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로

하얀 리본
평균 3.8
왜곡된 순수함을 계승한 아이들.
한없이 건조하면서, 싸늘한 영화
* <하얀 리본>의 아이들은 계속 혼나고 추궁당한다. 어른들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태도로 아이들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그것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빨리 배우는 것 같다.
이 굉장히 건조한 영화는 상상력을 여러모로 자극시킨다. 영화에는 수차례 범죄가 일어난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단서도 사건을 쫓는 노력도 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아이들의 싸늘한 표정과, 생명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만은 많이 나온다. 직관적으로 아이들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만약 이 아이들이 범인이라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동기는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보아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존재는 어른들 같다.
어떤 어른은 아이에게 하얀 리본을 묶어부며 '순수'를 강조한다. 어떤 어른은, 남작의 대처로 어머니가 죽었을지라도, 생계를 위해 남작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함을 가르친다. 어떤 아이는 새를 치유해주려면 새를 새장에 가두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아이는 제명에 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여기서부터는 오직 나의 직감에 의한 해석이지만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에게 반감을 표하기 보다는, 오히려 순종적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순수함을 정하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순수함을 가르치기 위해 회초리를 들거나 골프채를 휘두르거나 밥을 주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마르틴은 초기에는 그들만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행동에 위화감이나 죄책감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합리화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멋대로 신에게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기서 죽으면 자신의 행동이 나쁜 것이고 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았다.
아이들은 무리를 짓는다. 낙마한 의사의 집에 몰려오거나 실명한 칼의 집을 향해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구경한다 (커튼을 젖혔을 때, 또 문을 열었을 때 예상보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때의 감정은 프리츠 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