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vericK
4.5

7월의 랑데부
영화 ・ 1949
평균 3.8
인간은 언제나 운동하는 이미지를 사랑하고 매혹되었으며 넋을 놓고 신비롭게 응시해왔다. 최초로 인류를 매료시킨 운동 이미지 중 하나인 불 또한 끊임없이 연소하며 변화무쌍하게 타오르는 모습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생명이 없으나 살아있는 듯 표효하는 움직임과 예측불가능한 모습에서 그들이 느낀 경외감은 오늘날 우리가 영화를 볼 때와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은 편의성에 의해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불을 다룰 수 있게되고, 훗날 그것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 차와 영화를 발명한다. 비슷한 시기(정확히 10년차이)에 만들어 진 영화와 자동차는 자연스레 서로 친숙한 관계로 발전했으며 기술적으로 해를 거듭하며 진보했다. 영화와 자동차는 매 순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며 새로워 지는 것 이다. 그러나 한 가지, 움직인다는 성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이 명료해질 때, 필연적으로 결과 보다 과정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혹은 자동차 엔진을 꺼진 후 비로소 우리는 결과보다 여정에 관하여 대화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장면과 풍경에서 환희를 느꼈고 어느 편집과 촬영에서 희열을 맛보았는지 말이다. 영화에서 자동차가 중점적으로 등장한다면 대부분 끊임없는 변화와 자유에 관한 갈망이라고 거칠게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이다.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그가 사랑한 영화 ‘베니싱 포인트’ 리들리 스콧의 ‘델마와 루이스’, 러스 메이어의 ‘더 빨리 푸쉬켓 죽여라 죽여’, 자동차를 강탈하는 두 편의 고다르 영화(미치광이 삐에로, 네 멋대로 해라)와 빔 벤더스와 짐 자무쉬의 로드무비들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경제적 능력의 산물임을 포함하여 변화와 자유의 물자체로써 영화는 자동차를 품에 안으려고 함과 동시에 선망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듯 영화를 보며 능동적으로 사유할 때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해 지는 것은 영화와 자동차의 비슷한 속성이다. 자크 베케르의 ‘7월의 랑데뷰’는 이미 허문영 평론가님이 탁월한 시야로 대신 분석했음으로 내가 굳이 이 영화에 관해 깊게 비평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수륙양용의 의미, 곁가지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혹은 곁가지 에피소드의 집합이 주는 단단한 구성,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이었으며 고다르와 트뤼포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사실 등) 다만 초반부 수륙양용차와 후반부 등장하는 전투기에 의미 그것에 관하여 짧게 나마 이야기 하고 싶다. 수륙양용차의 이유없는 등장은 ‘7월의 랑데뷰’의 전체적인 축약으로 보인다. (나는 수륙양용차를 봤을 때 단순히 자동차가 보트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물을 건너는 기능이 있을 줄 몰랐다.)파리시내를 누비던 차가 돌연 센 강을 건널 때 느껴지는 희극성 또 두 커플을 중심으로 지하 재즈바에서의 활발한 춤과 경쾌한 음악 그리고 극장에서 발생하는 재치있는 연기들은 곁가지 에피소드 처럼 느껴질 수 있고 때로는 과잉같아 보이나 앞서 언급한 영화와 자동차의 본질들을 되풀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새로운 사조 역시 이전시대에서 파생되었음으로)누벨바그 영화에서 지금까지도 현재의 관객들이 느끼는 생경함과 새로움을 누벨바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자크 베케르의 영화에서도 접할 수 있는 것 이다. 수륙양용차의 의미는 루쉬앙이 여행을 망설이는 동료들에게 연설한 것 처럼 영화 속 모든 인물들에게 전이되 스며들어 자유와 변화를 갈구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된다. 실제로 후반부 비행기를 통해서 그들은 각자의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퍼펙트 월드’와 비슷한 언어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영화에서 케빈 코스터너는 자동차를 20세기의 타임머신으로 비유한다. 앞으로 움직이면 미래이고 뒤로 움직이면 과거라 설명한다. 그저 엑셀러레이트만 밟으면 해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퍼펙트 월드의 배경이 1990년대 인 것을 생각할 때 자동차는 더 이상 변화하며 운동하기 힘든 구세대의 산물이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 케빈 코스터너는 헬리콥터를 보며 소년에게 신세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7월의 랑데부의 후반부 활주로에 도달한 임무를 마친 수륙양용차는 운동을 정지하고 하늘을 달리는 전투기에게 자신의 위치를 양보함으로써 신세대가 성취해야할 새로운 가치로 승화한다. 통상적인 개연성으로 영화를 관찰했다면 이해가지 않는 곁가지 에피소드에서 쓸데없이 의미를 찾고자 시간을 허비했을 것 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면 누벨바그 영화같은 새로움과 자유분방함의 가치를 이 한 편에서 고스란히 발견했을 것 이다. -사족-만약 이 영화를 21세기 영화로 극단적으로 밀고나갈 수 있다면, 분명 홀리 모터스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