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세우똥 멜루)과 바우데마르(빠울루 조제)는 2인조 광대단‘빵가레와 뿌루 상기’를 조직한다. 벤자민은 신분증도, 집도 없이 유랑하는 광대로, 항상 즐거움이 가득한 에스뻬란싸 서커스단과 함께 고속도로변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벤자민은 자기가 처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고 꿈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3회 브라질영화제)
[제3회 브라질영화제 영화평론가 평론]
(리더스 다이제스트) 시절부터 떠도는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남자가 정신병원을 찾아왔다. 의사는 최근 도시를 찾은 유명한 광대 아무개의 공연을 보고 실컷 웃다가 오라고 권한다. 환자는 울음을 터트리며 대답한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바로 그 아무개인 걸요!"
이 농담은 광대와 서커스에 대한 현대 대중의 고정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뮤직 비디오의 시대에 수 백 년 묵은 루틴을 반복하는 서커스와 광대는 중세 과거에서 온 괴물과 같다. 특히 얼굴에 이상하게 웃기는 분장을 하며 괴상한 행동을 하는 광대는 그로테스크하다. 그의 분장 밑에 숨겨져 있는 얼굴의 진짜 표정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서커스 광대를 괴물로 내세우는 호러 영화가 그렇게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서구 아이들에게 '광대공포증'이 그렇게 많이 퍼져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우똥 멜루의 (광대)는 호러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맨 앞에 언급한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농담에 가깝다. 우스꽝스러운 분장 속에 우울증을 숨기고 있는 중년 남자 이야기. 실제로 그 중년남자는 영화 속에서 앞의 농담과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을 웃겨요. 하지만 누가 나를 웃기지?"
그 중년남자는 벤자민이다. 그는 아버지 바우데마르가 운영하는 서커스단 Circo Esperan?a에서 빵가레라는 예명으로 광대 공연을 한다. 서커스단은 (세우똥 멜루의 고향인) 미나스제라이스의 시골길을 떠돌며 몇 십 명씩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돈을 챙기면 다른 마을로 떠난다. 가끔은 차가 고장나 낭패를 보기도 하고, 가끔은 마을 사람들과 싸움이 붙기도 하고, 가끔은 억지로 출연을 허락한 시장의 아들 때문에 공연을 망치기도 한다.
벤자민은 이 소박한 사람들을 웃기고 자극하는 일을 아주 잘 한다. 광대공연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서커스를 운영하는 데에도 도가 텄다. 하지만 반복되는 루틴은 지겹기 짝이 없고 그는 오래 전에 일의 재미를 잃었다. 광대 분장을 벗으면 그는 더 이상 웃지도 않는다. 하긴 그는 스스로 이 직업을 선택했던 것도 아니다. 떠돌아다니며 광대 짓을 하느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평범한 일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른다. 신분증 대신 들고 다니는 낡아빠진 출생증명서처럼, 그는 정상적인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괴상한 존재이다. 영화 중반에 이르면 벤자민은 마침내 모두가 예상했던 탈출을 감행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면 직접 영화를 보시라.
벤자민은 브라질의 배우인 세우똥 멜루의 창조물이다. 멜루는 1981년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뒤로 브라질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로 성장해왔다. 상도 많이 받았고 자국 영화계와 텔레비전 세계에서는 스타이다. 하지만 그가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광대)에서 드러나는 우울증과 불안함은 멜루 자신의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그는 심각한 직업적 정체기를 맞았고 한 동안 자기가 과연 앞으로 연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고 한다. 영화를 계획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감독과 연기를 병행할 수 있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고, 초반에는 벤자민을 연기할 다른 스타 배우들을 찾았다. 결국 자신이 직접 벤자민 역을 맡으면서 영화는 세우똥 멜루 자신을 위한 심리 치료의 과정이 된다.
(광대)는 도전적인 작품이 아니다. 영화는 서커스 세계와 광대들을 다룬 수많은 선배들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른다. 약간의 펠리니, 약간의 채플린 그리고 아주 약간의 호도로프스키가 보인다. 그들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려 했던 쇼 비즈니스 세계의 흥분과 애수, 괴상함과 아름다움 역시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한 농담이라고 해도, 세우똥 멜루가 건조하게 치고받는 쓸쓸한 농담의 톤은 영화 고유의 것이다.
평론 : 영화평론가 듀나(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