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숀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의 결말을 먼저 짚어야 한다. 러닝타임 111분 중 110분 동안 짊어지고 왔던 것들을 모두 허공에 날려버리는 듯한 이 파격적인 도약은 어쩌면 주인공 여섯살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프로젝트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얼마나 고달플지 짐작조차 못한 채 무작정 천진난만한 이 아이를 보고 조금이라도 웃었다면, 우리는 미안해서라도 이 황당해보이는 결론에 동의해야 한다. 베이커 감독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놓고 무니를 향해 속으로 되새긴다.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어.' 무니는 플로리다 브론슨 메모리얼 하이웨이 인근 모텔 '매직캐슬'에 산다. 무니의 엄마는 미혼모 홈리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지만, 무니는 그것도 모른 채 그저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버르장머리라고는 없는 이 악동은 또래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게 일상이다. 엄마는 이런 무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일말의 책임감도 있지만, 무능한 건 어쩔 수 없다. 사실상 무니는 방치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니가 사고를 치고, 엄마는 심각한 금전적 위기에 빠진다. 모녀는 괜찮을 수 있을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비겁하다. 관객은 상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모텔을 전전하는 홈리스의 이야기라는 걸 안다('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플로리다주 홈리스 보조금 지원 정책의 이름이다). 베이커 감독은 현실에 헐떡이며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어른들의 불행을 직시할 자신이 없었나보다. 그는 애써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본다. 누군가는 쓰레기장이라고 부르는 이 모텔촌이 아이들에게는 매직캐슬이나 퓨쳐랜드와 같은 멋진 이름이 붙은, 분홍과 보라로 칠해진 낙원일 수 있다. 매일이 즐거운 그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뭘 잘 모르니까. 당황스러운 건 이런 거다. 비겁하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외면한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보고싶지 않았던 것을 볼 때. 무니와 친구들이 선사하는 그 행복한 웃음 속에도 진저리 나는 현실이 덕지덕지 눌러붙어 있다는 걸 눈치채는 바로 그 순간이다. 무니가 친구와 함께 무지개를 바라보며 "무지개 끝에는 황금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니가 아마도 무지개 끝에 있는 황금을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프게 짐작한다. 또 무니가 "나는 어른들이 울기 직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 아이가 슬픔과 좌절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는 걸 알고 어금니를 꽉 깨물지도 모른다. 세상은 사실 아이들에게도 가차없이 혹독하다. 그리고 모텔 관리인 바비(윌럼 더포)가 있다. 이 모든 난장판을 지켜보는 그의 눈빛에는 경멸과 연민이 함께 있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향한 이 이상한 감정이 곧 관객의 시선일 게다. 무니와 그의 엄마도, 이 모든 홈리스들은 사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바비가 무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다. 그 못된 장난들이 짜증스러워도 대개 받아주는 일, 혹은 또 다른 비극까지 안고가지 않게 바라봐주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의 표정에 서린 장탄식의 실체는 무기력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비겁해서 더욱 예리하다. 홈리스가 쏟아져 나온 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무니의 엄마는 당시 무니와 같은 아이에 불과했지만, 그 비극을 고스란히 떠안아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권력층 탐욕의 결과를 책임지고 있는 건 하층민이다. 그리고 그 불행은 무니의 등에도 고스란히 올라타있다. 베이커 감독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서 이 사회의 가장 아픈 부분을 도려내 내보인다. 무니와 엄마가 사회 시스템에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건 괜한 설정이 아니다. 그 시스템을 만든 게 권력층이다. 다시 한번 이 영화의 결말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무니는 친구 젠시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데려간다. 거대한 나무가 있는 곳, 무니는 그 나무를 가리키며 "쓰러져서도 자라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무니 또한 쓰러져서도 자랄 것이다. 무니는 자라기 전에 쓰러지는 아픔을 맛볼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에게 베이커 감독이 선사한 당황스러우면서도 선물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결말을 지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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