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Kyungsik

Kyungsik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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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영화 ・ 2026

평균 2.8

폭풍의 언덕 팬으로써 원작이 존중받는 느낌이 하나도 안 느껴진다. 폭풍의 언덕은 이미 기존에 많은 영화화 작품이 나왔기에, 참신한 재해석 자체는 싫은 게 아니라 반기고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폭풍의 언덕의 탈을 쓴 자극적인 포르노그라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폭풍의 언덕 속 일종의 포르노적 자극으로 오인되는, 그 휘몰아치는 감정선은 인물들 간의 순수한 격정같은 것이지, 절대로 수위 높은 애정씬이 아니다. 나는 특히 예고편에서 여자가 혀를 내밀고 기어가는 장면을 보고 나서는 정말 이 영화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아졌다... 기존의 다른 폭풍의 언덕처럼 또 다시 캐서린-히스클리프의 미친 사랑을 다뤘으나, 이 영화는 아예 원작 특유의 분위기, 설정, 인물, 모든 것을 바꾼 형태로 그저 에로틱한 시각적 자극으로만 그 자리를 채웠다. 아무리 각색이 들어갔다고 해도 이건 원작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다. 바로 그 부분이 모욕적이라는 것이다. 감독이 각본을 자극적으로 쓰는 편이라는 건 알고 있으나, 그걸 왜 꼭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감독 에메랄드 페넬은 과거 킬링 이브 때부터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 캐스팅도 솔직히 구린 감이 없잖아 있다. 캐서린 언쇼는 금발의 백인 여성, 히스클리프는 또 다시 백인, 그 와중에 정작 원작에서 백인이었던 에드거는 중동계 배우, 하녀 넬리는 아시아인... 오히려 에드거와 히스클리프 캐스팅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돋보이는 것은 백인이고 조연은 유색인종이다. 마치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50년대의 할리우드처럼 말이다. 영화 작은 아씨들(2019)처럼 원작과 작가의 생을 기반으로 새로운 결말을 제시하거나, 아예 그린 나이트(2021)처럼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출로 원작을 재현하거나. 이 영화는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사전 공개 반응도 벌써 최악이었다는 말이 나오나. 한 가지 얘기하고 싶다. 폭풍의 언덕은 그저 미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그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 불러일으킨 대가, 대를 이은 저주처럼 곧 탄생할 사람들에게 부여될 축복이 아닌 상처, 그 여파를 치유하고 용서하고 극복하는 후대인들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는 언제나 캐서린의 죽음 그 이상, 이후로 나아가지 못한다. 언제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에서 벗어나 캐서린 2세, 그리고 헤어턴으로 이어지는 그 진정한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온전히 볼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