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요미

김복동
평균 4.0
군복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중국 관동에 도착했을 때 소녀의 나이 열여섯. 그곳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죽어도 잊을 수 없을 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당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픔을 감추고 살던 소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고 한 평생을 진실 규명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고단한 삶을 마치고 눈을 감았을 때 소녀는 어느덧 94세 노인이 되어 있었다. 27년간의 치열했던 투쟁. 하지만 할머니가 된 그 소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이의 단 한번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긴 그 노인은, 암투병중에도 과거를 부정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품지 않는 조국을 대신해 과거의 진실을 알기 위해 젊은 이들도 견디기 힘든 긴 비행 시간을 견디며 미국과 유럽 각지를 다니며 알리고 또 알렸다. 그 노인이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노인의 국가 원수는 2015년, 피해 노인들의 그 어떤 의사를 묻거나 동의를 얻지 않고 10억엔이라는 돈을 받고는 "국제 사회에서 다시는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물론 가해국의 사과는 없었다. . 노인의 국가는 노인이 자신의 분신이자 지나온 상처이자 돌이키고 싶은 과거를 투영했던 소녀상까지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소녀상을 막아선 2015년의 젊은이들까지 도살장에 끌고가는 가축처럼 무작위로 끌어냈다. . 한 많은 세월, 그 긴 시간 떠올리기도 싫은 소녀 시절의 그 일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언하고 증명했던 노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오히려 더욱 강하고 굳건한 눈빛을 잃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강건하고 꼬장꼬장했던 그 노인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제는 몇 남아있지 않은 동료를 떠나보낼때, 일본에서 여전히 조선의 정신을 잇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났을때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모든 걸 견뎌야하는 나를 위해 울지 않았던 않았던 노인이 흘린 눈물은, 한많은 세월을 등지고 떠난 친구와 여전히 일본에 남겨진 어린 소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 사무실에 있기 싫으니까 대충 보러가자라는 가볍디 가벼운 생각으로 갔던 '김복동' 시사회.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눈물이 줄줄 났다. 누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중에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고등학교 때 집에서 우연히 봤던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라고 답했었다. 오늘 이후로는 그 질문의 대답이 달라질 것 같다. .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