016년 그리고 2024년에는 미국 대중의 궁핍화가 1990년보다 훨씬 심해졌다(앵거스 디튼의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따르면 2014년부터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45~54세 고졸 이하 백인 노동자의 기대수명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에 자신이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표현했다(터친에 따르면 뉴딜 시대에 노동계급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상위 1%와 10%의 정당이 되었고, 상위 1%의 정치적 수단이었던 공화당은 포퓰리즘 분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둘째, 미국의 엘리트 과잉생산 현황이 작동했다. 이는 여러 가지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데, 우선 1980년대부터 미국 슈퍼리치(1,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 보유)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 6만 6,000가구였던 천만장자의 수는 2019년에는 69만 3,000가구로 늘어났다(인플레이션을 조정한 수치다). 또한 1990년대부터 연방 의원(상하원 모두)이 되고자 하는 부자들의 수가 늘기 시작하여, 2000년에 비해 2018년과 2022년에는 선거에 출마하는 부유한 지망자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고학력자가 양산되고 있다. 미국 대학은 석박사와 로스쿨 등 전문 학위 소지자를 쏟아 내고 있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 이들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고급 학위 소지자의 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기본소득 담론으로 유명한 가이 스탠딩은 이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을 두고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른다).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엘리트 내부의 충돌은 점차 우리의 시민적 응집성을 훼손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계약이 약화되고 국민적 협력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 결과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무너지고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사회규범과 민주적 기관의 기능이 해체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역사는 구조적인 힘들에 의해 움직인다: 엘리트 과잉생산으로 달라진 역사적 경로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한 요인은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이었다. 1820년대와 1860년대 사이에 상대적 임금(GDP에서 노동자 임금으로 지불된 액수의 비중)이 50% 가까이 감소했다(최근 50년간 벌어진 일과 비슷하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복리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기대수명이 8년 감소하고, 신장이 줄었다. 불만의 징후는 크게 늘어난 도시의 치명적 폭동(1855~1860년 사이 38건)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트 과잉생산이 있었다. 1820년대 이후 성장의 과실 대부분이 엘리트에게 집중되며 엘리트의 수와 부가 급증했다. 특히 원래 미국의 지배층이었던 남부의 부자들과 철도, 철강, 광업에 기반한 북부의 새로운 백만장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엘리트의 수가 급증하며 정부 공직을 둘러싼 경쟁이 심해졌다. 역사책은 남북전쟁이 노예제를 둘러싼 충돌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노예정치’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링컨도 처음에는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새로운 주로 확대하는 것만 반대했으나, 그가 당선되자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하며 전쟁이 촉발되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아랍의 봄의 시발점)을 보자. 우리는 이집트 혁명이 경찰의 과잉 폭력, 시민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부재, 높은 실업률, 식료품 가격 상승, 저임금 등에 맞선 대규모 대중 시위의 결과라고 들어왔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힘들이 있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이집트 젊은이 가운데 소수 일부만이 고학력 계층에 진입했는데, 무바라크 정권은 현대화라는 목표 아래 대학 교육을 대대적으로 확대했고, 1995년 이후 대졸 학위자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학위를 보유한 젊은이를 위한 자리의 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일자리 없는 대졸자들이 대규모 반체제 시위에 혁명군으로 나섰다. 여기에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 있었다. 사다트의 후계자였던 무바라크는 집권하자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를 후계자로 훈련시키면서 맘루크 정권 이래 수백 년 이어져온 이집트 군사 통치의 규칙을 깨뜨렸다. 2011년 대규모 시위가 폭발했을 때, 군부는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을 수수방관했다. 이후 군부가 혁명으로 집권한 이질적인 세력들(무르시 정권)을 전복함으로써 이집트는 다시 군사 통치로 복귀했다. 1991년 벨로베즈 협정으로 소련을 해체시킨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문화가 유사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동 중인 아노크라시 국가라는 점에서 같았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민주적인 우크라이나가 가장 가난하고 불안정한 반면, 가장 독재적인 벨라루스가 상대적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혁명이 성공하고 2021년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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