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선량하고 정직한 의사를 그리기 위해 환자를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인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무결점 히포크라테스적 엘리트에 인간적 면모도 두루 갖추었으며 예술에의 소양도 마침 알맞게 탑재한 의사들을 숭상하느라 악역은 환자들이 빠짐없이 도맡는다. 시청자의 대부분이 환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말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비난하기 손쉬운 위치에는 한 회도 빠짐없이 환자들이 위치해있고, 그들은 에피소드 말미에 하나같이 내가 못났다며 부족했다며 자비롭고 긍휼한 의사들에게 사죄하고 참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 캐릭터들의 의학적 위업이나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섬세하게 그려지느냐고 반문해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다섯 의사들의 의사생활은 드라마 상에서 전혀 슬기롭지 못하다. 이들이 극중에서 열중하는 건 음악과 연애와 친목이고, 이들이 극중에서 논의하는 것은 의학과 하등 무관한 대게 먹기와 밴드합주같은 것들이다. 뭐랄까,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이 다섯 의사들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다. 그게 ‘의사를 인간적으로 그리려는’ 작가의 방법론이었다면, 미안하지만 방식이 지나치게 얄팍하다. 역으로 묻고 싶을 지경이다. 지금의 방식이 의사들을 인간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필치로 생각하는 것은 작가진들의 특정 직업층에 대한 지나친 선망이 아닐까 하고. 시청자들은 한 번도 의사를 인외 존재로 여겨본 적이 없다. 시청자들은 의사도 자기 사생활이 존재할 거라 늘 생각해왔다. 게다가 지금껏 의사를 이해하고 속사정을 용인해 줄 것을 열심히 서사로 해명하는 드라마는 세상에 수없이 존재해왔다. 알고 있다. 분명 세상엔 슈바이처같은 의사도 많고 악귀같은 환자들도 존재한다는 걸. 그런데 후자는 다큐멘터리처럼 극사실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전자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솜사탕 인형같은 판타지로 채워져 있으면 이는 분명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맘 편히 보자면 캐릭터 조형의 장인들이 만든 드라마답게 인물간 관계에 집중해 즐겁게 감상 가능한 따뜻한 드라마지만, 신원호-이우정 콤비의 전작들이나 심지어 이 드라마의 첫 시즌이 방영됐던 때와 달리 지금은 드라마가 소재로 삼는 해당 직종의 현실이 감상에 반영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두가 기사로 목도한 지망생들의 생짜가 있었으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신원호-이우정 콤비가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줄곧 묘사해온 소위 엘리트 직종들의 상像을 종으로 나열해보면, 이 시리즈에 품었던 의구심에 좀 더 확신이 생긴다. 이들의 작품에 가해지곤 했던 ‘엘리티즘에 대한 페티시즘’이란 모진 소리가, 생각보다 그리 야박한 독설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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