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3기: 흑부리 마왕의 야망
평균 3.6
2023년 12월 12일에 봄
대사로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전개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 작품의 색깔은 굉장히 짙다. 사실 극장판마다 같은 색깔을 낸다면 '이 장면이 어떤 작품이었는지 헷갈리기 마련'인데 '그래도 기억할 수 있는 거리들이 분명하다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수 있어 그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인 액션씬도 전편들에 이어 훨씬 훌륭해졌고 설정된 배경 역시 훨씬 더 드라마틱해져 그럭저럭 괜찮았다. “난 당신의 그런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요.” “난 내 비겁함이 원망스러운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서브 캐릭터들의 매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떡잎마을 방범대와 짱구네 가족의 의존도가 높았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은 과감하게 하리용과 링링을 앞세워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만, 영화가 끝난 후 '마땅한 인상'이 없었으며 하다 못 해 액션가면과 '여장남자 조력자들'에 비해서도 미치지 못 하는 영향력이 조금 아쉬웠다. “너희들을 만난 걸 하늘에 감사해. 큰 싸움을 앞두고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고 호수처럼 고요했던 적은 처음이거든. 정말 고마워.” 차라리 빌런의 존재감이 더 높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한 실력자로 나오는 풍천검객부터 시작하여 섬뜩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은계령은 (적두건은 좀 약하긴 했으나 그래도 캐릭터성은 충분) 서브빌런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특히 개그 요소 하나 없이 상대를 향한 '가소로움' 혹은 '증오'를 품고 있는 부분이 기존 짱구 극장판과 색달라서 좋았다. 흑부리 마왕은 상당한 개그캐로 묘사가 되는데, 비중이 너무 적어 아쉬울 따름. “생각보다 제법 강한데? 어디 메뉴를 바꿔볼까나?” “메뉴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스크림이랑 쭉쭉빵빵한 누나들이야!” “아이스크림이랑 쭉쭉빵빵 누나... 아이, 시끄럽게 눌어서 잘못 눌렀잖아?” 연이어 황당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우리의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일이 걱정 말라며, 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며, 우리의 삶을 응원해주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가끔은 화도 나고, 이해 안 되는 일이 투성이로 일어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평하며 나태하게 늘어져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해나갈 뿐이다. “아무래도 난 이 황당한 상황을 못 따라가겠어요.” “걱정 마세요. 여러분이 따라오든 말든 시간은 흘러 간답니다.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돼요.” [이 영화의 명장면] 1. 유채꽃 너무나도 아름다운 유채꽃밭 속에서 대비되는 서로의 살갗을 노리는 검을 든 결투. 이 작품은 텔레비전에서 더 이상 방영을 해주지 않아 아주 어렸을 때 본 희미한 기억이 전부였는데 유독 이 장면만큼은 유채꽃의 잔상 덕분인지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유연한 듯 화려한 그들의 검술보다 망측한 꼴을 하고 있는 짱구의 바퀴벌레 형상이 더 인상 깊었던 건 유일한 옥의 티.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아름다운 꽃밭에서 최후를 맞다니, 넌 운 좋은 녀석이야.” 2. 인형 이 장면은, 아마 '짱구 극장판 특유의 기괴스러움'이 시작되는 지점과도 같을 것이다. 기존 유아 애니메이션에서는 당최 찾아볼 수 없던 공포로,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을 정도로 처음 봤을 당시 충격적이었다. 끝까지 여자가 아니라며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는 하리용의 의지가 와닿았으며 얼마나 왕위를 계승시키고 싶어 하던 가족을 그녀가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네 녀석이 여자였다니. 난 살냄새로 알 수 있어. 난 여자가 제일 싫단 말이야.” “아니야, 나는, 난 여자가 아니야.” 짱구가 순수함은 어느덧 세계평화를 지켜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짱구가 오늘은 일찍 일어났구나? 정말 착하네.” “세계 평화와 흰둥이를 지키려면 시간을 잘 지켜야 하니까 당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