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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재

무재

1 month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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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책 ・ 2021

평균 4.2

"졸부와 비체의 교차점에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로의 이행" 1. 졸부(猝富, Nouveau riche, new rich)는 한 세대 안에 부자가 된 자들을 뜻한다. 보통 부자가 되려면 몇 세대에 이르는 것이 전통적이다. 졸부는 원래 낮은 사회 계층에 속해 있었으나 금전적으로 막대한 양의 부를 짧은 시간 만에 획득하면서 사회적 계층이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부자된 사람을 비꼬는 표현하는 단어로, 부를 이루었지만 부자들이 가진 아비투스가 결여된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2. 비체(卑體, abject)는 특히 사회와 도덕의 차원에서 규범과 규칙으로부터 배제되고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객체의 개념과 주체의 개념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경계 공간에서 겨우 분리된 자아의 금기적 요소들을 나타낸다. "비체"라는 용어는 종종 사람이 혐오감이나 구역질을 느끼는 신체와 사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들을 배제한다. 이는 종종 여성, 미혼모, 소수 종교인, 성노동자, 수감자, 빈곤층과 장애인과 같은 주변화된 집단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3. 에리봉은 소수자가 스스로를 (재)발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질서가 만든 자신의 현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비천한 소수자'라는 존재는 자기 변환의 재료인 동시에 작동인이 된다. 사회질서가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순간, 소수자에게는 모욕과 낙인을 계속해서 감수하지 않고 세계에 맞설 가능성이 열린다. 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생산된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고 의미 부여하는 순간,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고 새롭게 변모하며, 다시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킨다. 소수자는 일종의 '배반자'가 되어 그에게 할당된 자리와 부여된 역할을 배반하는데, 그 자리와 역할이 상이한 형태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기에 배반 역시 끝없는 몸짓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배반은 소수자가 자기 자신을 불가피하게 정체화하는 동시에 탈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을 함축한다. 소수자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배반의 실천-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대도시로의 이주, 학업과 직업의 선택, 친구 관계의 재편, 새로운 독서와 학습, 공동체와 하위 문화에의 참여 등-을 매개로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자신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수자가 낙인찍힌 비체에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존재로 이행하는 주체화 과정에 에리봉은 (주네와 푸코를 뒤따라) '수행'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수행을 통해 소수자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 신체와 섹슈얼리티, 타자와의 관계를 기꺼이 감당하는 주체로서 자기를 변형시킨다. 그런데 수행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킬지 모를 오해와 달리, 그것은 금욕주의와 무관하며 때로는 성적 실천을 수반하고 다양한 쾌락을 산출한다. 모욕과 낙인을 재전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의미화하는 과정, 나아가 사회질서의 지배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과정은 주체에게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비체화가 수행의 시발점이라면, 수행은 수치심을 자긍심으로 변환하는 계기이다. 주의할 점은 수행이라는 자기 실천이 그것으로써 우리가 극복하고자 한 온갖 부정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욕의 상처, 낙인의 혼적, 배제의 고통은 자유, 자율성, 자긍심 등 새로운 주체화의 요소들과 불안정하게 공존한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부정적 요소들은 언제나 표면 위로 다시 솟아날 수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체들에게는 사실 수행을 통한 새로운 주체화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이다. 이 새로운 주체화는 근본적으로 규범화 권력과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 나아가 저항을 함축할 것이다. 수치가 결국 명예의 손상 혹은 박탈과 관련된 정동이 라면, 동성애가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비정상'이므로 '명예롭지 못하다'는 관념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정상'인지를 규정하고 위계화하는 권력과 지식의 공모 없이 수치의 정동은 생겨날 수 없다. 그렇다면 수치를 자긍심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규범화 권력과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기각하는 과정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비정상인들'에게서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빼앗고 '천민'의 위치로 내모는 비체화는 성적, 사회적 지배질서 내에서 담론과 제도, 실천을 통해 매일매일 일어나는 권력작용이며, 신체 속에 깊숙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주체화 역시 '언제나-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부단한 수행의 과정이자, 지난한 자기 발명의 여정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옮긴이(이상길)의 해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