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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림

이기림

11 day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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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책 ・ 2023

평균 3.9

2026년 02월 27일에 봄

타인의 무의식을 이용해먹는 법. 무언가에 관한 ‘지식’과 그 지식의 ’활용’은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책은 후자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레시피다. 인간 심리, 그중에서도 무의식을 식재료로 쓰는. 레시피는 식재료에 대한 각별한 이해 없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심리학 연구를 근거로 주장을 명료하게 전개해 나가며, 독자가 타인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거나 타인에게 부당하게 설득 당하지 않도록 돕고자 한다. 한편 이 책은 인간을 살아 숨쉬는 생물보다는 잘 손질된 식재료처럼 다루고 있다. 흔히 설득이라 하면 논리와 이성을 동원해 치열하게 토론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일텐데, 이 책은 그런 전망을 외면한다. 대신에 우리가 설득 당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교묘한 상술들을 예시로 내놓는다. 인간이 간혹 무의식에 휘둘리곤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귀결된다. ‘인간이 무의식에 휘둘리는 패턴을 이해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잘 이용한다면, 그 복잡하고 지난해 보이는 설득의 과정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설득이라는 행위를 기만적인 공격자(의식)와 혼란스러운 수비자(무의식)와 같이 일방적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한정해 생각하려는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시피라는 형식이 동식물을 식재료로 전제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이 책이 일방적이고 기만적인 설득에 관한 책인 이상 인간의 무의식은 먹잇감 역할로 한정되고 만다. 이 책에서도 종종 언급되듯, 인간의 무의식은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속임수가 난무하는 기만적인 전쟁터에서 무의식은 너무 연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무의식을 착취하거나 구원하는 게 모두 의식의 몫이므로 ‘우리 모두 의식의 힘을 기르고 무의식을 경계하자’는 식으로 결론짓고 만다면, 그건 이 책의 메시지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현실을 왜곡하는 셈이 된다. 사실 우리 삶은 주로 전시보다는 평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소박하게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밝혀진 지식을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너무나 명료하고 강력한 나머지 도리어 현실을 왜곡할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이 책이 단단한 실증적 토대를 지녔을 가능성이 큼에도 자기개발서 취급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기능해야만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실용적 가치가 적지 않음에도 자꾸만 오독의 가능성을 염려하게 된다. 우리가 레시피로 해부학을 가르치지 않듯이, 이 책이 인간 심리에 관해 속속들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를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을 진지하게 추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