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준홍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평균 3.8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2012) @190617 작년에 비슷한 주제로 국가의 발전과 퇴보에 대해 분석한 아시아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친구가 댓글로 이 책을 추천해줬었다. 그 뒤로 한참 안 읽다가 훈련소에 갈 때 이 책을 들고갔다. 딱봐도 두꺼워서 훈련소 안에서는 다 못읽을 것 같아 이 책을 마지막으로 미뤄뒀는데, 그 결과 나머지 네 권을 훈련소에서 다 읽고 이 책은 반쯤 읽다가 나왔다. 정작 나와서는 읽는 속도가 지지부진해서(중간에 독서모임 책들 읽느라 계속 밀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저 읽는데 두 달이 걸렸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지루했다거나 별로였던 건 아니고, 오히려 분량이나 주제에 비해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책의 대부분이 일종의 사례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머리아프게 읽기보다는 세계사를 읽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려면 그 나라의 경제구조가 포용적이어야 하는데, 포용적 경제구조란 그 국가 안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구조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투자하여 어떤 발명이나 혁신 등을 일으키고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경제구조가 있어야 경제발전이 일어난다는 것. 반대로 이러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경제구조(ex)노예제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예들이 혁신을 할 유인이 없고 노예주들은 자칫 경제발전이 자신들의 특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노예를 부려먹을 수 있는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발전이 정체 또는 퇴보한다고 본다. 이 부분까지는 뭐랄까 이상적인 상황에서 국부론의 주장이나 크게 다를 것 없어보이는데, 저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러한 포용적 경제구조가 생성, 유지되는 데 포용적 정치제도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포용적 정치제도란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들이 최대한 정치권력을 균등하게 나누어 갖고 어느 소수 기득권 집단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독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단순히 민주주의가 도입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일단 안정적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통치구조가 있어야 하며 이 통치구조 자체는 또 권력이 잘 분산되어 있어야 하고 시민의식과 자유언론도 활성화되어있어야한다. 저자들의 주장은 기존 경제학에서는 보통 '정치' 라는 것을 경제 외적인 변수로 보고 이 변수는 이상적이라고 가정한 채로 경제를 분석하는데, 본질적으로 정치와 경제는 상호작용하기때문에 이렇게 나누어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포용적 정치제도와 경제구조는 서로 선순환을 일으키며 반대로 착취적(책에서 포용적-inclusive의 반대 뜻으로 착취적-extractive라는 단어를 쓴다) 정치제도와 경제구조는 반대로 서로 악순환을 일으킨다고 한다. 전 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는데, 대항해시대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호주와 뉴질랜드, 산업혁명기 유럽, 르네상스기 베네치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일본과 중국 등 세계 대부분의 케이스를 다루고 있다. 예시를 보면 포용적 경제제도는 여러 다원적인 사회집단의 힘을 키우므로 포용적 정치구조를 추동하고, 포용적 정치구조는 또 특정 기득권 집단에게 경제적 특혜를 몰아주는걸 억제하기 때문에 포용적 경제제도를 추동한다. 반대로 착취적 경제제도는 소수의 부자들이 결국 돈으로 정치권력을 사서 이 권력으로 독재를 하므로 착취적 정치제도가 형성되며, 착취적 정치제도 자체가 소수 집권자에게 경제적 특권을 주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착취적 경제구조가 형성된다고 본다. 간단한 순환고리인데, 다음 문제는 이렇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양성 피드백이 일어나는 구조면 좋은 순환고리에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일단 이런 고리가 형성되려면 전제조건으로 중앙집권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소말리아의 예를 들면서 애초에 중앙집권이 안 되면 경제고 정치고 발전이 될 건덕지가 없어서 막장이 되고, 일단 중앙집권정부가 들어기만 하면 일단 착취적 정치/경제제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경제발전이 가능하다고도 한다.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된 다음 어떻게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를 형성하느냐에 대한 설명이 좀 맥빠지는데, '제도적 부동(institutional drift)'과 '결정적 분기점'같은 단어가 나온다. 단어를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운빨&우발적인 사건이나 우연적인 조건 등이 그 사회의 초기조건이랑 어떻게 맞물리냐에 따라 선순환 고리로 갈 수도 있고 악순환 고리로 갈 수도 있고 고리를 중간에 갈아탈 수도 있다고 한다. 예컨대 서유럽이 오늘날 선진국이 된 근원으로는 흑사병때 농노가 상당수 죽어서 남은 농노들의 가치가 올라가 비교적 정치적, 경제적 권한이 상승한 것을 꼽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대부분 막장인 것은 대항해시대 이후로 유럽이 처음에는 노예 무역으로, 나중에는 직접 식민지배로 현지의 정치, 경제구조를 착취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근원으로 본다. 역시나 경제학스럽게 분석에는 능하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이 안 나오는 대답이었다. 일단 저자는 이런 이론을 가지고 오늘날 중국을 분석하면서(요즘 미국 책은 다 중국을 건드리는게 유행인 것 같다) 중국의 성장은 겉보기에 그럴듯해도 근본적으로는 착취적 정치제도에 (비교적) 포용적인 경제구조를 합쳐놓은 데 기반하고 있으므로 이대로는 길게 못 갈 거라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IMF 등에서 후진국들에게 경제발전에 대한 처방을 내릴 때나 원조를 제공할 때에 이런 착취적 정치제도를 무시하고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원만 제공하면 어차피 악순환 고리에 말려 지원이 왜곡될 것이므로 크게 효과를 못 볼 것이라 본다. 진단은 그럴듯한데, 사실 책 말마따나 단순히 경제구조 뿐만 아니라 정치제도까지 바꿔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면 외국에서 원조를 할 때 해당국의 정치제도까지 개입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원조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뭐 실제로 우리나라만 해도 그러한 개입을 통해 선순환 고리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긴 한데, 아무래도 이건 대놓고 내정간섭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어서 미국같은 킹왕짱 나라가 아니면 쉽사리 시도도 못 할 영역인 것 같다. 식민지화해서 대신 통치하면서 정치제도까지 바꿔줄 것도 아니고..사실 책에 따르면 과거에 식민지배하면서 만들어놓은 제도들이 지금 수많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들을 악순환의 고리에 밀어넣은 셈이라 서구권 국가들이 죄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해결책이 없어서 문제지..책에선 어쨌든 노오력을 잘 해보라는 얘기를 한다. 전에 읽었던 아시아의 힘의 주장과도 비교를 하게 되는데, 이 책에 비해 아시아의 힘은 특정 지역(아시아)에 국한된 분석이고 이 책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측면에서 어떤 '정책'이 발전을 낳느냐를 따진 책이라(이 책에서는 큰 틀이 중요하지 '정책'은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치지 않는다) 일대일 비교는 쉽지않다. 일단 아시아의 힘에서 경제성장의 비결로 꼽은 1. 토지개혁 2. 수출 규율 기반의 제조업 발전 3. 국가 주도적 금융 중에 소농 중심의 토지분배를 강조한 1의 경우 이 책에서 언급하는 포용적 경제구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주 세력이 해체되니 정치제도도 좀 더 포용적으로 바뀌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다만 2, 3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릴 것 같은데, 2,3과 같은 방식의 성장을 이 책에서는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성장(=착취적 정치제도 하에서의 성장)으로 보며 지속가능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권해줄 만한 모델도 못 된다며 깐다. 사실 아시아의 힘에서도 전반적으로 저개발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하는 데 이런 성장이 도움됐다는 것이고 이 책에서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사례를 드는걸 보면 아주 대립되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아시아의 힘은 완전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 성장하는 데는 이런 권위주의적 성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이 책은 이런 접근법 자체를 몹시 불쾌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구체적 정책 대안을 내놓는건 아니라서..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비판점도 그래서 두 책이 갈린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20세기 중반 이후 국가들의 발전 전략으로 탈규제, 무역 및 자본시장 자유화, 민영화를 제시했던 미국의 정책 제안인데, 우리나라가 IMF때 요구받았던 제안들을 생각하면 된다. 세계적으로 썩 좋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으므로 이에 대한 비판은 두 책 모두 하는데, 비판 지점이 다르다. 아시아의 힘은 아예 이런 접근 자체가 후진국들한테는 틀린 접근이고 후진국들은 보호무역 하면서 커야된다는 식의 주장인데, 이 책은 저런 요구 자체(=포용적 경제구조)는 틀린게 아니지만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국가의 정치제도까지 포용적으로 바꾸어야 실질적인 효과가 생긴다는 식의 주장이다. 결국 아시아의 힘의 주장을 비교해봤을 때 이 책의 저자들은 후진국이 권위주의적 성장 없이 저자들이 생각하는 '포용적' 정치, 경제제도만 가지고 중진국 이상으로 발전한 케이스를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나왔던 성공사례들은 대부분 전근대 사회에서의 발전이거나 (산업혁명 초기라 국가주도적 성장이 별 필요없던) 서구권의 발전사례라서 비교가 잘 안 된다. 20세기 들어 성장한 (아시아의 힘에서 다루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도 한국이 잠깐 언급되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다루는게 아니라 그냥 '미국 덕분에 시장경제로 시작해서 근본이 포용적이었고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성장 좀 하긴 했지만 80년대에 정치제도가 포용적으로 바뀌었기때문에 지금까지 잘 성장한거야' 라고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라 직접 비교분석이 안 된다. 뭐 이런 궁금증들이 남는 책이긴 했지만 그래도 경제 발전에 있어서 정치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평소에 잘 들어볼 일 없었던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정치, 경제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것도 이 책의 강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