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Pars Ignari

Pars Ignari

9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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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왕

영화 ・ 2016

평균 3.2

<걷기왕>은 고민거리를 제시하지만 거기에 대해 고찰하는게 아니라, 고민을 마주친 감정을 전달하고 그에 대응하는 청춘의 반응을 그려내는데 집중하는 영화다. 심은경은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단숨에 친해질 수 있을것 같은 동그란 연기를 하고, 덕분에 영화도 한껏 동글동글해 정말 다가가기 쉽다.   물론, 군더더기도 많고, 편집도 투박해 완벽과는 정말 거리가 먼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고등학생 UCC같은 얼빠진 매력과 센스가 지금 이대로 이렇게 사랑스러워서, 설령 단점들을 싸그리 고쳐서 영화가 완벽해지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주제가 그런 사고방식을 경계하고 있기도 하고. 결국 <걷기왕>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굉장한 호감이 가는, 앙증맞고 톡톡 튀는 매력을 가져서 힘껏 안아주고 싶은 영화다.   ------------(스포일러)----------------------   개인적으로는 보면서 올 여름의 <부산행>이 떠올랐다. 내게 <부산행>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좀비와 비-좀비가 밀폐된 KTX 안에서 동시에 그려지며 대치되는 방식이었는데, 남을 밀어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명제가 절대참으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서, 부산행의 섬뜩한 설정은 생존경쟁이라는 이름 아래에 인간성을 포기해버리는 우리 모두를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 좀비와 비-좀비의 구분이 '인간성'에 기인한다면,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겠다고 인간이길 포기하는 자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생존중독? 심정적으로는 그들을 욕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욕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많은 비판의 방향이 차라리 사회를 향하는 것일 테지만.   이렇듯 한계선을 다투는 노력만이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우리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는 현대인들은 모두 어딘가 좀비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통찰. 어쩌면 연상호 감독은 그런 광기와도 같은 경쟁심이 우리 사회 내에 전염되듯 퍼져나가고 있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걷기왕>의 마지막 대회 장면에서도 좀비처럼 보이는 자들이 나온다. 탈수증세를 보이면서도 조금이라도 빨리 뛰기 위해 건네는 음료수를 무시하는 선수들, 쓰러졌다가도 일어나 힘없이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승리를 위해 인간이길 포기한 좀비같아보인다. (진짜로 좀비처럼 걷는다)   이 때,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와 좀비같은 현대인이 두려운 존재로 그려진다면, <걷기왕>은 경쟁에 중독된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그 미친 줄서기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길을 택한다. 경쟁의 열기와 인생의 승패가 너무도 확연하게 시각화되는 '달리기 시합'이라는 상징적인 현장에서 만복이가 더 이상 좀비이길 포기할 때, 그 순간 빨리 일어나서 뛰어야 하지 않겠냐고 내심 만복이를 닦달하고 있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질정도로 덤덤하게.   그리고 영화의 직설적인 대사, 조금 느리면 어떨까. 바로 떠오를 대답이, 세상은 도망가지 않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