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육승완

육승완

6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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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연

영화 ・ 1993

평균 3.6

광풍에 휩쓸리는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결국 존재라는 사실. 어떤 수식이 붙더라도 우리는 우리다.  # # # 본 작의 절대적인 시간감각 하에서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 일반적인 상업영화가 극적인 장면이나, (극적인 장면을 이끌어내는) 정보 전달 위주로 장면을 구성하는 것과 다르게 본 작은 일상적이고, 무작위적이며, 친절하지 않은 장면들로 가득 차있다. 장면들 간의 차등적 가치 부여나 우선순위는 부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러닝타임에서 각 장면에 할애하는 비중 역시 공평하기 그지없다. 마치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모든 순간은 공평하다는 듯, 그저 느린 필체로 그들의 삶을 담아낼 뿐이다. 본 작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시간감각과 유사하다. 물론 개인은 각 시간에 대해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가치를 부여하지만, 극적인 순간이던 일상적인 순간이던 모두 자신의 순간으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등장인물과 관련해 본 작이 관객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대부분이 일상적이고 무작위적이라는 점은, 그 대상이 영화의 등장인물이라는 점에서 의아하지만 사실 어떤 존재의 삶이던 일상의 반복은 피할 수 없다. 즉, 우리의 삶에 카메라를 비춘대도 역시 일상적인 순간의 비중이 압도적인, <푸른색 연>과 같은 영화일 것이다. 앞서 본 작이 친절하지 않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 딱히 관객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장면을 구성하는 기준과 유사하게,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정보는 서사를 진행하고 극적인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목적으로 선별, 제공되므로 그 전달 방법에도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허나 본 작은 특정 정보를 관객이 놓치더라도 감상에 무리가 없다. 존재를 그저 존재시키는 방법론을 이해하고, 타인 역시 우리가 그러하듯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본 작 감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특수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진행되고, 역사의 영향이 배제될 수 없는 개인의 삶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맥락에서의 감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논의를 특정 사건에 국한시켜 인과적, 역학적 관계를 논하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다. 본 작이 마주하는 역사는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즉 결과로서의 역사다. ​또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일상에도 러닝타임을 공정히 부과함으로써, 태풍에 휘날려 찢겨진 개인의 삶일지라도 여전히 개인의 것임을 이야기한다. 즉, <푸른색 연>은 나비의 날갯짓보단 불어 닥친 태풍의 이야기이며, 역사에 의해 희생된 존재 역시 '역사에 의해 희생된'이라는 수식어 이전에 ‘존재’라는 시각으로 대하고 있다(이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샤론 테이트를 비극적인 가십의 일원으로 풀어내지 않고 꿈 많은 영화인으로 그려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수식어에 집중하는 것은 존재를 그 자체보단 역할로 인식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메세지가 부재하는 영화는 물론 아니지만,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을 비판하려는 영화'로만 인식한다면 너무 협소한 해석이리라(서사나 극중 정보와 무관하게 방법론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작품이기에, 서사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위 사건들을 핵심 주제인마냥 이해하는 건 조급한 접근일 수 있다). 핵심은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을 정치적 목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호소의 전제는 "모든 존재가 절대적으로 동등하다"는 대원칙이고, 어떤 존재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 방식(화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영화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에서 이러한 원칙이 도출된다.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역사의 수많은 비극은 본 작이 던지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비극은 항상 숫자로 나타내지는 것보다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