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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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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스카덴

영화 ・ 1970

평균 3.4

<도데스카덴>이 왜 흥행에 부진했는지 어쩌면 알 것만도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한테서 기대하는 스펙터클의 실종, 잦은 롱테이크의 향연, 적은 대사량, 상당히 긴 러닝타임과 느린 극의 호흡까지. <7인의 사무라이>나 <요짐보>를 생각하면 매우 의외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영화를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차분한 방식으로 인간사를 그려내며, 심지어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온갖 색으로 칠한 전차의 그림들로 도배된 조그마한 방, 그러한 그림의 색감들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풍경, 별안간 방심하고 있던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오프닝. 영화를 보다 보면 각 에피소드들을 담당하는 인물들의 과거가 문득 궁금해진다. 연신 '도데스카덴'을 외치며 전철 놀이를 하는 청년, 매일마다 남편을 교대하는 아내들, 조카를 거둬들인 부부, 그 부부의 조카를 좋아하는 한 소년, 절름발이 남편과 성질 더러운 그의 아내, 노숙을 하는 광인과 그의 아들, 삶에 통달한 듯한 할아버지 등 말이다. 전철 놀이를 하는 청년은 과연 전쟁으로 잃어버린 직업에 대한 충격의 여파일까, 아님 끝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일까. 조카가 소년을 칼로 공격한 이유는 그녀가 말한 대로 본인의 죽음 이후에 그에게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님 본인을 구원해 줄 능력이 없는 그에 대한 순간의 분노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결코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는 위치이다. 그저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 아픔을 예측하고 공감을 해 줄 수 있을 뿐. 이처럼 영화는 단절된 여럿 에피소드들을 이어 붙이며 많은 형태의 스토리를 파생시키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질인 휴머니즘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마치 이마무라 쇼헤이가 생각날 정도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세계 중 가장 어두운 지점까지 도달하는 듯했지만 끝내 그의 평생 테마인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엔딩의 수미상관을 보고 있자니, 역시 <도데스카덴>은 한 치의 의심할 여지도 없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이 맞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